2008년 베이징 신화· 2009 WBC 준우승으로 한국 야구 중흥기 이끌어… 2014 인천 AG 드림팀도 금빛 레이스 이어갈 준비 완료

[스포츠한국미디어 조형래 기자] 2006년 도하 참사는 드림팀을 다시 각성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2006년 도하 참사의 아픔을 잊을시간도 없이 드림팀은 전진을 위해 다시 한 번 뭉쳤다. 베이징 올림픽이 기다리고 있던 것. 한국은 2007년 말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 1위를 일본에 내주며 베이징 직행 티켓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3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최종 예선에서 6승 1패로 베이징행 티켓을 따냈다.

이것이 베이징 신화의 시작이었다. 대표팀은 당시 두산 김경문 감독은 최종 예선부터 대표팀을 맡으며 연속성을 이어갔다. 드림팀은 일치 단결했다.


한국 드림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결승까지 9전 전승이라는 위업을 세우며 올림픽에서의 마지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특유의 뚝심으로 선수단을 꾸렸다. 특히 2006 도하 참사의 중심에 있던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으로 거듭났다. 류현진, 장원삼, 윤석민, 강민호, 이대호, 정근우, 이용규, 이택근 등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도하 참사의 눈물을 씻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스타들이었던 김현수, 고영민, 한기주, 권혁 등이 합류했고 대표팀의 터줏대감이었던 김동주 진갑용, 정대현, 박진만, 그리고 당시 유일한 해외파였던 이승엽까지 합류하며 신구조화를 이룬 드림팀이 완성됐다.

첫 경기였던 미국과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극적인 끝내기 역전승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보였다. 이후 대표팀은 승승장구하며 8개 팀이 겨룬 본선 풀리그에서 무패로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숙적 일본이었다. 이미 본선에서 9회 좌완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김현수를 대타로 내세워 점수를 뽑아내는 승부수로 일본을 꺾은 바 있는 드림팀은 다시 일본과 혈전을 벌였다.

8회초까지 2-2 동점. 그리고 당시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던 이승엽에게 기회가 왔다. 상대는 본선에서 아픔을 안긴바 있던 이와세. 이승엽의 부진에도 좌완을 상대하는 상대적인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김경문 감독은 4번 타자 이승엽에 믿음을 심어줬고, 이승엽은 그동안의 부진을 단숨에 씻어버리는 결승 투런포를 터뜨리며 드림팀의 6-2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이승엽은 마음고생에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결승에서 아마 최강 쿠바를 만난 한국은 이승엽이 다시 홈런포를 가동했고 선발 류현진의 역투 속에 금메달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9회말 류현진이 지친 기색을 보이며 1사 만루 위기에 몰렸고 포수 강민호는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마무리 투수와 포수로 올라온 정대현과 진갑용은 마지막 타자를 병살타로 유도하며 드림팀의 금메달을 안겼다.

이를 통해 드림팀은 9전 전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또한 올림픽 야구 종목의 마지막 금메달을 따내면서 세계 야구 역사에 한국 드림팀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2009년 WBC에 나섰던 드림팀의 봉중근은 투혼을 불사르며 한국의 준우승에 힘을 보탰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2008년 베이징 신화를 이룩한 대표팀은 2009년 다시 WBC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그 어느 누구도 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 속에 1회 WBC때 감독이었던 김인식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드림팀은 다시 한번 기적을 일으켰다.

2009년 2회 WBC는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 경기 대만을 9-0으로 잡은 한국 드림팀은 2차전이었던 일본과의 승자전에서 14-2 충격의 콜드게임패를 당했다. 치욕이라고 볼 수 있는 결과였지만 당시 드림팀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했고, 결국 조별 예선을 통과하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회 WBC에서도 한국은 미국 본토에서 화려하게 비상했다. 멕시코와 일본을 차례로 누르고 준결승에서 미겔 카브레라, 펠릭스 에르난데스, 빅터 마르티네스 등 메이저리거로 무장한 베네수엘라를 만났다. 그러나 한국은 메이저리거의 이름값에 굴하지 않았고,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스리런 홈런으로 응수하며 한국 야구의 매운맛을 다시 보여줬다.


2009년 WBC 대표팀은 일본과 결승전에서 패하며 준우승 했지만, 대한민국의 야구를 세계에 다시 한 번 알리며 금의환향 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한국 드림팀은 2회 WBC에서도 희한한 제도로 인해 결승까지 일본을 모두 5번이나 만났다. 이 때마다 봉중근은 일본전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마운드를 버티며 '봉의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봉중근의 투혼 속에서 한국은 결승에서 일본에 9회 통한의 실점을 허용하며 아쉬운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2010년 대한민국 드림팀은 4년전 카타르 도하의 참패 기억을 딛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 번 아시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2009년에 이어 대표팀에 합류해 메이저리거의 위용을 보여줬고 강정호가 맹타를 휘두르며 아시안게임 3번째 금메달을 따냈다.

2008년 베이징 전승 우승의 신화, 그리고 2009년 WBC에서의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로 한국 야구는 중흥기를 맞았다. 2008년 사상 처음 500만 관중을 돌파했고 2011년엔 680만, 그리고 2012년에 700만 관중을 동원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명실공히 한국 대표 프로스포츠로 등극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006년 도하에서의 비극을 잊고 금메달을 따내며 야구 인기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추신수는 대표팀에 합류해 금메달을 목에 걸며 메이저리거의 자존심을 세웠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그러나 2013년 WBC에선 우승을 위해 나섰지만 조별예선에서 조기 탈락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1998년 처음 드림팀이 태동한 이래 대한민국 야구는 아시아 정상에 올랐고, 세계 정상의 자리까지 노크했다. 한국 야구의 위상은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 아마 최강 쿠바도 함부로 얕볼 수 없는 지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이제 2014년 대한민국 드림팀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안게임 4번째 금메달을 노린다. 다음 대회인 2019년 하노이 아시안게임에선 야구의 정식종목 채택이 불투명한 상황. 아시안게임에서 야구의 마지막 금메달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드림팀의 수장은 삼성을 통합 3연패로 이끈 류중일 감독. 지난 2013년 WBC의 굴욕을 씻고 명예회복을 위해 다시 스파이크 끈을 조였다. 18일 LG와의 최종 리허설에서 10-3 대승을 거두며 금메달 레이스에 청신호를 밝혔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드림팀의 신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한국 야구 드림팀은 22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태국과 첫 경기를 시작으로 금빛 레이스를 시작한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아시안게임 4번째 금메달을 노린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대한민국 야구 드림팀의 역사]
[야구 드림팀①] 드림팀의 태동, 그리고 환희의 역사
[야구 드림팀②]'시련'과 '신화' 공존한 2000년대 중반 드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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