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참사' 넘고 WBC 4강 신화 그러나 '도하 참사'까지… 굴곡 겪은 드림팀

[스포츠한국미디어 조형래 기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야구의 부흥을 이끌었던 드림팀. 그리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드림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며 2회 연속 국제대회 금메달 획득의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드림팀은 그리스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2003년 11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겸 아테네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대만과 일본에 잇따라 패하며 탈락했기 때문. 드림팀의 첫번째 시련이었다. 일명 '삿포로 참사'다.

그리고 약 2년이 지난 뒤 2006년 3월. 한국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라는 세계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MLB)에서 창설한 일종의 '야구월드컵'이었다. 대한민국은 지난 삿포로 참사를 만회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활약 중인 최고의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2006년 WBC 대표팀은 박찬호의 재합류 등으로 유례 없는 최상의 전력으로 꾸려졌다. 일본도 이치로, 마쓰자카 등 정예멤버들이 합류하며 제대로된 한일전 명승부를 연출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 덕분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박찬호와 서재응은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고, 최희섭과 김병현, 김선우, 봉중근 등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떠났던 선수들까지 모두 태극마크를 달았다.

또한 이종범과 손민한, 이승엽, 김태균, 이병규, 진갑용, 오승환 등 당시 국내 무대를 주름잡았던 선수들도 대표팀에 합류했다. '덕장' 김인식 감독의 지휘 아래 유례가 없었던 드림팀은 의기투합했다.

경기는 연일 명승부의 연속이었다. 주최측의 난해한 예선 방식으로 인해 한국은 준결승까지 숙적 일본과 3번이나 맞붙었다. 그러나 한국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연일 승승장구를 펼쳤다.

1라운드 지역 예선을 통과한 드림팀은 미국 본토에서도 한국 야구의 매운맛을 보여줬다. 이승엽은 2라운드 미국과의 경기에서 당시 미국팀 에이스 돈트렐 윌리스를 격침시키는 홈런포를 터뜨렸다. 미국은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출전하며 우승에 열의를 보였지만 한국에 3-7로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또한 이진영은 두 차례 일본전에서 멋진 다이빙 캐치와 그림같은 홈 송구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대표팀의 우익수 이진영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두차례 멋진 호수비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게 되며 스타덤에 올랐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일본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한국 드림팀은 노장 이종범의 3타점 2루타로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둔 뒤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퍼포먼스로 한국 야구 드림팀의 위상을 미국 본토와 숙적 일본에 뽐냈다. 파죽지세를 이어가는 드림팀의 행보를 현지 언론들은 미국 대학농구(NCAA) 토너먼트 대회의 별칭과 같은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라 칭하기도 했다.

비록 4강에서 3번째 만난 일본에 무릎을 꿇으며 정상 도전에는 실패를 했지만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당정 협의회와 국방부, 병무청에 건의해 WBC 4강 신화 주역들의 병역 혜택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 11명의 선수가 병역 혜택을 받았다.


2006년 WBC 2라운드 일본과의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뒤 서재응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으며 한국 야구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과 1998년 방콕과 20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의 연이은 금메달, 그리고 WBC 4강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드림팀의 주축 선수들은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국가를 대표했다는 자긍심과 선수 생활을 끊김없이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드림팀 멤버로 활동했던 이병규, 박재홍, 손민한, 이승엽, 박한이, 서재응, 홍성흔, 박진만, 오승환, 이범호 등은 병역 특례 덕분에 현재까지 국내외를 누비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병역혜택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드림팀은 암흑기에 휩싸이게 된다. 2006년 WBC 4강 신화를 이어가고,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위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젊은 선수들 위주의 대표팀을 꾸리게 된다.

당시 떠오르는 스타들이었던 류현진과 이대호, 장원삼, 윤석민, 우규민, 조동찬, 이택근, 이용규 등은 병역 혜택이 절실히 필요했던 어린 선수들이었다. 동기부여만큼은 확실하다고 여겨졌다.


2006년 WBC 4강 신화의 영광이 채 가시지 않은 2006년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드림팀은 다시 한 번 시련을 겪었다. 이른바 '도하 참사'였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그러나 이는 큰 오산이었다. 이병규, 박재홍, 손민한 등 굵직한 대표팀 경력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대회 경험 부족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회인야구 대표팀으로 구성된 일본에 끝내기 역전패를 당했고, 대만마저 잡지 못한채 동메달로 쓸쓸한 귀국길에 올랐다. 이것이 그 유명한 '도하 참사'다.

드림팀이 남겼던 WBC의 영광은 채 1년도 가지 못하고 '도하 참사'라는 쓸쓸한 결말을 맺고 말았다. 대표팀의 화려한 시절과 암흑기를 동시에 겪었던 2000년대 중반이었다.

[대한민국 야구 드림팀의 역사]
[야구 드림팀①] 드림팀의 태동, 그리고 환희의 역사
[드림팀 역사③] 찬란한 역사 속에 남은 영광의 드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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