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방콕아시안게임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환희를 안겨준 드림팀 1~3기

[스포츠한국미디어 조형래 기자] 지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야구는 프로선수들의 출전이 가능하게 됐다.

또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에서 최하위 수모를 당하며, 한국야구계에는 위기가 감돌았다. 이에 프로와 아마야구관계자들이 대동단결했다. 이때부터 한국 야구는 국제대회에 '드림팀'이라는 이름으로 최고의 전력을 갖춘 대표팀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드림팀은 국제대회 때마다 국민들에게 기쁨과 환희를 안겨줬다. 때론 좌절을 맛보기도 했지만 드림팀의 위용은 한국 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드림팀 1기'의 태동, 아시아 무대를 호령하다

프로선수 12명과 아마선수 10명으로 구성된 98 방콕 대회 야구 대표팀은 '드림팀 1기'로 명명됐다. 드림팀 1기는 상대들을 압도하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이기 시작했다.

드림팀 1기 면면을 보면 화려하다. 당시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15승을 거둔 박찬호(은퇴)를 비롯해, 뉴욕메츠 산하 마이너리그 더블A에서 뛰고 있는 서재응 등 해외파 선수들과 이병규(LG), 김동주(당시 OB), 박재홍(현대), 임창용(해태) 국내 프로무대에서 활약했던 선수들, 그리고 박한이(동국대), 김병현(성균관대) 등 대학무대 최고 유망주들이 대표팀에 발탁됐다.

1기 대표팀은 더블리그부터 만난 숙적 일본과 대만을 전승으로 제압한 뒤 준결승에서 중국을 만나 압도했다. 그리고 결승에서 다시 만난 일본을 13-1, 7회 콜드게임으로 제압하며 아시안게임 야구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드림팀 1기는 해외무대 진출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성균관대에 재학중이던 김병현은 중국과의 준결승에서 9타자를 연속 삼진을 처리하는 괴력을 보여주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계약을 맺는데 결정적 순간을 만들었다.

▲ '악전고투' 속 기사회생, 올림픽 야구 사상 첫 메달을 목에 걸다

1998년부터 시작된 드림팀은 거의 1년 주기로 선을 보였다. 1999년 서울에서 열린 제 20회 아시아야구선수권에서 드림팀 2기가 발족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전을 겸한 이 대회에서도 일본과 대만을 연파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시드니 올림픽 야구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았던 김응용 현 한화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그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드림팀 3기'는 악전고투속에 결실을 맺었다. 23명의 대표선수들 가운데 단 2명만 아마추어 선수로 구성됐다. 잠수함 정대현(경희대)과 외야수는 박한이(동국대) 뿐 이었다. 2명 외에는 프로무대를 호령하던 최고의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또한 '우승 청부사'로 불렸던 김응용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드림팀 3기는 그 어느때보다 필승의 의지를 다졌다.

미국 역시 마이너리그 유망주들로 구성된 대표팀을 선보였고, 일본 역시 국제대회에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비롯한 국내파 출신 최정예 선수들을 내보냈다. 그동안 아시아 무대에서만 위용을 펼쳤던 드림팀이 진정한 진검승부를 벌이게 된 것이다.

드림팀 3기는 당시 이탈리아에 첫 승을 거두며 산뜻한 출발을 보였다. 호주,쿠바,미국에 잇따라 패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이후 네덜란드와 일본을 잡아낸 뒤 기사회생, 4승3패로 준결승에서 미국과 맞붙었다.

준결승은 정대현을 위한 무대였다. 정대현은 잠수함 특유의 생소함으로 8이닝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미국과의 예선전에서도 선발 등판해 호투를 펼친 정대현은 두 번의 미국전을 통해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러나 정대현의 역투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심판진의 석연찮은 판정에 이은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은 눈물을 흘렸다.


독특한 투구폼으로 미국을 당혹케했던 정대현의 역투모습. 스포츠코리아 제공

대표팀의 눈물은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투지로 표출됐다. 경기는 팽팽하게 펼쳐졌다. 구대성과 마쓰자카의 선발 맞대결은 0의 행진을 이어가게끔 했다. 그러나 0의 균형이 깨진 것은 8회. 2사 1,3루에서 이승엽이 마쓰자카를 상대로 2타점 2루타를 뽑아내며 극적인 결승점을 뽑았다. 그리고 선발 구대성이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며 9이닝 11탈삼진 1실점 완투승으로 환호성을 외쳤다.

야구가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따내는 순간이었다. 1998년 드림팀이 처음 출범한 이래 환희의 순간을 맛봤다. 하지만 드림팀에도 시련의 순간이 다가오기도 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후 단상에 올라간 야구 드림팀. 스포츠코리아 제공

[대한민국 야구 드림팀의 역사]
[야구 드림팀②]'시련'과 '신화' 공존한 2000년대 중반 드림팀
[드림팀 역사③] 찬란한 역사 속에 남은 영광의 드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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