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도…정기여객선도 닿지 않는 외로운 '문명의 유배지'

[국내여행] 자그마한 '꽃섬'으로 가을이 밀려든다
국화도…정기여객선도 닿지 않는 외로운 '문명의 유배지'

연안의 섬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방조제가 쌓이고 곳곳에 연육교가 놓인 결과다. 문명의 혜택이라면 혜택이겠지만, 섬 여행의 제 맛은 역시 뱃길이다.

충남 당진 앞바다에 떠있는 조그마한 섬, 국화도(菊花島)로 가는 길은 그래서 설레임으로 가득찼다. 이름 그대로 국화 한송이를 물 위에 띄워놓은 듯 소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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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은 기껏해야 70여명. 정기 여객선도 없어 마을 주민들의 배를 빌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문명의 유배지

구름이 잔뜩 끼였던 21일, 당진군 석문면 장고항에 서니 국화도가 아련하게 다가왔다. 행정구역상으로 경기 화성시 우정면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충남 당진에 가깝다. 화성시에서는 17㎞가 넘지만 장고항에서는 3.5㎞ 거리.

마을 주민의 소형 모타보트를 빌렸다. 10분도 채 안 걸리는 시간이었지만, 상쾌한 바닷바람 속에서 물살을 가르자 찌부뚱한 마음이 금새 펴진다. 섬 여행은 그래서, 세상에 진 빚을 청산하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준다.

그래서일까. 과거 섬은 대개가 유배지였다. 국화도 역시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 이용됐다. ‘꽃이 늦게 핀다’하여 만화도(晩花島)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때 국화도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옛날엔 정치적 유배지였던 곳이 지금은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문명의 유배지’가 된 셈이다.

강태공들의 세상 잊은 바다낚시터

국화도 앞 바다에서 강태공들이 낚시 삼매경에 흠뻑 빠져 있다. 현대판 유배지의 애용자들은 역시 세상을 잊은 강태공들이다. 낚시 도구를 잔뜩 챙긴 직장인 4명이 함께 배에 탔다. 수원에서 왔다는 그들은 휴가를 내서 이곳을 처음 찾았다. 국화도에 가까워지자 한창 조업중인 낚시 어선들이 한가롭게 섬 주위를 노닐고 있었다.

바다 낚시꾼에겐 제격인 섬이었다. 아름다운 풍광에다 잔잔한 물결, 세상을 녹일 것만 같은 일몰. 국화도 주민들의 주업도 낚시어선 운영이다. 주종은 우럭과 놀래미. 봄 가을에는 광어도 잡힌다. 국화도 어촌계장 김운학씨는 “하루 배를 타면 1인당 20~30마리씩 잡는다”며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먹고, 매운탕으로 끓여먹으면 일품이다”고 말했다. 7~8인용 중소형 낚시어선을 빌리는데, 하루 20~30여만원이고, 20여명이 탈 수 있는 대형 낚시어선은 1인당 5만원으로 사람 수를 맞춰서 나선다.

바지락의 요람, 갯벌 체험

오후 3~4시쯤 물살이 빠져 나가자 갯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해 바다 편은 자갈로 이뤄졌지만 장고항 편으로 개흙이 드러났다.

주민들이 이 곳에서 굴과 바지락을 양식한다. 자갈로 이뤄진 곳은 허연 굴 껍질로 온통 뒤덮였고, 갯벌 쪽은 굴과 함께 개흙에 묻힌 바지락이 바글바글했다.

마을 아낙네들이 바지락 채취에 땀을 흘렸다. 굴은 요즘이 산란기이기 때문에 아직 살이 붙지 않았다. 주민들의 양식장이기 때문에 채취는 하지 못하지만, 개흙을 밟는 기분만으로도 상큼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개흙을 살짝 걷어내자 갯지렁이들이 꿈틀거렸다. 갯지렁이들이 만든 이 숨구멍 사이로 조개, 게 등 수많은 갯벌 생물들이 살아갈 것이다.

생각보다 갯벌 규모가 작아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다음 주말이 되면 조수간만의 차가 커져 더 넓은 갯벌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세 봉우리의 토끼섬.

40ha의 작은 섬이지만, 섬 곳곳의 경치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남쪽은 갯벌 測? 동쪽 편으로 모래사장이 드러났지만 뭐니뭐니 해도 북쪽 서해바다로 떠 있는 세 봉우리의 토끼섬이 장관이었다.

국화도와는 500여㎙도 떨어지지 않은 조그마한 무인도. 깍아지른 절벽과 우람한 소나무들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평상시에는 국화도와 떨어져 있지만,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져 나갔을 때는 자갈길이 열려 섬들을 잇는다. 섬 위의 또 다른 섬인 토끼섬은 국화도 여행의 숨은 진주다. 토끼섬으로의 나들이가 신선했다.

토끼 섬 너머로 제법 규모가 ?입파도가 가물거렸다. 관리인 외에는 주민이 살지 않는 입파도 역시 자갈 해변이 아름답게 깔려 여름철 피서지로 손색이 없다. 국화도에서 모타보트로 10분. 왕복 6만원 정도의 배삯이 필요하지만, 크게 아깝지 않다.

국화도의 밤, 날씨가 흐려 별빛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멀리 장고항의 명멸하는 빛외에 아무런 빛도 없는 새카만 하늘을 대하는 느낌도 남달랐다. 세상에서 유배된 기분, 그러나 여유롭고 행복했다.

/국화도=한국일보 송용창기자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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