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화려하다’라는 표현이 딱 알맞은 축구 강국이다. 우승 경험은 없지만, 1974, 1978 월드컵에서 두 대회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요한 크루이프와 밀란 3총사(레이카르트·판 바스턴·굴리트) 등 말이 필요 없는 세계 축구사의 전설도 배출해냈다. 유로 1988에서는 사상 첫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도 들어 올렸다.

‘우아함’의 대명사였던 데니스 베르캄프 ⓒAFPBBNews = News1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데니스 베르캄프와 에드가 다비즈, 필립 코쿠, 프랑크 데 부어 등 ‘세계 올스타’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스쿼드를 자랑했다. 준결승전 페널티킥 불운에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눈물을 삼켰지만, 오렌지 군단의 화끈한 공격 축구는 팬들을 사로잡았다.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프랑스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네덜란드는 2006 독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다시 한 번 최정상급 전력을 자랑했다. ‘왼발의 마법사’ 아르연 로번을 중심으로 로빈 판 페르시, 라파얼 판데르 파르트, 베슬러이 스네이더르 등 선배 세대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공격진을 구축했다. 요리스 마테이선과 욘 헤이팅아 등이 구축한 수비진은 과거(야프 스탐·데 부어)에 비해 초라해 보였지만 네덜란드는 이를 탄탄한 조직력으로 메웠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결승전에 진출했다. 브라질과 우루과이 등 강력한 우승 후보를 격파하며 일궈낸 성과였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중원의 핵심 케빈 스트루트만의 부상 공백을 스리백으로 메워내며, 두 대회 연속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아르헨티나에 페널티킥 접전 끝에 패하기는 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선전이었다.

네덜란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9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를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화려함을 앞세웠던 전자의 시기와 실리를 앞세운 후자의 축구는 확연히 다르지만, 이름값에 걸맞은 성과를 내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베르캄프와 다비즈, 로번과 스네이더르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중심을 잡아준다는 점도 닮았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세대교체 실패 이후 겪었던 침체기다. 네덜란드는 유로 2000 이후 암울한 시절을 보냈다. 베르캄프가 은퇴를 선언했고, 패트릭 클루이베르트는 이전과 달랐다. 다비즈와 코쿠 등이 건재했지만, ‘신예’가 보이지 않았다. 전통이나 다름없던 팀 내 불협화음도 끊이질 않았다. 90년대 후반의 황금세대는 변화에 이은 발전에 실패했고, 이는 2002 한-일 월드컵 유럽예선 탈락으로 이어졌다.

2017년 네덜란드는 로번이 공격의 중심이자 전술이다 ⓒAFPBBNews = News1
2017년의 모습은 당시와 판에 박은 것처럼 닮았다. 네덜란드는 아직도 로번에 의존한다. 어느덧 은퇴를 바라보는 30대 중반이 됐지만, 로번은 네덜란드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전술이다. ‘제2의 앙리’로 불렸던 라이언 바벨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네덜란드 리그를 평정한 멤피스 데파이나 퀸시 프로메스 등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특히 ‘노장’ 판 페르시를 다시 불러들일 정도로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보이지 않는다. 2016~2017시즌 EPL 27경기(선발 7) 2골 2도움의 성적을 올린 빈센트 얀센이 오렌지 군단의 최전방을 책임진다. 지난 시즌, 독일을 떠나 포르투갈에 둥지를 튼 장신(196cm) 공격수 바스 도스트가 있지만, 스피드가 강점인 팀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판 바스턴, 클루이베르트, 판 니스텔로이, 판 페르시 등으로 이어져 온 스트라이커 계보를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크다.

중원에서도 스네이더르를 대체할만한 자원이 보이지 않는다. 2016~2017시즌 아약스의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이끈 데이비 클라센에게 기대를 걸지만, 강한 인내심이 필요해 보인다. 조르지니오 바이날둠, 불가리아전 승리의 주역 데이비 프뢰퍼나 토니 필헤나 등도 확신을 주지 못한다.

수비도 다르지 않다. 버질 반 다이크가 대형 수비수의 탄생을 기대케 하고 있지만, 소속팀과 불화로 프리시즌을 날려버렸다. 2014 브라질 월드컵 3위의 주역 브루노 마르틴스 인디와 스테판 데 브리 등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골문 역시 ‘전설’ 에드윈 반 데 사르와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 마르틴 스테켈렌뷔르흐 이후 확실한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네덜란드를 구하기 위해 돌아온 만 69세 딕 아드보카트 감독 ⓒAFPBBNews = News1
네덜란드는 위기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A조에서 3위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1일 프랑스 원정에서는 치욕적인 0-4 패배를 당했다. 지난 4일 홈에서 열린 불가리아전에서 기사회생(3-1 승)했지만, 플레이오프(2위)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오는 10월, 벨라루스(원정)와 스웨덴(홈)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유로 2016에 이은 두 대회 연속 메이저 대회 탈락은 현실이 된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눈앞에 다가온 침체기를 피해갈 수 있을까. 설령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해도, 유로 2004에 등장한 세대에게 의존하며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가 다시 한 번 찾아온 침체기 앞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축구팬들의 관심이 모아진다. 스포츠한국 이근승 객원기자 lkssky02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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