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피 발굴 성과, 염기훈·이근호 좋은 킬러… 세계축구와 격차 해소 진행중

핌 베어벡 축구대표팀 감독이 숙소인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가진 스포츠한국 3주년 특별 인터뷰 도중 자신의 기사가 실린 스포츠한국을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지곤기자
핌 베어벡 축구대표팀 감독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지극히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하나는 아시안컵 관련 대표팀 차출 문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병환이었다. 베어벡 감독의 아버지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심장마비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하지만 베어벡 감독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언론이 한국 축구를 도와주기 때문에 대표팀 감독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축구팬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며 프로다운 자세를 보였다. 2시간에 걸친 장시간의 대화에서 베어벡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과 한국 축구의 발전에 관한 생각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드러냈다.

아시안컵 전망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지 1년이 됐다. 당시 세계 축구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했는데 얼마나 진행됐나.

=국제 축구와의 수준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팀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드컵이 끝나면 언제나 은퇴하는 선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또 부상 선수가 많아진다. 그래서 첫번째 나의 시도는 ‘젊은 피’들의 기량을 조금씩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상당히 재능 넘치는 선수들을 많이 발견했다. 두번째 과정은 세계적인 팀들과의 경기를 통해 한국 축구와의 격차를 확인했다. 그리스 우루과이 네덜란드전에서 조금씩 어린 선수들을 투입해 성과를 얻었다.

▲아시안컵에 대한 전망을 해보자. 객관적인 전력상 우리의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해외파 선수가 많이 빠졌지만 아직도 한국은 4강에 들 수 있는 전력이다. 목표는 일단4강이고 그 이후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체력과 부상, 심판의 판정 등 변수들이 팀 전체적인 분위기에 영향 미칠 수 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코칭스태프도 아시안컵 우승은 상당히 커다란 도전이다.

▲김남일(수원)의 공백은 어떻게 메울 것인가.

=오장은(울산)이 절대적으로 나의 첫번째 옵션이다. 그는 올림픽 예선에서 잘 해줬고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 물론 훈련 과정에서 김상식과 손대호 이호보다 낫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는 골 결정력과 수비 불안이다.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감독으로서 나의 몫은 조직력 향상이다. 프로팀들이 동계훈련에서 8주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2주만에 해결하겠다면 오히려 건방진 말이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훈련하는 장면들을 계속 찍어서 선수 개인에 맞춰 영상 편집해 보여주고, 대비책을 만드는 것이다. 수비에 관해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리스전에서 무실점이었고, 우루과이와 네덜란드전 실점은 수비 조직력의 잘못은 아니었다.

▲킬러 본능을 갖고 있는 선수는.

=염기훈(전북)은 상당한 ‘킬러 기질’을 갖고 있다. 이근호(대구) 역시 마찬가지다. 조재진(시미즈)은 이미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이천수(울산) 역시 굳이 말할 필요없이 잘해주고 있다. 최성국도 성남에서 골을 넣기 시작했다. 김두현도 추가적으로 득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다. 우성용의 경우는 이번이 마지막 국제대회 참가이기 때문에 의욕이 강할 것이다.

태극 전사에 대한 평가

▲히딩크 감독 시절부터 6년 넘게 한국 선수들을 지켜봤다. 가장 성장한 선수가 있다면.

=이천수다. 언제나 그를 생각해왔고 매우 잘 해 줬다. 최근 이적 루머들로 인해서 복잡한 심경일 텐데 그럼에도 매 경기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다. 최성국 역시 많이 발전했다. 2002월드컵 이후 한동안 침체됐었는데 지금 점점 살아나고 있다.

▲실망했던 선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없다. 백지훈(수원)을 염두에 둔 질문 같은데 그는 한국 선수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고, 아직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공격형 선수로 발전하고 있는데 안타까운 점은 이미 대표팀에 그 역할을 해주는 선수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시안컵에서 뽑지 않았을 뿐이다. 수원에서 그의 실력은 점점 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유럽과 남미의 선수들보다 기술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아니다. 유럽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선수들은 유럽의 기술에 비해서도 상당히 수준이 높다. 차이를 보이는 대목은 전술적 판단과 결정력이다. 유럽 선수들은 양발을 사용 못한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양발을 쓴다.

▲2001년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해 한국 선수들의 수준은 어떤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국제 대회에 나설 수 있는 23명의 선수를 발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반면 지금은 30명을 넘게 뽑을 수 있고 오히려 숫자를 줄이는 과정이 힘들어졌을 정도다.

K리그와의 진통

▲아시안컵 대표팀 선발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었는데.

=내게는 아주 명확한 문제였다. 14일의 훈련 시간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23일 소집 문제가 1주일 전에 불거진 점이 안타깝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얘기했더라면 원만한 해결도 가능했다.

▲소집 규정을 FIFA원칙대로 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가능성은 있지만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소집 규정을 정했을 때에는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충분히 예상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시안컵 소집은 FIFA규정과 똑같았다.

▲올림픽대표팀도 최종예선을 치러야 한다. 전망은.

=홈에서 우리 스타일을 살려 이긴 뒤 원정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올림픽팀은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더욱이 아직 우리는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을 뽑지 않은 상태다. 지금 선수 구성도 상당히 만족스럽지만 20세 청소년월드컵이 끝난 뒤 선수 운용 폭은 더 넓어질 수 있다. 그리고 박주영을 잊어선 안 된다. 그가 돌아오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축구 마니아들을 위한 질문이다. 가장 뛰어난 축구 선수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역대 최고는 물론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다. 난 네덜란드인이기 때문이다(웃음). 1년 전이라면 난 호나우지뉴(브라질)가 최고의 선수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팬을 위해서 그리고 팀을 위해서도. 하지만 지도자들이 선호하는 선수는 팀 공헌도가 높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스티븐 제라드(잉글랜드)가 최고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팀에 공헌할 수 있는 선수다.

▲감독마다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이 다른데 베어벡 감독만의 축구 개성과 스타일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의 자질에 맞춰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이다. 유럽은 장악(control)하는 축구를 구사한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돌리면서 최종 스트라이커에게 볼을 연결시킨다. 반면 우리는 최대한 공격수에 볼을 빨리 배급해주려 한다. 템포 조절이 필요하다. 아시안컵에서 가장 큰 적은 현지 기후다. 그런 상황에서 90분 내내 상대를 압박할 수는 없다. 볼 소유를 지속적으로 하다가 차분하게 공격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