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마케팅 도구 불과" vs "한국인 집단상실감 위로"

네덜란드 예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만든 노란색 고무 오리인형 러버둑이 서울 석촌호수를 헤엄치고 있다. 러버덕은 14일까지만 전시된다. 양태훈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지난달 14일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에 거대 오리가 등장했다. '러버덕 프로젝트-서울'이 시작된 것이다. 러버덕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출신 공공미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고안했다.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자그마한 고무오리를 거대하게 제작해 전 세계를 누비도록 하는 게 호프만의 계획이었다. 러버덕은 2007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브라질 중국, 일본 미국 홍콩 등 전 세계 16개국을 순회하며 인기를 끌었다. 호프만은 직접 전시 장소를 결정한 뒤 현지에서 재봉틀로 박아 매번 새로운 러버덕을 완성한다. 따라서 나라와 시기에 따라 러버덕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석촌호수 러버덕의 크기는 가로 16.5m, 세로 19.8m, 높이 16.5m다. 무게는 1t이 넘는다.

호프만이 말하는 러버덕 프로젝트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러버덕 프로젝트에는 국경도 경계도 없다.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으며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 러버덕엔 치유의 속성이 있다. 물 위에 다정하게 떠있는 오리를 보면 저절로 치유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러버덕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의 긴장이 해소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앙증맞은 부리와 통통한 엉덩이, 깜찍한 표정을 자랑하는 러버덕은 이내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많은 인파가 석촌호수에 몰리며 러버덕 열풍이 불었다. 러버덕이 유유히 호수 위를 유영해도, 바람이 빠져 고꾸라져도 화제에 올랐다. 바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인들이 몇 시간 짬을 내서라도 러버덕을 보려고 안달이었다. 러버덕 열풍이 한 차례 한국을 휩쓸고 지나가자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러버덕의 이면을 보자'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많은 인원이 몰려 호수 위 목재 데크가 휘어지는 바람에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는 얘기, 하루 2~3명의 미아가 발생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러버덕이 헤엄치는 곳이 문제라는 지적도 많았다. 석촌호수는 제2롯데월드(롯데월드몰) 공사가 진행되면서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 한 전문가는 "석촌호수는 더 이상 호수가 아니다"라며 딴 곳의 물을 퍼부어 석촌호수 수위를 맞추고 있는 지경이라고까지 했다. 이 전문가는 석촌호수 물이 계속해서 지하로 흘러들면 지반침하 현상이 발생해 제2롯데월드와 인근 건물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했다.

러버덕이 롯데 측의 마케팅 도구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러버덕을 이용한 롯데의 마케팅은 치밀하다. 롯데백화점은 구매고객을 대상으로 러버덕 이모티콘(카카오톡)을 제공한다. 판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선착순으로 2만 명에게만 제공한다. 러버덕이 있는 곳에서 굴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롯데월드 야외 놀이동산이 나온다. 석촌호수를 찾은 방문객이 러버덕 인증샷을 들고 놀이동산으로 향하면 자유이용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러버덕 프로젝트의 정보와 러버덕의 세계 일주를 감상할 수 있는 러버덕 갤러리는 롯데백화점 잠실점 9층과 제2롯데월드 6층에 마련돼 있다. 러버덕 기념품을 살 수 있는 팝업스토어 역시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본점, 제2롯데월드 등에 있다.

네덜란드 예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만든 노란색 고무 오리인형 러버둑이 서울 석촌호수를 헤엄치고 있다. 러버덕은 14일까지만 전시된다. 양태훈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호프만은 러버덕 프로젝트의 상업성 논란에 대해 "전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후원사가 필요할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호프만의 의도와 무관하게 롯데는 러버덕으로 엄청난 매출 증대 효과를 누렸다. 러버덕 프로젝트를 주최한 롯데가 쓴 돈은 15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개월 준비 끝에 러버덕이 석촌호수에 떴을 때 제2롯데월드는 임시 개장했다. 러버덕을 보려고 6일 만에 약 72만 명이 석촌호수에 몰려들었다. 그러자 제2롯데월드 면세점 매출이 기존 잠실점보다 20% 이상 올랐다. 러버독이 안전불감증 문제로 비난의 화살을 받은 제2롯데월드의 이미지를 귀엽고 편안하게 바꿔놓았다는 지적도 있다. 롯데로선 러버덕이 황금알을 쑥쑥 낳은 오리인 셈이다.

물론 러버덕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일종의 유쾌함을 선사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놀이공원 카니발처럼 화려한 움직임이나 특별한 표정 변화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러버덕 주위로 몰려드는 까닭은 러버덕 자체의 매력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버덕은 서울프로젝트 시작 전부터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영국 런던, 중국 상하이 등 여러 도시를 도는 러버덕의 모습이 의인화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공유됐다. 크레인을 이용해 러버덕을 설치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사진에는 '나 머리끄덩이 잡혔?', 러버덕이 강을 흐르다가 어느 다리에 머리가 낀 장면을 담은 사진에는 '머리 꿍 했?' 등의 설명이 붙으며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러버덕이 서울에 입성할 때도 네티즌은 환호했다. 바람이 빠져 기울어진 러버덕에는 '물을 마시고 있다'거나 '시차 적응이 어려워 지친 상태다'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아 시무룩해졌다' 등의 재치 있는 설명이 붙었다.

일각에선 러버덕이 한국인들의 집단적인 상실감을 위로하고 치유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호프만이 러버덕의 다음 행선지를 서울로 정할 무렵 한국에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대참사가 벌어졌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그것이다.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부근에서 돌연 침몰했다. 이 사고로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이 실종됐다. 세월호 탑승객 중 대부분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몸을 실었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다.

네덜란드 예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만든 노란색 고무 오리인형 러버둑이 서울 석촌호수를 헤엄치고 있다. 러버덕은 14일까지만 전시된다. 양태훈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안전을 무시한 규정 완화, 높은 수익을 위한 결함 방치와 불법 개조, 가만있으라고 하고는 배를 버리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어른들의 욕망이 아이들의 목숨을 앗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위로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람들은 치유를 위해 뭔가를 찾아야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나 러버덕 프로젝트가 한국인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킨 까닭이다. 이를 테면 상당수 한국인에게 러버덕은 '상실의 시대'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희망의 오리이기도 했던 셈이다.

초롱초롱한 두 눈과 앙증맞은 엉덩이, 야무진 부리…. 고무오리 러버덕이 한국을 떠난다. 방문하는 나라마다 새로운 고무오리가 탄생하기에 한국의 러버덕은 폐기되거나 물이 없는 곳에 전시되는 운명을 가질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든 간에 두 가지는 분명하다. 14일이 지나면 석촌호수에서 러버덕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 한국에서 그 어떤 장난감도 러버덕만큼 많은 사람(440만명 추산)을 한 곳으로 불러 모으지 못했다는 것. 어찌됐든, 굿바이 러버덕.

네덜란드 예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만든 노란색 고무 오리인형 러버둑이 서울 석촌호수를 헤엄치고 있다. 러버덕은 14일까지만 전시된다. 양태훈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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