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시즌 개막을 앞두고 KBO리그는 ‘홈런왕’ 박병호(31·미네소타 트윈스)를 미국으로 떠나보냈다.

SK의 최정.사진 이재현 기자.
그러나 KBO리그는 박병호의 공백이 무색하게 다시 한 번 토종 홈런왕을 배출해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선수가 홈런왕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바로 ‘소년 장사’라는 별명을 지닌 SK 최정(30)이 주인공이었다.

홈런왕 타이틀을 얻어냈지만 최정에게 2016시즌은 어제 내린 눈과 같다.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각종 시상식에 참석했던 그는 연말을 처가가 있는 부산에서 보냈다.

그러나 휴식도 잠시 새해 시작과 동시에 그는 홈구장인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찾았다. 비시즌 기간이지만 1월부터 구장 출입이 가능해짐에 따라 개인 훈련에 나서기 위함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덕아웃을 찾았을 때도, 그는 오전부터 웨이트 트레이닝과 기술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땀을 흘린 채 라커룸을 빠져나온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최정은 2017년 새해 목표로 시즌 전 경기 출장을 내걸었다. 부상 없이 더욱 건강한 시즌을 보내고자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시즌 타율 2할8푼8리, 40홈런(공동 1위), 106타점(10위)을 기록하며 타율을 제외한 모든 지표에서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다소 의외의 답변이었다.

‘홈런왕 재도전’이 아닌 다소 의외의 답변을 내놓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홈런왕 타이틀은 그저 운이 좋아 얻어낼 수 있었던 타이틀이라는 것이다.

최정은 “데뷔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제 자신을 ‘홈런 타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며 “운이 많이 따랐던 기록인 만큼, 기록에 구애받지 않고 매 시즌 꾸준하게 제 몫을 다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오히려 2017시즌 ‘홈런왕’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일 조차 부담스럽다는 그다.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꼽히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나 지난해의 홈런왕 타이틀은 최정에게 영광 그 자체였다. 다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소속팀 SK가 최근 4시즌 동안 포스트시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 2015시즌 리그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섰던 것이 4시즌 간 SK가 경험한 유일한 가을야구였다.

따라서 그는 오롯이 개인이 빛나는 홈런왕 보다 헌신과 꾸준함으로 대표되는 ‘시즌 전 경기’ 출장을 통해, 팀의 반등에 크게 기여하고자 했다.

최정은 “팀 성적과 별개로 개인 기록만 준수한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결국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해야 개인 기록도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여타 개인 기록 보다 시즌 전 경기 출장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팀의 반등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 반영된 탓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정상 컨디션인 최정을 매 경기 기용하지 않을 감독은 없다. 그러나 SK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최정도 새해 목표인 ‘전 경기 출장’을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되풀이 하지 않아야할 지난 시즌의 과오가 존재한다. 바로 지난 시즌 전반기의 부진이다.

지난 시즌 최정은 ‘홈런왕’이라는 영광을 누렸지만, 전반기만 하더라도 그는 거센 비판에 시달렸다. 전반기의 흐름이 최악에 가까웠기 때문. 특히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던 것은 득점권 타율. 그는 전반기 84경기에서 20홈런을 때려내고도 타점이 55점에 불과했다. 이는 1할3푼6리에 머물렀던 저조한 득점권 타율에서 기인한다.

SK 최정. 스포츠코리아 제공
최정은 “정말 힘들었다. 평소 득점권 타율은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득점권 부진이 하나 둘씩 쌓이며 부담이 생겼는데 역시 깊은 부진으로 이어졌다”라고 지난 시즌 전반기 부진 이유를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최정은 후반기 들어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후반기 57경기에서 타율 3할2푼5리, 20홈런, 55타점을 기록한 것. 줄곧 지적받았던 득점권 타율 역시 후반기에는 5할까지 치솟았다. 여타 시즌에 비해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이 늦어지면서 전반기와 후반기의 명암을 갈랐다는 것이 그의 진단.

이미 문제점을 파악한 만큼, 최정은 일찌감치 이에 대한 대비에 들어갔다. 다음 시즌 컨디션을 빠르게 끌어올리고자 개인적으로 사비를 들여 해외 원정 훈련을 계획했다. 그는 오는 10일 팀 동료인 정의윤, 조동화, 한동민 등과 함께 괌으로 떠난다. 예년보다 늦게 시작되는 스프링캠프 일정(2월 1일 시작)이기에, 시즌을 준비할 시간이 짧아질 것을 우려한 특단의 조치.

피곤할 법도 한 일정이지만 최정은 개의치 않았다. 그 어느 때 보다 팀에 큰 변화가 발생했기에, 힘들 때 마다 마음을 다잡고 있다는 최정이다. 그는 “선발진의 에이스 김광현의 시즌 아웃은 물론 외국인 감독인 트레이 힐만 감독까지 부임하며 2017시즌을 앞두고 팀 전체에 큰 변혁이 이뤄졌다”며 “지난 시즌 전반기처럼 흔들릴 여유가 없어, 훈련에 매진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최정은 지난해 20대 초중반 선수들의 고속성장을 이끌어 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로 ‘한국시리즈 2연패’라는 대성공을 거둔 두산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에 그는 다가올 시즌을 ‘신 SK 왕조’ 구축의 원년으로 삼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올해 그가 바라보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인 셈.

“올해로 만 30세가 된 만큼, 제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후배 선수들의 올바른 발전에도 기여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두산의 성공을 보며 이러한 생각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팀의 호성적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연초의 마음가짐을 올시즌 종반까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소년 장사’ 최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느새 자신 뿐 만 아니라 주변까지 살필 수 있는 ‘관록의 장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지난 시즌의 굴곡을 통해 한 뼘 더 성장한 최정은 2017시즌의 성공을 위해 뛰고 또 뛸 전망이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