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가 있다. 바로 KBO를 대표했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자, 최근까지 프로야구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헐크’ 이만수(58)다. 어느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그는 젊어서도 하지 않았던 고생을 사서 하는 중이다.

이만수 전 SK 감독.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이만수 전 SK 감독은 말 그대로 야구인생 시작부터 지난 2014년까지 줄곧 ‘스타’였다. 이처럼 화려한 야구 인생만을 걸어왔던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 2014년 10월 SK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뒤 대중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던 것. 1983년부터 평생 프로야구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는 막막함에 사로잡혔다. 미래에 대한 고민만 늘어갔다.

더 이상은 이대로 지낼 수 없다는 생각에 이 전 감독은 마음을 정리하고자 아내에게 '동유럽 여행'을 제안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아내의 꾸짖음이었다. 지난 2013년 지인에게 약속했던 '재능기부'를 실천하라는 것. 그 순간 그는 불현듯 1년 전의 약속을 떠올렸다. 자신의 미래 인생 목표가 설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 2013년 SK 감독으로 재임 중이었던 당시 이 전 감독은 지인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바로 라오스에서 '재능기부'에 나서달라는 것. 수락은 했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그는 지인의 제안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는 “나는 큰 의미 없이 수락했지만 지인은 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수차례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연락해왔다”며 “2014년에 1000만원 상당의 야구장비들을 지원한 것이 전부였지만, 시즌이 끝난 후 약속을 지키라는 아내의 지적에 무작정 라오스로 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최빈국으로 통하는 라오스의 실상은 '열악함' 그 자체였다. 기본적인 야구 용품은 물론, 흔한 야구장조차 하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질리 만무했다.

이만수 전 감독은 라오스의 효과적인 야구 전파를 위해 후원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거절뿐이었다. 일회성 이벤트를 핑계로 금전적 이득을 챙기려한다는 오해까지 샀다. 주위의 냉담한 반응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전 감독은 “제가 프로야구를 벗어나 사회에서 처음으로 배운 것은 '거절'이었다. 아무도 나의 진심을 믿어주지 않았을 때,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한 충격을 받았다”며 “다들 '이만수가 버티면 얼마나 하겠는가. 한 달이나 제대로 할까'라고 비웃기도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라오브라더스 선수단을 직접 지도하고 있는 이만수 전 SK 감독.
그러나 그는 '헐크'라는 자신의 별명답게, 뚝심어린 정면 돌파를 택했다. 45명의 15~25세 선수들로 구성된 라오스 최초의 야구팀, '라오 브라더스'를 창단한 이 전 감독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봉사를 이어갔다. 언젠가는 자신의 진심이 통할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

결국 그의 뜨거운 진심이 통했다. 얼음장처럼 차갑던 후원자들도,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 그를 곱지않게 바라보던 라오스 당국도 그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 전 감독은 “묵묵히 라오스 내 야구 전파에 집중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니 라오스는 물론 국내에서도 나의 진심을 알아줬다”며 “결국 시간이 흐르자 나의 진심이 통했다”라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만수 전 감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4월 자신의 별명을 딴 ‘헐크파운데이션’ 재단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일정한 체계를 갖춘 조직적인 봉사활동의 기틀을 마련한 것. 심지어 지난 8월에는 자신의 광고 출연료 전액인 2억 원을 라오 브라더스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은 지난달 7일 라오스 총리로부터 훈장을 받는 결실로 맺어졌다.

라오스 아이들을 통해 나눔 그리고 봉사에 발을 들이자, 이만수 전 감독은 국내로도 자신의 봉사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는 현재 라오스는 물론 국내 유소년 중·고·대학 야구팀, 사회인 야구는 물론 여자 야구팀까지 찾아다니면서 재능기부에 나서고 있다.

야구의 저변을 넓힐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다니는 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이 전 감독은 “라오스에는 1년에 최소 4차례 이상 방문하는데 짧게는 10일, 길게는 20일도 머문다. 여기에 작년 기준으로 엘리트 야구팀만 40개 팀을 방문했다. 1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프로팀 감독으로는 1년 중 6개월을 집 밖에서 생활했다면, 감독 퇴임 이후에는 1년 중 무려 8개월을 집 밖에서 보낸다. 오히려 프로야구 감독시절이 한가했다”라고 말한 뒤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생활비마저 프로야구 감독으로 재임할 당시보다 배 이상 쓰고 있다는 이 전 감독이다. 그는 왜 정신적, 육체적, 게다가 금전적으로도 많은 고통이 따르는 ‘고난의 길’을 스스로 택했을까.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자신이 받았던 분에 넘친 사랑을 이제는 돌려줘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

이만수 전 SK 감독.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이 전 감독은 “나도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예순이다. 사실 몇 번이나 발을 빼고 싶었다. 블로킹을 직접 지도할 때면 온 몸이 쑤신다. 생각 이상으로 금전적 지출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면서도 “여러모로 힘들지만 내가 지난 수십 년간 야구를 하며 받았던 사랑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라고 힘줘 말했다.

또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으니 나라도 실천해야 옳다. 야구인들이 이제는 말로만 사랑을 나눠주는데 그치지 말고 행동할 때다. 야구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봉사에 나서다보니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눈빛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사명감 하나로 곳곳에 야구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이만수 전 감독. 그러나 프로야구 현장을 향한 그리움은 남아있지 않는 것일까.

여전히 야구팬들은 그의 현장 복귀를 바라고 있는 눈치. 이에 대해 그는 “내 마음대로 복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모든 것은 구단주의 결정에 달려있다. 복귀를 위해 그 주위를 맴돌면 피폐해질 뿐이다”며 “복귀를 못하더라도 재능기부에 힘쓰면 그만이다. 결코 조급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사랑을 나누는 삶을 몸소 실천 중인 이 전 감독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물론 라오 브라더스를 위한 번듯한 경기장과 훈련시설 건립은 그의 당면 과제이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과 같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후진 양성이다.

“재능기부를 하면서 매번 무료 강연까지 하고 있는데, 제 삶을 보고 은퇴 이후 저처럼 봉사를 다짐하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죠. 죽을 만큼 힘들어도 가장 보람찬 순간이기도 해요. 저와 같은 선구자는 힘들지만 제 뒤를 따를 후배들이 분명 나타날 것이라 믿어요. 저는 없어져도 야구계에 뿌리내린 나눔의 정신은 계속 이어지겠죠. 그것 하나면 더 이상 바랄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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