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형래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에 대한 도전에 대한 기류, 그리고 인식도 바뀌고 있다. 투수가 대세였던 메이저리그 도전은 이제 야수들이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선수들이 큰 족적을 남긴 포지션은 투수였다. '아시아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박찬호를 필두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개를 거머쥔 김병현과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던 서재응, 김선우, 그리고 현재 부상으로 빠져있지만 LA 다저스 주축 선발 요원인 류현진 등이 미국 무대에서 한국야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이 외에도 조진호, 봉중근, 이상훈, 구대성, 임창용 등이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한 번 이상 밟았던 선수들이다.

넥센의 박병호(왼쪽)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강정호. 스포츠코리아, ⓒAFPBBNews = News1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 박찬호 이전 박철순이 밀워키 브루워스에 입단을 했다. 비록 마이너리그에서만 머물렀지만 박철순이 걸은 길 자체가 한국 야구의 역사가 됐다. 이후 최동원과 선동열, 박동희 등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이목을 이끌었다.

마운드에 홀로 우뚝 서 있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 하는 투수 포지션의 특성상, 한국 야구 팬들은 큰 덩치의 외국 선수들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모습에 더 큰 희열을 느꼈다. IMF 외환위기 당시 박찬호의 등판 경기 때는 삼삼오오 TV 앞으로 모여 그의 승리에 국민들이 함께 환호했던 기억들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한동안 투수들의 활약이 뜸하긴 했지만 최근 류현진이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두 자릿 수 승수를 거두는 등 활약을 계속하자 그의 소속팀 다저스는 박찬호 이후 다시 한 번 '국민 메이저리그 팀'이 됐다.

하지만 최근 한국 선수들이 투수로 진출하는 경우는 류현진 케이스를 제외하곤 전무하다시피 하다. 류현진은 KBO 리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성적을 거두면서 약 2573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 그리고 6년 36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류현진 효과는 다른 한국 투수들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류현진의 후광을 업고 메이저리그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도전한 윤석민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3년간 557만 5000달러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14년 한 시즌 동안 마이너리그만 전전하면서 올시즌을 앞두고 KIA로 '유턴'했다.

아울러 2014년 시즌 종료 직후 나란히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미국의 문을 두드렸던 김광현(SK)과 양현종(KIA)은 차가운 관심 속에 도전을 접어야 했다. 김광현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200만 달러 포스팅 금액으로 연봉 협상을 시도했지만 불발됐고, 올해 KBO 리그에서 활약했다. 양현종은 터무니 없는 포스팅 금액으로 연봉 협상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LA 다저스의 류현진(왼쪽)과 지난 201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했었던 KIA 윤석민. ⓒAFPBBNews = News1
결국 한국 투수들에 대한 경쟁력을 미국 현지에서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류현진과 함께 KBO 리그 '영건 트로이카'를 형성했던 윤석민과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실패는 많은 것을 시사했다. 올림픽이나 WBC와 같은 국제대회 성적은 뛰어났지만 단기 토너먼트가 아닌, 162경기의 대장정을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구위와 제구력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KBO 리그를 대표하는 3명의 투수가 메이저리그 도전에 실패하면서 국내 투수들에 대한 경쟁력에 의문부호가 생겼다.

하지만 반대로 타자들에 대한 시선은 오히려 투수와는 달랐다. 야수들에 대한 경쟁력은 메이저리그 진출 러시가 이어지던 시기에도 회의적이었다. 대부분 투수가 진출했다. 그러나 최희섭이 시카고 컵스에서 '거포 1루수'로 희망을 봤고, 추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활약을 거듭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인 타자들에 대한 시선은 바뀌었다.

여기에 지난해 KBO 리그 유격수에서 경쟁자를 찾을 수 없었던 강정호가 피츠버그에 500만 2015 달러의 포스팅 금액으로 한국인 야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시선은 완전히 돌아섰다. 강정호는 정강이 골절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했지만 그는 올시즌 피츠버그에서 121경기 출장해 타율 2할8푼7리 15홈런 58타점 OPS(출루율+장타율) 8할1푼6리로 연착륙에 성공하면서 한국인 타자들에 대한 기류는 완전히 바뀌었다.

메이저리그 도전에 대한 어린 선수들의 도전 역시 기류에 편승 중이다. 박찬호의 진출 이후 투수들이 대거 메이저리그를 노렸다. 하지만 추신수와 강정호의 성공 이후 타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박효준(뉴욕 양키스), 그리고 올해 도전을 선언한 권광민(시카고 컵스)는 모두 야수로 메이저리그의 문턱에 도전 중이다.

그리고 올시즌 후, 한국인 타자들을 중심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은 열풍으로 번졌다. 이미 지난 2일 KBO를 통해 포스팅 공시를 요청한 박병호(넥센)를 비롯해 손아섭, 황재균(이상 롯데)이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를 피력했다. 여기에 자유계약선수 자격인 김현수(두산)가 메이저리그 팀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왔고 지난 3일 '일본시리즈 MVP' 이대호가 귀국 기자회견을 통해 메이저리그 도전을 공식화 하면서 총 5명의 국내 대표 타자들이 미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는 투수들에 대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리는 반면, 타자들은 충분히 승산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특히 장타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KBO 리그4년 연속 홈런왕, 그리고 2년 연속 50홈런을 달성한 박병호에 대해 강정호의 소속팀인 피츠버그의 지역 언론들이 호의적인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피츠버그 지역지 '피츠버그 트리뷴'은 피츠버그의 장타력 보강의 방법으로 박병호의 영입을 꼽았다. 이 매체는 "피츠버그의 장타력은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박병호는 피츠버그가 계속해서 관찰해온 선수 중 한 명이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강정호보다 더 많은 포스팅 금액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박병호 뿐만이 아니다. 박병호를 비롯한 KBO 리그 타자들의 장타력은 미국에서도 충분히 통한다고 보고 있다. KBO 리그가 '타고투저'의 리그인데 반해 미국인 몇년째 '투고타저'의 시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장타력 있는 선수들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 장타력 있는 선수들을 찾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국제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호세 아브레유(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강정호는 대표적으로 해외 시장에서 건져낸 '파워 히터'다.

넥센의 박병호. 스포츠코리아 제공
KBO 리그 타자들이 장타자 기근에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한국 타자들의 발전 속도에 있다. 이미 KBO 리그 타자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화 하면서 몸을 키우는 벌크업에 열중했다. 벌크업을 통해 체중을 늘리면서 파워를 몸 안에 축적시켰고 이는 배트 스피드에 대한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자연스레 배트스피드가 빨라지면 투수들의 공에 대한 대처 능력과도 직결됐다. 넥센 히어로즈가 이러한 벌크업의 열풍을 주도했고, 강정호는 대표적인 결과물이었다. 강정호가 미국에 한국 타자들의 파워를 알리면서 한국 타자들의 파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 하물며 한국에서 강정호보다 더 많은 홈런을 때려낸 박병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반면, 투수들은 타자들의 발전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타자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단련하는 등 단기간에 결과를 낼 수 있는 반면, 투수들의 경우 타자보다는 훨씬 예민한 포지션이다. 구종 하나를 추가하는 데에도 쉽지 않고 투구폼 교정 등을 통한 투구 밸런스를 잡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어린 선수들이 고교야구 때 제대로 된 투수 교육을 받지 못한 것 역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혹사 논란을 막기 위한 지나친 보호가 완투형 투수는 고사하고 5이닝 이상을 제대로 던질 수 있는 강견투수의 출현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KBO 리그에서 프로 데뷔 이후 2~3년 내에 확실하게 두각을 나타낸 투수들은 찾기 힘들어졌다. 이미 미국을 떠난 류현진, 그리고 메이저 도전에 실패했지만 윤석민, 김광현, 양현조종 등 특급 투수들과의 보통 투수들의 격차는 확연하게 벌어져 있다. 그리고 타자들과 투수들의 격차는 더욱 심화됐다. 최근 KBO 리그가 '타고투저'가 완연한 것도 이러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이미 기류는 바뀌었다. 메이저리그 팀들의 눈에도 한국 타자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을 여러차례 확인했다. 과연 우리는 제2, 제3의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2016년 몇 명의 한국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의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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