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왼쪽)와 아사다 마오.
"나는 왠지 아사다 마오가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25일 아사다가 "2014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공언한 소식을 들은 이찬란(32)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김연아의 팬이 된 이후 오랜 기간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했고 아사다도 피겨스케이팅의 한 선수로 좋아해 왔다. 이씨는 "아사다의 말을 듣는데 김연아와 비교가 됐다"고 했다. 그는 "김연아는 올림픽을 즐기고 오겠다고 했는데 아사다는 금메달을 안 따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하더라"며 "둘 다 현역으로 서는 올림픽 마지막 무대로 부담감이 상당할 텐데, 한 사람은 성숙해 보이고 한 사람은 여전히 덜 자란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스포츠닛폰 등 일본 언론은 26일 "아사다가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선언한 것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아사다는 4년 전 밴쿠버올림픽을 앞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금메달의 주인공은 김연아. 아사다는 이후 금메달에 '금'자도 입에서 내뱉기 꺼렸다. 소치올림픽 목표를 묻는 질문에는 대부분 "득점이나 순위는 목표가 아니다.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다소 빤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 그녀가 달라진 것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는 걸까. 일본 언론은 "아사다가 그간 삼가던 금메달 선언까지 했다"며 이례적인 아사다의 반응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일본선수권 대회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인 때문으로 봤다. 아사다는 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겨우 따냈다. 장기인 트리플악셀을 처참하게 실패하는 것도 모자라 경기력도 형편없었다. 일본 언론은 아사다가 대회 결과에 실망했고 그로 인한 분한 감정이 금메달 선언까지 하게 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아사다의 '자신만만한 혹은 분한'의 감정은 보기에 아슬아슬한 면이 없지 않다. 피겨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아사다는 김연아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회전수 부족이라든가 두발착지의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데도 트리플악셀을 고집하는 것도 김연아를 의식한 때문이다. 아사다로서도 김연아를 넘어서고 싶겠지만 일본 피겨 관계자와 일본 팬들의 바람을 무시할 수 없는 면도 크다. 환하게 웃으며 소치 금메달을 선언한 아사다의 모습에서 다급하고도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은 까닭이다.

김연아도 아사다만큼 부담을 받고 있다. 현역 생활의 마지막 무대를 아쉽게 끝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평소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며 "금메달을 따게 되면 그건 그대로 좋은 것"이라고 말해왔다. 밴쿠버올림픽서 금메달을 목을 걸었기에 한결 여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선수가 '난 지난번에 잘했으니까 이번엔 좀 덜 잘해도 돼'라고 생각할까. 세계 톱클래스 수준의 선수일수록 매 경기 자신이 노력해온 실력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훈련한 만큼 펼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선 선수일수록 아래로 추락하는 게 더 무서울 수도 있다. 김연아는 그럴수록 경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팬들에게 솔직하다.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한 만큼 완벽한 경기를 보여주겠다"고 자신하면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김연아는 지난 골드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가 끝난 뒤 한 국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때론 위로받고 싶다.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다"며 속마음을 드러냈다. 살짝 여린 모습을 내보이더라도 약한 것은 아니다. 억지로 당찬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강한 것도 아니다. 김연아의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 더 당당하고 차분하게 보이는 이유다.

잘하는 것은 즐기는 것에 당할 수 없다.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영원히 넘어서지 못했던 살리에르도 음악을 즐기지 못했다. 이씨 같은 피겨 팬들이 최고의 여성 피겨 선수 중 한 명인 아사다를 안쓰럽게 보는 건 그에게서 살리에르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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