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즈(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회자 되는 것은 단순히 평균자책점을 1점대(1.74)로 시즌을 마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5,692개)이 나왔던 2000년에는 40홈런 타자가 16명(2014년 1명)이었으며 3할 이상의 타율을 올린 선수가 무려 53명(2014년 16명)이 나오며 역사상 최고의 '타고투저'시대였다.

이에 투수들의 성적은 당연히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다. 리그 평균자책점은 4.77이었고 특히 아메리칸 리그는 리그 평균자책점 2위가 3.70에 달했다(로저 클레멘스). 하지만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평균자책점 1.74로 공격적인 타자들을 더 공격적으로 찍어 눌렀고, 리그 평균자책점 1, 2위의 차이가 1.96이상 벌어진 시즌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이때가 유일했다.

즉, 2000년의 페드로는 단순히 잘 던진 것을 넘어, 역사적인 투고타저 시대에서 그 시대 자체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처럼 ‘시대를 지배했는지’ 여부를 여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조정 평균자책점(ERA+)다. 조정 평균자책점은 타자/투수 친화적인 구장, 당시 리그의 상황 등 많은 요소를 고려해 평균을 100으로 두고 더하거나 빼는 기록으로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조정평균자책점 291을 기록, 1900년대 이후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가장 높은 조정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통산 2위 1914년 레오나르드 282).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이 기록은 투고타저 시즌이 계속 진행 중인 현재의 메이저리그에서 깨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바로 잭 그레인키 (32·LA 다저스)의 폭주 때문이다.

20일(한국시각), 현재 메이저리그 최강으로 여겨지는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 등판한 그레인키는 8이닝 3피안타 11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시즌 9승(2패)째를 챙겼다. 상대가 사이영상을 두고 경쟁 중인 맥스 셔저였다는 점에서 더 뜻 깊은 승리였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조정평균자책점이 265였던 그레인키는 이날 경기로 인해 조정평균자책점이 281로 상승했다.

물론 평균자책점은 이미 2000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1.74를 넘어 1.30이지만 여전히 조정평균자책점 291의 벽은 높다.

하지만 올 시즌을 끝으로 옵트아웃(계약기간 내에 FA시장에 나설 수 있는 권리) 조항이 생기는 그레인키의 남다른 동기부여와 함께 팀 동료 클레이튼 커쇼와의 경쟁심리 등은 그레인키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조정평균자책점에도 충분히 도전해볼만해졌다.

어느새 조정평균자책점을 10차이(페드로 291, 그레인키 281)로 따라잡은 그레인키. 과연 그레인키는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넘어 단일시즌 조정평균자책점 1위에 등극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단순히 ‘잘하는’ 그레인키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 메이저리그 역사에 도전하고 있는 그레인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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