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에 앉아 뽀뽀" 낯뜨거운 벌칙 강요… 여학생 피해 상담 늘어
엄연한 희롱·추행인데 가해자는 "장난… 억울"
왜곡된 성의식 만연

여대생 박모(23)씨는 미팅을 포기한 지 오래다. 몇 년 전 호기심에 나갔다가 불미스런 일을 당한 뒤부터다. 남학생들은 "이성과 잠자리를 가졌느냐" "몇 번 했느냐" "언제 했느냐" 같은 거북한 질문을 예사로 했고, "서로 친해져야 한다"며 무릎에 앉아 술을 마시고 뽀뽀하라는 게임 벌칙까지 강요했다. 박씨는 "함께 나간 여대생 3명 모두 성추행을 당한 기분이었지만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적당히 받아넘겼다"고 했다. 그에겐 대학시절 낭만으로 불리는 미팅이 지우고 싶은 악몽으로 남았다.

얼마 전 한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미팅에서 여학생을 어떻게 하면 XX할 수 있나'라는 내용이 버젓이 올라와 여학생들의 공분을 샀다. 일명 '술 게임'을 빌미로 신체접촉(스킨십)을 유도하고 여성이 술에 취한 뒤 OO하라는 식이었다. 여대생 이모(22)씨는 "남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더 불쾌했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 동아리, MT나 캠퍼스 내에서 술 게임을 빙자한 성추행이나 데이트 추행이 만연하고 있다. 술에 취해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성추행 또는 성희롱을 하는 것은 엄연한 데이트 성폭력이지만 피해자는 "참자"고 넘어가고, 가해자는 "장난"이라고 여기니 문제 해결도 쉽지 않다. 미국에서 사회문제가 된 '데이트 강간'의 한국판이자, 1980년대 건전한 사교의 장으로 불리던 미팅이 그릇된 성문화의 온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술 게임의 폐해는 심각하다. "과 MT 때 술에 취해 잠든 여자 후배를 더듬은 남자 선배를 발견하고 항의했지만 유야무야 됐다", "동아리 술자리에서 매번 술 게임을 빙자한 심한 스킨십에 시달려 여자 동기들끼리 술 게임을 거부하기로 했다", "미팅 때 한두 번쯤 불쾌한 일을 겪지 않은 친구가 없다" 등 여대생이라면 술 게임과 미팅에 얽힌 거북한 기억이 많다.

심지어 지난해 서울시내 한 대학 축제에선 남자 대학생 A씨가 미팅 중 술에 취해 여대생들의 치마를 들추고 다리를 만지는 일이 벌어졌다. A씨는 2010년에도 성추행 혐의로 학과활동을 금지 당하고 군대까지 갔지만 제대 후 다시 비슷한 짓을 되풀이한 것이다. 나모(23)씨는 "미팅 소개팅 등에서 데이트 추행이 빈번히 일어나지만 적절하게 조치가 된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 A씨는 사건 이후 여성단체의 위탁교육프로그램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도 교육은 진행되지 않았다. 데이트 추행이 경미한 사안으로 치부되는 탓이다. 그나마 피해자들은 교내상담소에서 추후 대처방법을 교육받지만 가해자에 대한 조치는 미흡하기만 하다.

성폭력상담소의 김두나 활동가는 "최근 지속적으로 상담이 들어오는 데이트 추행의 경우 가해 남성 대부분이 '장난이었다' '억울하다' '성추행인지 몰랐다' '피해자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 등 오히려 불만을 드러낸다"며 "입시위주 교육, 음란물 범람에 따른 왜곡된 성 인식 등이 낳은 우리시대 남성의 자화상"이라고 꼬집었다.

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여성 254명이 성추행, 91명이 성희롱 상담을 받았다. "수치스러움 때문에 상담을 받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피해자들을 감안하면 피해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상담소의 설명이다. 각 대학 교내 양성평등센터 등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 "정확한 수치를 밝힌 순 없지만 데이트 추행 관련 상담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