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탐닉하는 대한민국⑦]잠 잘 곳과 한 끼 식사가 절실한 가출 소녀
나쁜 오빠, 나쁜 아저씨들… 채팅으로 본 남성들

[제휴뉴스= CBS 변이철·홍영선 기자] ◈ 잠 잘 곳과 한 끼 식사가 절실한 가출 소녀 ◈

지난 2010년 가을 서울 강북구 수유리 먹자골목의 한 갈비집. 가희(당시 16/가명)는 배가 너무 고파 '먹튀(먹고 돈 안내고 도망가기)'를 하다 주인에게 붙잡혔다. 집을 나온 지 한 달 째였다.

가희 부모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혼했고 가희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가희를 때렸다. 어머니가 견디지 못한 폭행은 가희에게 이어졌다.

식당일을 하며 혼자 단칸방에 살던 어머니는 상황을 알고서도 손 쓸 방법이 없어 그저 아버지 말을 잘 들으라고만 했다.

'먹튀'로 경찰에 붙잡힌 적이 여러 번이라 대수롭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서에 있으면 잘 수도 있고 경찰이 먹을 것도 주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단지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다. '먹튀'가 생활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루 8시간 전단지를 돌리고 받는 돈은8,000원. 밥 값만 5,000원이 훌쩍 넘는데 이 돈으로 잘 수 있는 곳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잠잘 곳이 없어 하룻 밤 묵었던 쉼터에서 고등학생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조건만남'으로 돈을 벌어 숙식을 해결한다고 했다. 언니는 남자들이 제시한 키, 몸무게, 나이 등을 복사했다가 똑같이 채팅방에서 써먹었다며 '조건만남'의 방법을 알려줬다.

16살 중학생 가희는 살기 위해 집에서 거리로 나왔지만, 다시 거리에서 살기 위해 '조건만남'을 하기로 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지난 해 12월 '성매매피해여성의 정신건강 및 지원욕구' 조사를 한 결과, 청소년지원시설 입소자 106명의 첫 성매매 시작 연령은 평균 15.05세로 나타났다.

또 성매매 유입경로도 인터넷이 69명(66.99%)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 나쁜 오빠, 나쁜 아저씨들…조건만남에서 만난 남성들 ◈

가희는 PC방에서 채팅방을 만들어 남성을 만났다. 랜덤채팅 류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서도 이라는 제목의 방만 만들면 득달같이 남성들이 달려들었다.

가희와 같은 10대 소녀들과 조금이라도 먼저 대화하기 위해 앞다퉈 쪽지를 보내며 경쟁했다. 대화를 거부해도 끈질기게 '조건'을 흥정하기도 했다.

그곳의 남성들은 10대의 여성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의를 가지고 돈이 필요한 소녀들이 채팅방을 만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희는 성구매 남성들이 화장실에서 씻는 사이 몰래 지갑을 훔쳐보며 그들이 누구인지 목격했다. 10대 소녀의 성을 사는 남성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보통 남성들이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도 다양했고, 초등학교 교사, 공무원부터 피잣집 배달부까지 직업도 다양했다.

최악의 성구매자는 힘을 쓰는 남성이었다.

신림역에서 만난 30대 회사원도 그랬다. 처음엔 정중했다. "무슨 일이 있길래 집에 안 들어가는 거냐"며 걱정을 하고 얘기도 들어줬다.

하지만 모텔에 들어가는 순간 그는 짐승으로 변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요..."라고 말했지만 막무가내로 힘을 써 가희를 제압했다.

손목에 멍이 들었다. 단 둘이 있는 공간, 절대적 약자인 가희는 조건만남을 하면서 성구매자로부터 맞은 적도 여러 번이라고 고백했다.

경기도 오정경찰서 부정주 경사는 기고문에서 청소년 상대 성구매 남성들이 수사과정에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말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 하루살이 인생 "지금까지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죠" ◈

성구매 남성들의 폭행이 두려웠던 가희는 쉼터에서 만난 언니인 새미(당시17/가명)와 함께 조건만남을 하기로 했다. 새미는 "싸움 잘하는 오빠들을 많이 알고 있다"며 "자기 밑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괜찮다"고 가희를 안심시켰다.

그러던 중 가희의 배가 불러왔다. 임신이었다. 가희는 더이상 조건만남을 할 수 없었다. 가희는 역시 쉼터에서 만난 동생 지혜(당시15/가명)에게 조건만남을 시켰다. 새미와 가희가 채팅을 해서 성구매자를 물어오면 지혜가 조건만남을 하는 식이었다.

지혜가 반항을 하면 새미가 말을 들으라며 때렸다. 가희는 그것을 지켜만 봤다. 지혜는 맞기까지하면서 언니들이 시키는대로 조건을 하는 이유를 "혼자 다니는 것이 무서워서"라고 가희에게 말했다.

그러나 3주가 지나자 언니들의 폭력과 압박을 견디지 못한 지혜는 번 돈을 가지고 도망쳤다. 임신 5개월 째 가희는 지금의 청소년 성매매 피해시설로 왔다.

도망간 지혜는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모든 일을 털어놨고 지혜의 아버지는 가희와 새미를 경찰에 고소했다. 가희는 성매매 알선 등의 혐의로 법원에서 보호관찰 2년을 선고 받았다.

경찰 조사를 받으며 가희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들이 나한테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쉼터에서 잘 지낼 것이고 나도 꿈이라는 것을 꾸고 싶습니다."

가출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다 조건만남에 빠졌던 성매매 '피해자' 가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됐다.

서울시가 지난 6월 가출 청소녀 1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십대여성의 가출과 폭력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출 청소녀의 40.7%는 성폭력 피해 경험이, 4명 중 1명(25%)은 성매매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가출 청소녀의 절반 이상인 55.3%가 성산업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희를 돌보고 있는 시설 관계자는 "가희와 같은 아이들은 하루 살이로 오늘만 살면 끝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다 보니 당장 먹고 살 일을 해결하려고 조건만남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를 막기 위해서는 "무너진 가족공동체의 복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면서 "그런 상황이 안된다면 가족을 대체할 만한 돌봄 공동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정주 경사는 기고문에서 "청소년 대상 성구매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신상공개"라며 "재범자부터는 아무런 조건없이 신상등록과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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