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성진

▶ 하이든 교향곡 전집 녹음…亞 최초, 세계 6번째
▶ ‘세계 초연’ 이안 크라우스 작품 ‘낙소스’서 발매 예정
▶ ‘2022 그래미 어워즈’ 강력한 수상 후보 기대
▶ 모차르트, 베토벤 교향곡 전곡도 시도 예정
▶ 국내 흔치않은 쇼스타코비치 전문가이기도
▶ 폭넓은 레퍼토리…모든 작품 ‘암보’ 지휘
▶ 국군교향악단 창단해 세기의 이벤트 선봬
▶ 11년째 ‘UN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 진행
▶ 2023년 ‘6·25 정전’ 70주년 공연서
▶ 손흥민과 토트넘구장, 류현진과 토론토구장 공연 및
▶ 로열 앨버트홀 무대까지 ‘핫 이슈’ 연속
▶ 댄스/무술/스포츠/붓글씨도 능해…지휘법에 응용
▶ UCLA 음대 졸업 때까지 ‘올A’ 최우수생
▶ 록/메틀 애호가, 일렉기타 연주에도 조예
▶ ‘첫 눈에 반해’ 아내와 만난 지 9일 만에 결혼
▶ 아내는 美 국방부 소속 약학박사
▶ 딸 또한 UC샌프란시스코 수석 졸업 ‘美 의학계 재원’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서초문화재단(대표 박동호) 상주예술단체인 서초교향악단이 하이든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하이든 교향곡 전곡(107곡) 녹음에 들어간다. 2025년까지 완성 예정인 하이든 교향곡 전곡 작업은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6번째 시도다.

그간 안탈 도라티, 아담 피셔,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등의 지휘자가 하이든 교향곡 전집을 완성했고 지오바니 안토니니가 지난 2014년부터 전집 녹음을 시작해 2032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도다.

이 방대한 작업은 배종훈(58) 서초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가 있기에 가능했고 조은희 서초구청장 및 서초문화재단 박동호 대표의 관심과 적극적 지원도 빼 놓을 수 없다.

조은희 서초구청장 재임 시작 얼마후인 2015년 출범한 서초문화재단은 서리풀 페스티벌 개최 및 합창단 운영과 상주예술단체인 서초교향악단 등과의 협업 등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문화예술도시 서초’를 지향한다는 조은희 구청장의 포부가 잘 발휘돼 5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서초문화재단은 그 어떤 지자체에서도 보기 힘든 음악/예술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사진=조성진

405석 규모의 반포 심산아트홀은 그간 두 차례 리모델링을 통해 전문공연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부 음향시설을 비롯한 제반 환경은 국내의 유명 공연장을 능가할 만큼 잘 꾸며놨다. 이곳에서 매월 공연하는 서초문화재단 주최 ‘화요콘서트’는 서초교향악단이 국내 및 세계의 유명 연주자들과의 협연 등 다양한 무대를 통해 그 인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 3월 16일 화요콘서트에선 하이든 교향곡 8~9번, 플롯 4중주 1번 등을 선보였고 오는 4월 20일 화요콘서트에선 하이든 교향곡 10~12번, 호른협주곡 1번(이석준 협연)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간 걸어온 범상치 않은 행보는 물론 이후 프로젝트 역시 세계가 주목할 시도를 하고 있는 배종훈 감독을 반포동 심산기념문화센터에서 만났다.

하이든 교향곡 전곡 도전에 대해 배종훈 감독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곡가일 뿐 아니라 악단의 앙상블 역량을 체계적으로 쌓아가는 데도 하이든은 가장 좋은 텍스트라 여겨서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이든 교향곡 전집 중에선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와 아담 피셔의 연주를 꼽고 싶습니다. 호그우드는 당시 악기에 충실한 정격 연주를 통해 미세한 음정의 차이까지도 살려내고 있어 하이든 작품의 기준(스탠더드)으로 평가받죠. 아담 피셔는 빈 타입 톤 컬러가 매력으로 호그우드보다 피치가 높아 밝고 경쾌하고 우아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이외에 전집은 아니지만 하이든 교향곡을 연주한 지휘자 중 네빌 마리너도 높게 평가합니다. 하이든의 분위기를 잘 살린 지휘란 점에서.”

하이든 교향곡 전곡 녹음과 함께 배 감독은 서초교향악단을 이끌고 2023년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의 하이든홀에서도 공연 예정이다. 유럽 음악계의 명소 중 하나인 하이든홀에서 지자체 상주예술단체가 하이든 교향곡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한국 최초다.
 

사진=조성진

서초교향악단은 올해 반포심산아트홀에서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이안 크라우스(Ian Krouse)의 현을 위한 교향곡 제1번 ‘희망과 평화를 위한 행진’, 현을 위한 교향곡 제2번 ‘자유의 송가’를 세계 초연했다. 그리고 그래미상 수상자들 다수와 작업한 유명 엔지니어와 미국 현지에서 마스터링/편집을 거쳐 여름 전후로 세계적인 음반사 낙소스(NAXOS)에서 발매 예정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상징성을 감안해 곡 길이도 38분(38선)으로 해 평화와 자유의 이념을 강조했다. 이 작품을 작곡한 이안 크라우스는 그래미 어워즈 선정위원으로도 활약할 만큼 미국 및 세계 음악계에서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발매되기도 전에 이미 미국 음악 관계자들이 이 앨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일 뿐 아니라 다음 해 그래미 어워즈의 ‘강력한’ 수상 후보작 중 하나로 기대를 모으고 있을 정도다.

낙소스는 상업성보다 유능한 아티스트와 가치있는 작품 소개(녹음)에 비중을 두고 있으며 특히 현대음악 녹음 시리즈에 적극적 관심을 보인다. 현대음악 거장 윤이상의 현악/관악 작품들도 낙소스를 통해 발매되고 있을 정도다. 방대한 음악 컨텐츠가 집약돼 있는 ‘낙소스 라이브러리’는 전 세계의 수많은 대학/학교와 기관들이 가입해 사용 중일 만큼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또한 낙소스 음반사는 그래미 어워즈와도 친숙하다. 지난 3월 열린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낙소스의 두 앨범이 합창(코럴)과 현대음악 작곡 부문을 수상했다. 또한 2013년 55회 그래미에선 바르샤바 필하모닉 챔버 오케스트라(안토니 비트 지휘)가 낙소스에서 발매한 펜데레츠키 ‘포노그라미’가 수상했으며, 2011년 제53회 그래미에선 한국계 美실내악단 파커 콰르텟이 연주한 리게티 현악4중주 앨범(낙소스)이 최우수 실내악 퍼포먼스상을 받았다. 이처럼 낙소스에서 발매되는 작품들(특히 현대 작곡가)은 자료적 가치가 높아 그래미 측에서도 크게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백건우, 유영욱, 김다미 등 유명 연주자도 낙소스에서 앨범을 발매한 바 있다. 특히 백건우가 낙소스에서 발매한 ‘프로코피에프 피아노협주곡’은 디아파송 상을 수상할 만큼 이 분야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배종훈 감독은 미국에서 활동할 때부터 이안 크라우스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크라우스가 “내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지휘자 중 하나”로 극찬할 만큼 배감독에 대한 신임이 남다르다.

배종훈 감독은 하이든 전곡 도전과 함께 모차르트, 베토벤 교향곡도 병행해 녹음할 예정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을 먼저 녹음하는 일반적 방식이 아니라 1번부터 차례대로 녹음하는 다소 ‘고지식한’ 형태를 취할 예정이다.
 

서초교향악단을 지휘하고 있는 배종훈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이외에 가야금 연주자 양성희(인간문화재)와 콜라보 등 여러 프로젝트도 예정돼 있다. 한민고등학교 교가도 배종훈 감독이 작곡했다. 한민고는 군인 자녀를 위해 설립된 학교다.

올해 말 자신의 작품 ‘신의 영광을 위한 서곡’도 발표할 예정이다. 작곡가로서의 그의 역량은 이미 빈 국립음대 재학 시절 지도교수로부터 남다른 평가를 들어왔다.

지난 해에 배종훈 감독은 세기의 공연 이벤트를 준비 중이었다. 6·25 발발 70주년이 되는 2020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등 참전국을 순회하는 공연이 예정돼 있었던 것. 런던 토트넘 구장에서 공연하고 손흥민도 출연 예정이었으며 토론토 구장 공연 때엔 류현진도 출연 예정이었다. 이외에도 로열 앨버트홀 무대 공연까지 준비됐다. 국회 통과 등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으나 코로나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성사만 됐다면 세계가 주목할 이벤트였다. 6·25 정전 70주년이 되는 2023년에 이걸 다시 시도할 계획이다.

2012년엔 하노이에서 한·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 공연도 했다. 비(사회), KCM 등 스타 가수들이 함께 했다.

배종훈 감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육해공군 합동의 98인 규모 국군교향악단 창단이다. 배 감독은 국군교향악단 초대 음악감독으로 3년간 활동했고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으로 창단 기념 공연도 가졌다. 뿐만 아니라 미국 투어까지 감행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이 미국 투어는 범상치 않은 희대의 이벤트로 평가된다.
 

국군 오케스트라를 포함해 현역 130여 명과 미국 투어를 했는데, 하이라이트는 샌디에이고 항구에 정박 중이던 미드웨이 항공모함에서 했던 공연이다. 한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는다는 항공모함 선상에서 교향악단이 공연을 펼친 건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 미드웨이 항공모함에서 가수 박효신이 ‘My Way’를 불렀고 국군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했다. 배우 이준기가 사회를 맡았다. 배 감독은 이 국군교향악단과 LA 등 여러 곳에서 6차례 공연을 했다.

국군 오케스트라 창단 당시 국방부 문화정책과장 오상훈 서기관과 특히 소통이 잘 돼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군교향악단 창단 당시 오상훈 과장은 배 감독에게 “당신 같은 또라이는 처음 본다”고 했을 정도로 배 감독의 음악적 열정에 탄복했을 정도다.

배 감독은 지난 2009년부터 국가보훈처 주최·주관, 호국문화진흥위원회 후원 ‘UN 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군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다. 이 뜻깊은 음악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데에는 한성기업(임우근 회장)의 후원도 빼놓을 수 없다. 임우근 회장은 ‘UN 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의 취지가 너무 좋다고 여겨 물심양면 행사 전반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오고 있다.

배 감독은 내년부터 모교인 UCLA에서 첫 학기부터 강의를 맡아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배종훈 감독은 모든 작품을 암보 지휘하는 거로도 유명하다. 교향곡에서 협주곡, 성악/합창곡 등 셀 수 없이 많은 레퍼토리를 지금까지 모두 암보로 지휘했다.
 

배종훈 감독이 국가보훈처와 함께 11년째 진행하고 있는 ‘UN 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호국문화진흥위원회 후원).

그는 국내보다 미국 유럽 등 현지에서 더 명성을 날렸다.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아메리칸 유스 심포니, 부다페스트 국립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홀과 베를린 필하모닉홀 등등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다수를 지휘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로이스홀 등에서 매년 LA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당시엔 임동혁, 권혁주 등을 미 주류에 알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배종훈 감독은 국내에선 흔치 않은 쇼스타코비치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서바토리 및 세계적 명문인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거쳐 UCLA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석사(합창·오케스트라) 학위 및 박사(오케스트라) 졸업했다. UCLA 재학 기간 내내 ‘올 A’를 받을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다. 졸업 때까지 ‘올A’를 받은 건 UCLA 음대 사상 배종훈 감독이 유일할 정도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분석이 UCLA 박사 과정 논문이었다. 그는 쇼스타코비치 관련 각종 진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00년대 중반 아메리칸 유스 심포니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지휘해 당시 플라시도 도밍고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그곳 언론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이외에도 배 감독은 LA에서 ‘보컬 페다고지’로도 활동했다. 그만큼 지휘/작곡뿐만 아니라 소리와 인체 전반에 대한 구조와 흐름까지도 집요하게 파헤치며 연구했다.

UCLA 유학 시절 “목숨 바칠 만큼” 음악 전반 엄청난 학구열을 불태웠다. 작품마다 다른 해석을 비교/분석코자 각 지휘자의 음반을 닥치는 대로 사서 들었고 관련 서적 또한 셀 수 없이 많이 샀다. 구입비로 10만 불 이상을 썼을 정도다. 당시 UCLA 로버트 윈터 교수는 배 감독의 학문적 열정에 “너는 정말로 미친 인간이다. 한번 빠지면 끝을 모를 만큼 빠져 버리니까. 그래서 더욱 좋아한다”고 말한 건 유명한 일화다.

배 감독은 소위 황금의 ‘글로벌 인맥’을 유지하고 있다. 클래식계의 세계적인 명 음악인들은 물론 프랭크 자파의 건반 연주자로 활동하던 피터 울프 등등 록, 재즈 등 타 음악 관련 뮤지션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딥퍼플 ‘Highway Star’에서 지미 헨드릭스, 게리 무어 ‘Still Got the Blues’ 등을 완주할 수 있을 만큼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도 조예가 있고 헤비메틀 애호가이기도 하다. 배 감독과의 인터뷰 동안 클래식 지휘자의 입에서 각종 록 뮤지션과 재즈 등 많은 대중 음악인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대중가수를 보는 안목도 남다르다. ‘미스트롯’ 김태연을 방송에서 처음 접하곤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고 했다. 배 감독은 지금도 김태연 이름만 나오면 입에 침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배종훈 감독의 지휘 스타일에 대해 주변에선 “강압 독재적이지 않고 단원과 소통 잘하는 마인드”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처음 귀국했을 때 지휘자로서 스타카토, 레가토에 대한 개념으로 많이 부딪히기도 했다. 이 용어 개념에 대한 국내의 인식이 현지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서초교향악단 윤염광 부악장은 “처음 서초교향악단에서 합주연습 할 때 감독님은 인토네이션, 피칭, 벨로시티 등의 개념을 강조하셨습니다. 당시 단원들에겐 생소할 수 있었는데 합주를 하며 그 중요성을 많이 깨닫게 됐죠”라고 말했다. 윤염광 부악장은 또한 “서초교향악단 이전에 다른 악단에서 연주할 때에도 지휘자가 이러한 개념을 디테일있게 언급했던 적은 없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배 감독이 롤 모델로 삼는 오케스트라는 루체른 교향악단, 베를린 필, 빈 필하모닉 등이다. 루체른은 단원 각자 하나하나 우러나오는 소리 및 앙상블의 탁월함이 매력이며, 베를린 필은 그 어떤 교향악단보다 활기/생기 넘치는 소리를 들려주고, 빈 필은 아름답고 섬세한 뉘앙스의 소리가 특히 강점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서초교향악단은 이들 악단의 장점을 수용해 사람 소리 잘 담아내는, 즉 단원 각자의 느낌, 감정을 잘 살려내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이러한 목표로 볼 때 현 단계 서초교향악단은 이제 50%까진 도달했다고 봅니다.”

배 감독은 에리히 라인스도르프,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카를로스 클라이버, 클라우스 텐슈테트 등을 특히 좋아한다. 이들 중에서도 ‘진실’을 강조한 라인스도르프, 그리고 매 순간 단원에게 노래를 시키듯 연주하게 하며 탁월한 앙상블 교감(교류)을 이끈 아바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지휘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소양으로 테크니컬(기술적인 영역)과 뮤지컬(감성적인 영역) 측면, 그리고 리더십을 꼽고 싶어요. 리더십엔 단원과 소통하는 마인드도 필수죠. 어떠한 작품을 연주하더라도 지휘자는 단원보다 많이 알고 있고 모든 게 준비된 상태라야 합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뒤쪽에 앉아있는 단원들의 연주 소리까지도 지휘자가 정확하게 듣고 있다는 걸 그들이 인식하게 해줘야 합니다. 또한 뒤에 있는 단원에게도 ‘네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언제나 고맙게 생각한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격려야겠죠.”

배종훈 감독은 1963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선장이었고 할아버지는 법조인이었다. 6살 때부터 '풍금'에 이어 바이올린-클라리넷-첼로-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 레슨을 받았다. 고2 때 작곡에 관심을 가졌고 그와 함께 지휘 연습도 병행했다. 매일 부산 인근의 공동묘지를 찾아 연습했다고. 공동묘지에서 연습하는 게 집중력 강화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처음엔 집에서 음악을 취미로만 하길 바랬다. 그나마 배 감독의 든든한 응원군은 할아버지가 유일했다. 배 감독이 20살 때인 83년 작곡 발표회를 준비할 때 할아버지는 “발표회 잘하라”며 당시로선 거금인 2000만 원이나 지원해 줄 정도였다.

배 감독은 어릴 때 ‘양산 댄스 콩쿠르’에서 입상할 정도로 끼가 많았다. 5~6살 무렵엔 이시다 아유미의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를 틀어놓고 5시간 넘게 춤을 출 정도로 신명이 넘쳤다.

댄스뿐 아니라 운동에도 능했다. 고교 시절 육상 선수로 활동했고 복싱, 태권도(2단) 등 무술에도 능했다. 이처럼 그는 태권도, 댄싱, 붓글씨 등등 여러 자세의 장점을 자신의 지휘 기법에 응용하고 있기도 하다. 골프 또한 지휘와 비슷한 점이 많아 몇몇 자세를 지휘와 연계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드라이브는 브람스 4번, 아이언은 베토벤 5번 등이다.

저 유명한 ‘맹호부대’ 군악대에서 군 생활을 한 배 감독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며 베토벤과의 연관성을 이렇게 말했다.

“이순신 장군의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베토벤 정신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배종훈 감독의 부인 양미숙은 미 국방부(펜타곤) 소속 약학박사로 현재 미8군에 근무하고 있다. 양미숙 박사와는 만난 지 9일 만에 결혼할 정도로 한눈에 반했다고. 결혼 30주년을 앞두고 있음에도 동갑내기인 이들은 서로 “자기야”라는 호칭으로 애정을 꽃피우고 있다. 현재에도 아내 양미숙 박사는 매일 아침 배 감독에게 좋은 성경 구절 하나를 써서 머리맡에 놓고 출근할 정도다. 배 감독 또한 사소한 거라도 아내와 공유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아내는 배 감독의 가장 든든한 음악적 조력자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꽤 중요한 일로 보였다. 둘이 잠깐 통화하는 외중에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느껴지는 그 ‘달달한’ 분위기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결혼 10년 차 이상의 한국 부부는 남편 또는 아내의 전화를 받을 때 무뚝뚝한 말투로 “어디야?” “왜?”라는 말부터 먼저 하는 게 일반적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배종훈·양미숙 커플은 한국 부부가 나아가야 할 모범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 감독과 양 박사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그중 딸 그레이스 배(25)는 UC샌프란시스코 수석 졸업의 약학박사로 미국 의학계가 주목하는 재원이다.

건강관리로 걷기와 등산을 열심히 하는 배종훈 감독의 노래방 18번은 강인원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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