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겐 감기처럼 흔한 증상 "성생활 연관" 단정은 오해일 뿐
곰팡이로 인한 발병이 대부분 스트레스·면역력 저하도 원인
휴가철 물놀이 후 감염도 많아… 통풍·규칙적 세정, 예방에 효과

질염 경험이 있으면 휴가철 물놀이를 갈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 전문의들은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고 질세정제를 사용해 볼 것을 권한다.
20대 직장인 백모씨는 지난해 이맘때 난생 처음 산부인과에 갔다. 냉이 심해지고 냄새가 나는 것 같더니 질 주위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려워졌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오가며 질 주위를 씻어냈는데도 증상은 심해졌다. 덜컥 겁이 났지만 친구나 가족에게도 말하기가 꺼려졌다. 평소 얼마나 지저분했으면 그럴까, 생활이 문란한 거 아닐까, 이런 오해를 살 것만 같았다. 참다 못해 용기를 내 찾은 병원에서 백씨는 질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여성에게 질염은 감기만큼이나 흔하다. 여성의 75%가 일생 동안 한번은 경험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여성이 질염에 대해 잘 모른 채 증상을 숨긴다. 전혀 그럴 필요 없다. 오히려 감기처럼 가볍게만 생각하고 방치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증상이 심해질 뿐 아니라 자꾸 재발하는 등 만성으로 진행될 수 있다.

원인은 기생충, 곰팡이, 세균

백씨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여성이 질염 하면 성생활부터 연관 짓는다. 물론 성관계를 통해 걸리는 질염도 있다. 이런 질염은 질에 사는 기생충(트리코모나스) 때문에 생긴다. 증상은 여성에게만 나타나지만, 치료는 남녀가 함께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질염 중 가장 흔한 건 칸디다라는 진균(곰팡이)이 일으킨다. 백씨의 증상도 바로 칸디다가 원인이었다.

질 주위가 가렵고, 소변을 보거나 성관계를 가질 때 아픔을 느끼는 증상은 두 질염 모두 비슷하다. 그러나 질에서 나오는 분비물은 다르다.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노란색이나 초록색의 심한 악취가 나는 분비물이, 칸디다 질염은 마치 치즈처럼 보이는 분비물이 나온다.

이처럼 질 분비물을 살펴보면 질의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건강한 여성도 생리주기에 따라 질에서 어느 정도 분비물이 나오지만, 정상적인 분비물은 투명하거나 흰색이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색이나 형태가 변하면 질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인 것이다. 분비물이 회색을 띄거나 생선 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나면 질 내부가 트리코모나스나 칸디다가 아닌 다른 세균에 감염됐다는 의미다.

질 속은 약한 산성

백씨는 지난 여름 처음 질염 진단을 받은 병원에서 질 주위 분비물을 제거한 뒤 처방 받은 약을 며칠 쓰니 금방 좋아졌다. 하지만 불과 2개월 뒤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한번 재발을 경험한 탓에 백씨는 요즘 여름휴가를 앞두고 다시 고민 중이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수영장이나 워터파크의 물 속에는 칸디다균이 활발하게 증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휴가 후 질염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사실 칸디다균은 건강한 여성의 질에도 있다. 평소엔 해를 주지 않다가 건강이 안 좋아지거나 스트레스, 과로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갑자기 번식하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피임약을 오래 먹어 체내 호르몬 농도가 변하거나 항생제를 많이 먹어 면역체계가 약해지거나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어 습한 환경이 만들어져도 질 속 칸디다균은 빠르게 증식한다.

건강한 질 내부는 수소이온농도지수(pH)가 3.8~4.2로 약한 산성을 띤다. 이 상태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유산균을 비롯한 유익한 세균에게 가장 알맞은 환경이다. 질 내부의 pH가 높아져 알칼리성으로 변하면 질염을 일으키는 병원성 세균이 활발하게 증식하고 유해한 세균이 쉽게 침입하면서 질 내 미생물 분포의 균형이 깨진다. 세균성 질염이나 노인성(위축성) 질염이 바로 이렇게 해서 생긴다. 특히 폐경 이후에는 질 내부를 산성으로 유지해주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 줄고, 분비물도 감소하면서 가벼운 자극에도 쉽게 상처가 나 세균에 더 쉽게 감염될 수 있다.

주 1~2회 세정해주세요

전문의들은 질염에 걸리지 않거나 재발을 막으려면 통풍이 잘 되는 옷을 입거나 다리를 꼬고 앉는 습관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질세정제를 사용하는 것도 예방법의 하나다. 세정제로 질 내부와 주변을 씻어내면 곰팡이나 세균이 제거되고 냄새도 없앨 수 있다. 시중에는 물에 타 희석해 쓰는 세정액과 질 속에 직접 넣는 좌약 형태가 나와 있다. 백씨도 질세정제를 써봤다. 그런데 백씨는 "재발했을 때 한 화장품 브랜드의 세정제를 쓰며 나아지길 기다렸지만, 별 변화가 없었고 결국 산부인과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질세정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질 내부의 약산성 환경을 유지하면서 병원균을 소독해주는 것이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일부 질세정제 중엔 냄새만 일시적으로 없애는 제품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실질적인 예방이나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문의들은 조언한다. 또 질세정제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면 질 내부의 pH가 변하면서 오히려 병원균에 감염되기 더 쉬운 상태가 될 수 있다. 질염 치료 목적으로는 하루에 한두 번, 질염 예방이나 청결, 냄새 제거 목적으로는 1주일에 한두 번 쓰는 게 적당하다.

미래아이산부인과 류지원 원장은 "산부인과에서 처방 받는 질좌제나 약국에서 파는 질세정액 모두 집에서 간편하게 쓸 수 있지만, 증상이 심하면 우선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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