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성진 부국장] 사람의 냄새는 땀샘에서 나온다. 땀샘은 원래 극히 작은 것이지만 사춘기 때에 커져 그 사람의 체취를 완성한다.

땀샘은 겨드랑이나 얼굴, 가슴, 생식기, 항문 등에 퍼져 있는데, 어느 학자는 키스의 쾌감이 실제론 개인의 체취가 느껴지는 상대의 얼굴 냄새를 맡고 애무하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키스도 섹스만큼 피부를 통한 촉각 또는 감각 교류의 극단적인 희열이면서 상대의 체취를 교환하는 장이기도 한 것이다.

향수처럼 화학 처리를 통해 가공된 냄새는 향을 오래 지속시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감수성 예민한 예술 매니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이나 작가의 문체, 또는 음악에서 독특한 향(체취)의 추억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체취는 오랫동안 현재진행형으로 퍼지고 있다.

50년 넘게 한국 대중음악사의 향을 지속시키고 있는 신중현의 체취도 마찬가지다.

그가 작곡한 ‘미인’, ‘빗속의 여인’, ‘아름다운 강산’ 등을 비롯해 ‘커피 한잔’,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봄비’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명곡들은 수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활발히 유통되는 한국 대중음악의 스탠더드 넘버, 즉 명품 클래식(고전)이다.
 

버클리음대가 홈페이지를 통해 "신중현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다"고 발표 [사진출처=버클리음대 홈피]

은퇴나 다름없는 ‘잔잔한’ 삶을 보여주는 대다수의 음악계 원로들과는 달리 신중현은 현재까지도 쉬지 않고 일을 벌이고 ‘저지르고’ 있다. 80을 몇 년 남겨두고 있지 않은 고령임에도 그의 남성 호르몬은 음악에 대한 열렬함으로 끊임없이 솟구치는 듯하다.

50년 넘게 음악 전반에 퍼진 신중현의 페로몬이 드디어 또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미국의 버클리음대가 지난 25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의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이고 록의 개척자인 신중현에게 내년 5월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다”고 밝힌 것이다. 로저 브라운 버클리음대 총장은 “신중현은 한국 음악의 글로벌화를 위한 기반을 닦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그를 높게 평가했다.

비록 버클리음대가 상업화된 측면도 없진 않으나 그럼에도 세계 대중음악계에서의 존재감은 여전히 크다. 지난 54년 버클리음악학교(Berklee School of Music)로 변경하고 70년 버클리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로 학교명을 확정한 이래 현재까지 200명이 훨씬 넘는 그래미어워즈 수상자를 배출해 냈다. 단일 학교로는 최대 규모다. 퀸시 존스, 알 디 메올라, 게리 버튼, 존 메이어 등과 같은 명 뮤지션들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신중현에게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는 소위 “개나 소나 다주는” 그런 게 아니다. 버클리 측이 심사숙고한 끝에 음악과 세계 문화 발전에 기여한 명인들에게만 수여하는 ‘영광’이다.

버클리음대는 지난 71년 위대한 재즈 뮤지션 듀크 엘링턴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처음 수여한 이래 지금까지 퀸시 존스, 아레사 프랭클린, 그리고 록그룹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 컨트리 스타 윌리 넬슨, 지난 1월 별세한 또 하나의 위대한 록뮤지션 데이빗 보이 등에게도 이 학위를 수여했다. 그리고 이 명예박사 대열에 신중현이란 이름이 더해졌다.

이번 수여는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도가 세계적으로 그만큼 넓어지고 영향력을 발휘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중현은 미8군쇼에서 ‘재키 신’이란 이름으로 올맨 브러더즈의 ‘In Memory Of Elizabeth Reed’ 등을 비롯한 기타 명곡들을 연주하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에드포, 덩키스, 골든그레이브스, 더맨 등을 거쳐 이남이 등과 함께 ‘엽전들’을 조직해 사이키델릭 하드록을 연주하며 한국 록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는 또한 기타리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재능 있는 가수 발굴에도 남다른 혜안을 가졌다. 박인수, 김추자, 장현, 김정미, 이정화, 장미리 등 많은 가수들이 신중현을 통해 유명해졌다.

그러나 신중현은 대마초 사건으로 75년 구속되고 연예인 활동도 정지되고 만다. 이때부터 그는 5년간 암흑 속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80년 11월 ‘신중현과 뮤직파워’로 되살아났다. 뮤직파워에서 그는 ‘아름다운 강산’과 같은 명곡을 선보였고 김동환의 걸출한 보컬 진가가 드러나는 ‘내가 쏜 위성’도 이 무렵의 작품이다.

이어서 그는 그룹 ‘세 나그네’로 다시 정통 록사운드를 연주했다. 기타리스트로서의 기량도 이때까지가 절정이었다.

신중현은 공연 활성화 차원에서 88년엔 ‘우드스탁’이란 라이프 카페를 오픈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음악작업은 물론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포함한 모든 공식적인 대외적 활동까지 이곳에서 했다. 나 역시 90년과 96년, 그리고 이후에도 몇 차례 이곳에서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96년에 여성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들로만 구성된 ‘기타스트라’라는 대규모 밴드를 조직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이후에도 그는 쉼 없이 크고 작은 일들을 도모하며 이슈를 만들어냈다.

기타리스트로서 신중현은 뛰어난 테크닉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보다는 왼손의 손맛이 좋은 연주를 펼쳤다. 특히 그는 벤딩 기술(왼손으로 기타 줄을 올리거나 내려가며 음정을 변화시키는 테크닉)과 비브라토를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벤딩은 록 기타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개성적이고 독보적이다. 전성시절 라이브 무대에서 그의 연주를 보면 벤딩과 비브라토가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며 튀어 나올듯한 생동감으로 넘쳤다. ‘매운 손맛’의 전형이다. 이외에도 그의 기타는 핑거링의 쓰임이 독특한 프레이즈의 종합판이다.

그러나 50여년이 넘도록 신중현 체취가 강렬하게 지속되는 것은 작곡가로서의 그의 뛰어난 역량도 단단히 한몫 한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고전들로 가득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어디서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곡들 다수가 신중현을 통해 나왔다.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 실바람도 불어와~”

신중현의 세 아들도 모두 뮤지션이다. 큰 아들 대철과 둘째 윤철은 모두 기타리스트이며 막내 석철은 명 드러머다. 대철은 이 땅에 헤비메틀의 열기를 가져온 명그룹 중의 하나인 시나위의 리드 기타리스트이고, 둘째 윤철은 블루스와 재즈, 록 등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명 세션 연주자이자 서울전자음악단과 원더버드의 리더였다.

박정희 정권 때엔 온갖 고초를 겪은 신중현에게 대한민국은 2011년 문화훈장 3등급인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