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창원=윤승재 기자] 375.9km. 인천SK행복드림구장과 창원NC파크 간의 거리이자, 10개 구단 홈 구장 거리 중 부산사직야구장(437.3km)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긴 거리이기도 하다. 시간으로는 4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이 거리를 NC다이노스 선수단은 대형 버스 3대에 몸을 싣고 움직인다.

창원을 홈 구장으로 쓰는 NC다이노스에게 원정 이동은 컨디션 관리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변수 중 하나다. 수도권 경기와 홈 경기가 번갈아 있는 주면, 선수들은 300km가 넘는 새벽 고속도로를 내달려 이동해 다음날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온전한 휴식을 취하기는 어렵다.

NC 버스기사 박정일 3호차 기사, 안석환 1호차 기사, 박성하 2호차 기사. (사진=윤승재 기자)
하지만 NC 선수들은 걱정이 없다. 험난한 먼 거리 원정을 편안하고 빠르게, 그리고 안전하게 이동시켜주는 버스기사들의 노고 덕분에 NC는 큰 지장없이 매 시즌 약 2만 km의 거리를 오가며 144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그 결과 NC는 창단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경기는 선수들이 하고 우승 역시 선수들이 얻어낸 결과물이지만, 뒤에서 묵묵히 이들을 서포트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NC다이노스의 원정길은 총 3대의 버스가 이동한다. 감독 및 코치진들이 탑승하는 1호차와 야수들과 투수들이 나뉘어 타는 2,3호차가 있다. 원래는 코치, 선수 구분없이 탔으나, 최근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이같이 나뉘어 움직이게 됐다.

선수단의 일정에 맞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세 버스를 운전하는 버스기사들도 선수들과 긴 시즌을 함께 해야 한다. 원정 72경기를 모두 따라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겨울엔 미국 스프링캠프까지 함께 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에 시즌이 늦게 시작하고 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면서 유독 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새벽길을 이동해야 하기에 하루하루가 힘듦의 연속이다. 여기에 화물차 졸음운전과 일부 극성 팬들의 고속도로 위 위험 행동까지. 선수들의 편안한 휴식도 고려하며 움직여야 하는 버스 기사들은 이같은 불의의 위험요소까지 마주하며 매 시즌 약 2만 km의 힘든 원정길을 다니고 있다.

(사진=윤승재 기자)
하지만 세 명의 버스기사들에게서 힘든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사들은 오히려 선수들이 환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는다며 으쓱해 했다. 무엇보다 이번에 팀이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면서 힘든 것보다는 뿌듯한 감정이 더 샘솟는다며 기뻐했다.

1호차를 담당하는 안석환 기사는 “10개 구단 중에서 우승한 팀이 몇 개나 되겠어요. (기사)선배들도 많은데 우승을 못 경험한 선배들도 많아요. 저희들은 선수들 덕에 14년부터 꾸준히 가을야구에 가고, 좋은 기억이 많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선수들에게서 힘을 얻는 일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기사들은 선수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더 조심스럽다고. 괜한 말 한 마디가 오히려 선수들의 경기력에 독이 될까봐 하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나성범을 필두로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신경을 써주는 모습을 보며 기사들은 정말 고마웠다고 전했다.

2호차를 담당하는 박성하 기사는 조금 특별한 고마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박 기사는 “지난 6월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일주일 만에 출근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선수들이 크게 신경을 안 쓸 줄 알았다. 하지만 선수들이 한 명 씩 다가와 이야기하고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고 고마웠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진=윤승재 기자)
가족들과의 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미국과 9개 구단 원정, 한 해의 반 이상을 타지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또 창원에 있어도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기사들도 있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3호차 박정일 기사는 “지금 창원에서 자취 중인데 집은 인천에 있어 주말부부가 됐다. 이전엔 SK와 고양(이전 NC 2군)에 있어서 가족과 같이 지냈는데, 지금은 혼자 떨어져 있으니까 함께 못 있다는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버스기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비시즌 때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NC 선수들이 편안하게 한국시리즈에 집중하게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전했다. NC 선수단은 플레이오프가 끝난 이튿날인 14일 창원에서 서울로 이동해 한국시리즈를 준비한다. 고척에서 모든 시리즈가 열리기에 먼 원정길은 없지만, 상경길과 경기장과 숙소를 오가는 길, 그리고 시리즈가 끝나고 창원으로 내려가는 길까지 버스기사들은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다.

버스기사들은 이구동성으로 NC의 창단 첫 우승을 기원했다. 안석환 1호차 기사는 “지금까지 정말 잘해줬고 8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응원했고, 박정일 3호차 기사도 “지금까지 해왔던 실력 그대로 한국시리즈에서 발휘했으면 좋겠다”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NC 버스기사 박정일 3호차 기사, 안석환 1호차 기사, 박성하 2호차 기사. (사진=윤승재 기자)
마지막으로 버스기사들은 이번 우승으로 ‘우승 턱’을 쏘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10개 구단 버스 기사들은 ‘팔구회(8개 구단 당시 결성됐던 8개 구단 버스기사 모임)’라는 모임이 있는데, 평소 원정길 이동 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났을 때 서로 돕는 모임이다.

이 모임에는 한국시리즈 ‘우승 턱’ 문화도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팀의 버스기사들이 다른 구단 버스 기사들에게 고생했다는 의미로 식사를 대접하는 문화다. 만약 NC가 이번에 첫 우승을 차지하면 기사들도 첫 우승 턱을 쏘게 된다.

기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팀이 우승해서 우승 턱을 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팀의 우승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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