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모.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영구결번(永久缺番). 말 그대로 영원히 결번이다. 그 번호를 달 수 있는 선수는 없다. 오롯이 자신의 번호가 된다. 은퇴식도 좋지만, 선수에게 가장 큰 명예는 영구결번이 아닐까 싶다.

타이거즈는 현재 두 명의 영구결번이 있다. 18번 선동열, 7번 이종범이다. 이종범 이후 타이거즈에서 7번을 단 선수는 없다. 앞으로도 타이거즈가 사라지면 모를까. 하지만 그 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7번, 그 원조는 바로 올드 팬이라면 익숙한 타이거즈 3할 타자 김종모였다.

외인 미첼과 타바레스에게 타격에 관해 설명 중인 김종모 코치. 스포츠코리아 제공
빵 먹고 시작한 야구, 영남대 시절에 꽃을 피우다

1959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광주 서림초등학교를 나왔고 동성중, 광주상고(현 동성고)를 나왔다. 그 시절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야구를 시작한 계기는 역시 간식(?)이었다. 서림초 시절에 급식이 나오면 학생 수의 절반 정도만 빵을 먹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야구부 형들의 가방은 왜 그리 빵빵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야구부 형이 빵을 겉만 먹고 속은 버리는 모습을 보자 곧바로 야구공을 집어들었다.

그렇게 야구를 시작했지만 고교 시절까지 크게 두각을 드러낸 선수는 아니었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영남대 시절이었다. 1979년 대학야구선수권 대회에서 타격상과 타점왕 타이틀을 챙기면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고 1980년 대통령기에서 타격 2위에 홈런왕을 차지하며 팀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대학야구 시절의 활약을 앞세워 졸업 후, 실업야구인 제일은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 뒤, 프로야구가 탄생했다.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타이거즈 초대 감독이 그에게 합류를 권했고 타이거즈 창단 첫 선발 9번 겸 좌익수는 그의 자리가 됐다.

1986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여한 선수들. 당시 장효조(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함께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받았던 김종모(맨 오른쪽). 연합뉴스 제공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교타자, 삼성 '좌효조'- 해태 '우종모'

대학 시절에 4번도 치고 팀도 우승 시켰다. 타격 하나는 나름 알아주는 선수였지만 홈런왕 김봉연을 시작으로 투타에 능한 김성한, 대도 김일권, 원년 홈런 2위 김준환까지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종종 클린업 타순에 들어가거나 6번 이하의 하위타순에 배치됐다. 대신 날카로웠다. 원년 78경기에 나서 258타수 78안타 타율2할9푼1리 10홈런을 기록하더니 1983년에 311타수 109안타 타율3할5푼 11홈런을 남겼다. 볼넷도 26개를 얻어내며 출루율 0.406을 기록했다. 당시 리그 전체 2위였다.

재밌는 점은 타율 3할5푼을 찍었는데도 그 해 타율 리그 2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1위는 3할6푼9리, 그 유명한 삼성 장효조다. 2인자의 자리가 아쉬울 따름이지만 '좌효조-우종모 타격왕 경쟁, 절정의 타격감! 천재 타자의 지존 가리자'라는 타이틀의 신문 기사가 당시에는 히트였다고 하니 타격 하나는 대단한 선수였다.

타이거즈 역사상 김종모의 3할5푼을 넘긴 선수는 두 명이 전부다. 1994시즌 3할9푼3리의 이종범, 그리고 2017시즌 3할7푼의 김선빈 뿐이다. 타이거즈를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교타자가 바로 김종모다. 이 정도의 선수임에도 주목을 덜 받았으니 당시의 타이거즈는 정말 강팀 중의 강팀이었다.

이후 1984시즌 3할1푼6리, 1985시즌 2할3푼1리로 주춤했지만 1986시즌부터 1988시즌까지 3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핵심 타자로 활약했다. 그렇다고 파워가 약한 것도 아니었다. 1984시즌에는 1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 5위에 오르기도 했다. 골든글러브도 네 차례나 받았고 수비에서도 확실한 강점을 보인 선수였다.

타격에 나서는 해태 타이거즈 7번 김종모. MBC 캡쳐.
자막 그대로 외야에서 수비 말고도 바빴던 김종모. 등번호 7번이 보인다. KBS 캡쳐.
타이거즈 우승을 10번이나 경험한 '원조 7번' 김종모

김종모가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타이틀이 있다. 바로 타이거즈에서 우승 '복'이 많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김종모가 좋은 실력을 보였을 때와 타이거즈의 우승 사이클이 유사하다. 선수 시절에 6차례(1983, 1986, 1987, 1988, 1989, 1991)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1983년 리그 타격 2위, 1986년 타율3할1푼3리, 1987년 타율3할3푼1리, 1988년 타율3할을 기록하며 우승 때마다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타이거즈 수비코치로 뛰면서 1993년, 1996년 ,1997년 우승을 함께 했다. 재밌는 것은 2009년 우승도 함께 했다는 점이다.

김응용 감독이 삼성으로 가면서 잠시 팀을 옮겼다가 2006년 KIA 1군 타격코치로 왔고 2009년에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 팀 수석코치로 뛰면서 'V10'을 함께 했다. 가장 최근인 2017시즌 우승을 제외하면 타이거즈의 11번 우승 중 10번을 선수와 코치로 경험했다. 타이거즈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산증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77번을 달고 삼성 코치로 있던 시절에 이종범과 이야기를 나누던 김종모. 스포츠코리아 제공.
삼성은 영구결번이 세 명이다. 22번 이만수, 36번 이승엽, 그리고 10번 양준혁이다. 그리고 양준혁이 달았던 10번의 원조가 바로 '타격의 달인' 장효조였다. 양준혁은 은퇴식에서 "내가 달고 뛰었던 번호지만, 원래 삼성 10번은 장효조 선배님의 번호다. 함께 영구결번된 번호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타이거즈에서도 이종범이 영구결번으로 만들었던 7번의 원조가 바로 김종모다. 이종범과 양준혁이 최고의 라이벌로 불리는 것처럼 '좌효조'와 '우종모' 역시 최고의 교타자 자리를 놓고 실력을 겨뤘던 라이벌이었다. 해태와 삼성, 7번과 10번으로 얽힌 김종모와 장효조의 뒤를 이종범과 양준혁이 나란히 물려받고 영구결번으로 만든 셈이다. 이래서 야구가 참 재밌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