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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조형래 기자] '경우의 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 나가면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단어다. 대개 '경우의 수'는 조별리그부터 시작하는 국제대회에서 초반 축구대표팀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 자주 붙었다.

'~한다면', '~해야'로 시작하는 가정과 희망사항들이 더해졌다. 승패 여부는 물론 승자승, 골득실, 다득점까지 따져야 했던 대표팀은 언제나 복잡하고, 초조하게 조별리그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경우의 수'는 이제 축구 대표팀에게만 해당하는 사항들이 아니다. 프리미어 12에 나서는 한국 야구 대표팀 역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그 전에 가능성들을 일찌감치 차단해야 한다.

이번 프리미어12는 12개팀이 6개팀씩 2개조로 나눠서 조별리그를 치른 뒤 각 조 상위 4팀이 8강에 오른다. 8강부터는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일단 조별예선을 통과해야 하는 8강 토너먼트까지 다다를 수 있다. 이번 프리미어12를 주최하는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대회 요강에 따르면 조별예선에서 순위가 같을 때는 동순위 팀들간 경기에서 승리한 팀을 먼저 따진다. 승자승 원칙이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승자승에 이어 팀 성적지표(Team's Quality Balance·이하 TQB)가 순위를 정한다. TQB 공식은 (총득점/공격이닝)-(총실점/수비이닝)이다. TQB에서도 순위를 가리지 못하면 자책점-팀성적지표(ER-TQB)가 높은 팀, 동률팀 간 경기에서 타율이 높은 팀 순서로 최종 순위를 정한다. 이 기준에서도 순위가 정해지지 않은 경우 동전던지기로 운명을 정한다.

TQB로 순위를 정하는 상황이 2가지나 포함되어 있다. TQB가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한국은 TQB의 중요성을 이미 2년전 뼈저리게 깨달은 바 있다. 한국은 2년전 2013 WBC에서 이 TQB때문에 고배를 마셨다.

당시 한국은 WBC 1라운드 B조 첫 경기 네덜란드에 0-5로 패했다. 그리고 네덜란드전 5실점은 한국의 비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은 이후 호주에 6-0, 대만에 3-2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경우의 수'의 덫에 걸리며 부담을 어깨에 짊어지고 예선을 치러야 했다.

결국 한국, 네덜란드, 대만이 모두 2승1패를 기록하면서 3개팀이 2장의 2라운드 진출권을 두고 싸웠다. 대만이 네덜란드를 8-3으로 잡고, 한국이 대만을 잡으면서 세 팀은 또 1승1패씩 물고 물렸다. 결국 TQB로 순위를 판가름 해야 하는 상황이 왔고 TQB에서 한국(-0.235)은 대만(0.235), 네덜란드(0.000)에 뒤지면서 조기에 짐을 싸야만 했다.

이번 프리미어12 한국 대표팀의 조별예선도 2013년 WBC와 상황이 비슷하긴 하다. WBC는 한 조에 4팀이 있었고 이번 프리미어 12는 6팀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첫 경기 결과가 같다.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0-5로 패했다. 일본전 5실점과 무득점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물론 남아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멕시코, 미국을 이기면 8강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도 말끔하게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3승2패 혹은 2승3패를 할 경우 승자승, TQB 등을 따지는 복잡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일단 남은 조별예선 4경기에서 타선이 살아나야 한다. 최대한 많은 득점을 뽑아내서 첫 경기 5점의 점수를 만회해야 한다. 그리고 마운드에서는 실점을 억제해야 한다. TQB에서 따지는 것이 자책점이 아닌 총실점이기 때문에 마운드 운영을 타이트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규민이 손등부상으로 빠지면서 선발진에 가용자원이 줄어들었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이 도미니카전에 선발 투수 2명을 동시에 활용하는 '1+1'전략을 배제한 것도 선발 자원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 다른 조별예선 경기들도 생각을 해야 한다. 아울러 선발들이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 불펜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경우의 수'가 발목을 잡을 경우 한국은 다시 한 번 2013년 WBC를 재현할 수 있다. 조별예선 4경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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