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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김성한, 이승엽, 이대호(사진=스포츠한국DB).
LA다저스는 지난달 29일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 내야수 스킵 슈마커(33)를 투수로 내보냈다. 다저스는 필리스에 16실점하며 사실상 대패가 확실한 상황이었다. 이왕 지는 경기. 돈 매팅리 감독은 과부하한 불펜을 아끼려고 슈마커를 마운드에 세운 것이다.

9회 등판한 슈마커는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너클볼까지 구사하며 맹활약했다. 최고시속이 90마일까지 나왔다. 슈마커의 활약은 의기소침한 다저스 관중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됐다. 이보다 확실한 팬서비스가 없을 정도였다. 팬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슈마커는 지난 4월 30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도 투수로 등판해 1이닝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한 바 있다.

대학시절 타자보다 투수로 더 가능성을 인정받은 슈마커는 신체조건이 다소 왜소해 내야수로 전향했다. 슈마커는 장타력은 부족하지만 우완투수에게 강하고 타격이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야구팬들로부터 웬만한 다저스 불펜보다 낫다는 칭찬을 듣고 있는 슈마커. 한국에도 슈마커와 같은 선수들이 있을까?

김성한(55) 한화 코치는 해태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 투수로 마운드에 서서 많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당시 투수가 부족했던 해태는 김성한을 투수 겸 내야수, 지명타자로 활용했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는 10승 5패에 방어율 2.88을 기록했다. 타자로는 타율 0.350에 10홈런 69타점을 기록해 말 그대로 만능플레이어로서 명성을 과시했다.

'홈런왕' 이승엽(37·삼성)도 좌완 투수로서 재능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승엽은 경상중학교 시절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경북고등학교 때는 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 우승하며 최우수투수상을 받기도 했다. 1995년 삼성 유니폼을 입을 때도 촉망받던 좌투수였다. 그런 그는 입단 직후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타자로 전향했다.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타격 실력을 뽐내며 홈런을 뻥뻥 쳐내더니 2003년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홈런 400개를 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48개의 홈런을 남겨두고 있다.

막내구단 NC의 최고 유망주 나성범(24)도 좌완 에이스였다. 나성범은 2011년 김경문 감독과 면담 후 타자로 전향했다. 김 감독은 당시 "나성범은 타자로서 신체 조건이 좋고,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가져 호타준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말한 바 있다. 나성범은 NC의 미래이자 한국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5툴 플레이어로 쑥쑥 크고 있다.

현재 프로야구 공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최정(26·SK)도 유신고 시절 4번타자 겸 투수였다. 프로 입단도 투수로 했으며 2009년 KIA전에 구원투수로 나서 146km짜리 공을 뿌린 바 있다.

일본리그와 메이저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절친 이대호(31·오릭스)와 추신수(31·신시내티 레즈)도 고등학교 시절 촉망받던 투수였다. 경남고의 이대호와 부산고의 추신수는 투수 겸 4번 타자로서 불꽃 튀는 선의의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일본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스즈키 이치로(39·뉴욕양키스)도 중·고교 시절 에이스 투수였다. 나고야 덴키 고등학교의 실력이 형편없어 전국무대에 얼굴을 알릴 기회가 없던 그는 타자로 전향한 프로무대에서 '진자타법'을 개발해 재능을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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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3/07/01 15:34:50   수정시간 : 2013/07/01 15: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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