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데이즈' 김덕민 감독 /사진제공=CJENM
'도그데이즈' 김덕민 감독 /사진제공=CJENM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윤여정, 유해진, 김윤진, 김서형, 이현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도그데이즈'는 착한 이야기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유명 배우 다수가 나오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는 화려한 포장지에 반해 내실이 있기 쉽지 않다는 선입견도 과감히 부순다.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과 '영웅' 등의 조감독으로 활약해온 김덕민 감독의 데뷔작인 '도그데이즈'는 애견인이 아니어도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희로애락을 심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함께 지내는 반려견들을 통해 웃고 울고 성장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세상의 약한 존재들을 향해 잘 손내밀며 살아가고 있는지 내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살포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미덕을 가진 영화다. 영화 '도그데이즈'는 성공한 건축가와 MZ라이더, 싱글 남녀와 초보 부모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자신의 삶 속 소중한 반려견과 만나 보석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는 스토리를 그렸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김덕민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인터뷰 내내 '도그데이즈' 제작 과정에 함께 헀던 배우, 스태프들을 향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에 바빴다. 

극중 세계적으로 성공한 건축가 조민서 역을 연기한 윤여정은 나영석PD의 유튜브 채널 '나불나불'에 출연해 '김덕민 감독은 나보다 인품이 훌륭하다'고 말한바 있다. 데뷔작으로 초대박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선하고 착한 콘텐츠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김덕민 감독이 두 번째 연출작으로 입증시켜줬으면 하고 바라본다. 

'도그데이즈' 김덕민 감독 /사진제공=CJENM
'도그데이즈' 김덕민 감독 /사진제공=CJENM

- 윤여정 배우 캐스팅이 '도그데이즈' 신의 한수로 꼽힌다. 특히 윤여정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받던 시절에 조감독과 배우로 만났다. 김덕민 감독이 입봉할 때 나를 필요로 한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 내용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는데. 두 사람의 첫만남과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 때 처음 뵜다. 당시 제가 조감독이었기에 윤여정 선생님이 연기하실 때 저는 늘 카메라 옆에 서있었다. 최성현 감독님이 무전기로 다음컷은 어떻게 찍으라고 디렉팅이 오시면 윤 선생님은 애매모호한 연출을 싫어하시고 정확히 짚어주는 걸 좋아하신다. 제가 늘 옆에 있다보니 월권도 좀 하면서 '여기서 오른 쪽으로 가시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으시라' 하는 식으로 말씀 드리곤 했다. 현장에서 명확한 연기를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면서 친분이 쌓였다. 

평소에는 정말 감히 연락을 못드렸지만 명절마다 문자드리고 안부를 여쭙곤 했다. '그것만이 내세상'을 다 찍었을 무렵 '네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면 내가 도움이 될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주셨다. 오스카 수상 훨씬 전의 일이다. 저는 선생님과 작업하는 것이 좋고 참 재미있다. 선생님과 작업을 하다 보면 까불까불하게 된다. 눈 오는 날 윤 선생님이 탕준상과 포스터를 붙이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이 장면을 원신원커트로 찍고 싶었는데 선생님과 준상이가 걸어 오다가 프레임 아웃이 되어야 하는데 정확히 대사와 타이밍이 맞는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이 장면은 딱 한 테이크를 갔다. 첫 테이크 때 정확하게 프레임 아웃 지점을 맞추셨다. "역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에 빛나시는 선생님은 다르십니다"라고 칭찬해드리며 까불대다가 혼나기도 했다.(웃음)

- 윤여정이 연기한 세계적 건축가 조민서의 장면에 목표한 바는 무엇인가. 현장에서 '역시 윤여정 배우는 다르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 무엇보다 윤여정 선생님이 무조건 편한 환경에서 촬영하실 수 있으면 했다. 한 겨울 촬영이었고 윤여정 배우 촬영 분량이 야외신도 많았다.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윤여정 배우가 최대한 촬영 이외의 불편한 요소를 못느끼시도록 하고 싶었다. 야외 신의 대부분을 윤여정 선생님 댁 근처인 평창동에서 촬영했다. 극중 캐릭터의 완성도는 윤여정 배우께 많이 맡겼다. 윤여정 배우가 박인환 배우와 만나는 장면이나 민서가 진우(탕준상)과 편의점 앞에서 싸우는 장면 등은 선생님이시기에 그런 탁월한 장면으로 탄생한 것 같다. 특별히 어떤 연출적 코멘트를 드리기보다는 한 테이크 이상을 갈 것인가, 아닌가 위주로 판단했다.  

'도그데이즈' 김덕민 감독 /사진제공=CJENM
'도그데이즈' 김덕민 감독 /사진제공=CJENM

- 연출부를 시작해 감독 입봉까지 2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들었다. 그동안 수많은 좌절의 시간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견뎌냈나. 

▶ 시나리오를 몇개월동안 써서 제작사에 가져다 주면 내쳐지고 또 시나리오는 통과가 됐는데 캐스팅 단계에서 1순위 배우들이 거들떠도 안봐서 엎어지고 이런 상황들이 18~19년 이어졌던 것 같다. 그 시간동안 쓴 장편 시나리오만 8~9개는 된다. 정말 될듯한데 딱 어떤 선을 못넘어가는 상황이랄까. 제가 가장으로서 정말 부족한 인간이다. 그런 좌절감에 휩쌓여있을 때 '도그데이즈'를 제안해주신 윤제균 감독님과 우리 출연배우들, 스태프분들 덕분에 저에게 딱 한번 손 내밀어준 그 분들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다. 촬영 첫날도 현장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여기 계시는 분들이 제 인생의 은인이다. 도움닫기 할 수 있도록 손을 딱 내밀어 주셔서 감사하다. 현장에서 거짓말하지 않고 모르는 것 모른다고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말씀드렸었다. '도그데이즈'를 선택해주시고 카메라 앞에서 제 생각 이상으로 연기를 해주신 모든 배우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 '도그데이즈'를 만들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이 있나. 

▶ 배움도 짧고 안 풀리는 인생이었다. 오기와 울분 같은 감정도 찰랑찰랑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잔혹한 글을 많이 썼다. 액션 범죄물을 주로 썼는데 이런 것이 영화라 생각했다. 악당이 나오고 그걸 때려잡는 형사 이야기 혹은 자경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다. 통쾌한 복수극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쓰고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쥐고 놓지 않으니 원한도 쌓이고 스스로도 힘들어지더라. 어느 날 미니멀하게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움켜쥐고 있던 걸 탁 내려놓으니 주위의 기운이 바뀌더라. 그런 마음이 '도그데이즈'에 담겼다. 민서와 현, 정아와 윤진 모두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을 때 성장하게 된다. 영화의 스토리가 저와 많이 닮아 있더라.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아들에게 상처도 많이 줬다. 잔소리도 많이 하고 내 기준을 못따라오면 짜증도 냈다. 이런 시절을 생각해보면 30~40대 때 입봉 안한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 그 때였다면 강렬한 액션이나 범죄물, 하드 코어적인 것을 선호했을 것이다. 윤여정 선생님이 '도그데이즈'에 대해 '이렇게 착한 사람만 나오는 게 영화냐'라고 반문하시기도 했다. 제 자신이 그렇게 따뜻한 인간형은 아니지만 지금 나이에 입봉한 것이 오히려 행운 아니었나 생각된다. 

- 윤제균 감독에게 '도그데이즈' 연출을 맡아달라고 제안 받았을 때의 심경이 궁금하다. 

▶ 제가 '영웅' 조감독으로 활동할 당시 크랭크업이 4회차 남았을 때 윤제균 감독님이 말씀을 주셨다. 군중 200~300명 앞에서 '그날을 기약하며'를 함께 가창하는 신이었다. 윤제균 감독님은 항상 연출팀과 저녁을 드시는데 합천 세트장에서 크랭크업 4일을 남겨둔 날 이야기를 하시더라. '덕민아, 이전부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도그데이즈'라는 작품의 저작권을 해결 중인데 해결된 후 네가 이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하면 좋게다'고 말씀하셨다. 제 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보통 한 작품의 촬영이 끝나면 믹싱도 지켜보고 후반 작업을 도와드리는데 이번에는 후반 작업에서 빠지고 제 작품을 준비하라시더라. 

- '도그데이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감사한 스태프가 있다면. 

▶ 사실 정말 열심히 촬영해놓고 현장 편집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장면별 딱 한호흡이 부족한 느낌이더라. 좀 설명적이기도 했다. 그럴 때 모든 걸 깔끔히 정래해주신 분이 김선민 편집기사다. '올빼미'를 편집했던 분인데 제 목숨을 살려주셨다.(웃음) 적재적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수정(김고은) 장면 음악 시퀀스를 위해 황상준 음악감독이 새로운 곡을 몇개 써주셨다. '김덕민 감독 입봉하는데 내가 최고의 선물을 줄게'라고 말씀하신 후 좋은 곡을 주셨다. 

- 주연배우들의 칭찬을 좀 해본다면. 

▶ 유해진 선배는 몇몇 장면을 생각해오신 것이 있었다. 극 중 민상(유해진)이 2층에서 내려오다가 동물병원 앞의 민서(윤여정)를 보고 아래로 샥 내려갔다가 동물 병원 안으로 안들키게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제가 미리 제시한 콘티와 다르게 선배가 신발끈을 묶는 아이디어를 내셔서 그렇게 촬영을 했다. 그림을 붙여 놓으니 짝 맞아떨어지더라. 해진 선배는 편집을 너무 잘 아시기에 동선이나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해주셨다. 테이크마다 감정을 다르게 연기해주시니 편집실에 가서 잘 취사선택 할 수 있더라. 다음 작품에서도 무조건 유해진 선배님과 함께 하고 싶다. 정성화는 제게 수호천사 같은 배우다. '영웅'을 할 때 많이 친해졌고 이번에 시나리오를 줄 때 정성화 배우는 무조건 해줄 것을 의심치 않았다.(웃음)

제가 가장 어려웠던 배우는 김윤진 선배님이다. 제가 어릴 때 애니매이터가 되겠다고 공부를 할 때 '쉬리'를 보고 진로를 영화로 바꿨다. 당시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나오는구나'하고 놀랐었는데 내겐 영웅 같은 분이었다. 그분이 나와 작품을 함께 한다고 했을 때 믿어지지 않았다. 윤여정 선생님보다 더 겁이 났다. 김윤진 선배님이 딸 역할인 지유 역의 오디션에도 함께 해주셨다. 5명의 후보군에서 윤진 선배님과 정성화 배우가 함께 윤채나를 선택해주셔서 함께 하게 됐다. 그렇게 캐스팅된 채나가 너무 열심히 연기에 임해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함께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는 멍멍이들 때문이었다. 그 친구들 덕에 모든 현장에서 각자의 애견 이야기도 나누면서 함께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 감독으로서 이후 계획이나 목표는 어떤가. 

▶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계속 잘 가지면서 관객들과 소통을 잘 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것이 1번 목표다. 제가 60세가 됐을 때 누군가 감독으로 찾아주시고 앞으로 2년에 한 작품씩 한다면 4작품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SF에는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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