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감독에 선임된 '국민타자' 이승엽. 계약기간은 3년이다.  
두산 감독에 선임된 '국민타자' 이승엽. 계약기간은 3년이다.  

‘국민 타자’가 ‘국민 감독’이 될 수 있을까? 이승엽(46) 전 KBO 홍보대사가 오는 18일 제11대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취임, 3년간 지휘봉을 잡는다.

‘삼성 레전드’의 파격적인 두산 감독 취임에 지역을 망라, 전국 야구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물론 코치를 거치지 않은 이승엽의 전격 감독 승진에 부정적인 견해가 많지만, ‘최고 타자’의 성공을 기원하는 관련 기사의 댓글들도 만만치 않다.

과연 그는 난파선 ‘두산함(艦)’을 견인시키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필자는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40년 가까이, 영욕을 거듭한 수많은 감독들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승엽 감독의 3년’을 웬만큼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이감독의 어떤 잠재 능력이 분출될지 모르고 야구 현장은 변수가 워낙 많아 속단은 금물이다. 예기치못한 운(運)이라는 것도 있다. ‘Q&A(문답)’을 통해 이승엽 감독의 평탄치 않을 앞날과 파장을 예측해 본다.

"삼성 유니폼 입고 받은 사랑, 잊지 않겠다."  이승엽 두산 신임감독이 삼성 팬들에게 인스타그램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승엽 감독 인스타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금지]
"삼성 유니폼 입고 받은 사랑, 잊지 않겠다."  이승엽 두산 신임감독이 삼성 팬들에게 인스타그램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승엽 감독 인스타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금지]

Q;왜 두산은 지도자 경험없는 이승엽을 택했을까.

A;창단 최악의 성적(9위)에 최다패(82패 60승2무, 승률 0.423)로 침체된 팀 분위기를 살리려는 의도가 강했다. 일단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데는 성공할 것으로 보여 스토브리그와 내년초 스프링캠프 때까지는 계속 화제를 몰고갈 가능성이 높다.

Q;이승엽은 1995년 입단부터 5년 전 은퇴할 때까지 삼성에서만 뛴 ‘원클럽 맨’인데 삼성은 왜 한번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지 않았나.

A;각 구단은 스타급 선수들의 현역 생활을 관찰하며 은퇴후 지도자감이 되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체크한다. 리더십이 없다고 판단되면 감독 리스트에서 아예 제외시키기도 한다. 이승엽은 삼성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만수가 삼성에서 코치를 못하고 결국 SK(SSG 전신)에서 뒤늦게 감독을 한 거나, 고(故) 장효조는 삼성에서 원정 기록원으로 시작해 2군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끝낸 것도 구단으로부터 평가를 잘 받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김시진도 ‘태평양-현대-넥센-롯데’등 삼성 외곽을 돌았다. 작고한 최동원은 롯데가 아닌 한화에서 코치를 지냈다.

해태 출신인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은퇴후 한화에서 잠시 주루 코치를 한 뒤 LG로 이적, 코치에 이어 퓨처스감독을 맡고 있다. KIA 감독 선임 때마다 물망에 올랐지만 선택을 받지 못했다. 물론 이승엽의 경우, 삼성이 감독 발탁을 검토하다 타이밍을 놓쳤을 수도 있지만.

Q;그러면 이승엽의 리더십이 부족해 감독으로서 성공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뜻인가.

A;많은 야구인들이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능 ‘최강 야구’의 감독 경력을 추켜세우는 일부 여론에 코웃음을 치는 이들도 있다. 매일 매일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처절한 승부와 ‘예능 야구’는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다. 야구 해설을 하며 식견을 넓혔다는 장점에 대해선 야구, 골프 예능을 하며 ‘알바’식으로 내용없는 해설을 했다고 혹평을 하는 야구인도 있다(한번 출연에 왕복 이동 포함 10시간 안팎 소요, 명쾌한 해설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시간 부족).

이승엽은 취임 인터뷰에서 “선수들 스스로하는 분위기 만들겠다. 팬들에게 감동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9위 전력에 대한 ‘FA(자유계약선수) 대어’ 영입 등 뚜렷한 보강이 없으면 코칭스태프 쇄신으로 성적이 올라가긴 힘들어 보인다. 이승엽이 ‘신사 스타일’이므로 A팀 B코치처럼 악역을 마다않는 ‘군기반장’을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Q;두산엔 38년째 구단 임직원 생활을 하고 있는 김태룡 단장 등 막강한 프런트가 건재하는데 이러한 문제점을 체크못했을까.

A;그간 각팀 감독 선임은 구단주의 결단이나 구단주 주변 인물들이 추천해 결정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번엔 김태룡 단장의 건의를 구단주가 적극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단장은 ‘학폭 김유성’ 신인 지명을 밀어 붙인데 이어 이승엽 깜짝 영입으로 팀 전력강화와 이미지 쇄신의 ‘두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김 단장은 공로가 큰 만큼 연말 그룹 정기인사 때 사장으로 영전, ‘김태룡-이승엽’ 쌍두마차 체제로 새 시즌을 맞을 전망이 커보인다.

Q;‘이승엽 호(號)’의 희망적인 관측은?

A;한일 프로야구 최종 시리즈 우승 등 다양한 경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극적인 우승....이런 자산들이 감독직 수행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구단이 밝힌 대로 ‘베테랑과 젊은 선수의 신구 조화’를 잘 이루고 첫해부터 성적에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취임 3년째 뜻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구단의 절대적인 전력 뒷받침이 성공을 결정짓는 열쇠다.

Q;코치 경력이 없는게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는데.

A;KBO 리그 40년 역사상 코치직을 패싱하고 감독으로 바로 승격한 케이스는 이승엽 포함 네번이 있다. 원조는 허구연 KBO 총재다. 야구 해설이 돋보여 ‘약관 34세’인 1985년말 청보 핀토스 감독에 발탁된 허 총재는 15승 2무 40패(승률 0.273)의 부진한 성적으로 10개월만에 중도하차했다. ‘2호’ 장정석(현 KIA 단장)은 넥센 1군 매니저와 운영팀장을 지내다 감독으로 영전, 7위(2017년)-4위(2018년)로 부진했다. 그러나 2019년 키움 시절에는 한국시리즈(KS) 준우승을 차지했는데도 아쉽게 계약기간을 못 채웠다.

‘3호’ 허삼영 역시 운영팀장, 전력분석팀장을 역임하다 삼성 감독으로 직행했다. 2020년에는 8위에 그쳤으나 지난해 3위를 하고도 중도퇴진의 아픔을 당했다. 초창기의 허 총재를 포함, 장정석, 허삼영은 감독 1,2년차에 시행착오를 크게 겪었다. 이승엽 역시 첫해부터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건데, 본인이 어떤 능력으로 돌파할지가 3년 임기를 채우는 열쇠가 된다.

Q;40년간 스타 플레이어가 성공한 케이스는?

A;‘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이 현대 유니콘스 시절 4연속 KS 우승을 차지해 거의 유일하게 명감독 대열에 올라 있다. 류중일과 선동열이 삼성 감독 재임 때 각각 4연속 KS 우승과 2연속 KS 우승을 이뤘으나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는 야구인들이 많다. 구단이 우승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데 이어, 선수들에게 1년 1억∼2억원에 달하는 개별 인센티브를 실시한 ‘당근 작전’이 통했기 때문에 ‘과포장된 성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류중일은 인센티브가 사라지고 핵심 선수들의 해외원정 도박 파문에 시달린 2016년에는 9위에 그쳤고 LG로 이적해서는 3년간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선동열 역시 2012년 KIA로 옮긴 뒤 ‘5-8-8위’에 머물러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레전드’인 김시진, 이순철, 한대화는 단 한차례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해내지 못했고 김성한은 KIA시절 ‘5-3-3위’의 기대밖 성적으로 중도하차했다.

Q;다른 종목은 어떤가.

A;고려대 시절 뛰어난 센터로 이름을 날렸던 현주엽은 농구 해설을 4년한 뒤 2017∼18시즌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으로 직행했다. 초보 감독의 어설픈 경기 운영으로 온갖 구설수에 시달리며 첫해 9위로 마친 뒤 이듬해 3위로 상승했다. 그러나 3년차인 2019∼2020시즌엔 또다시 9위로 추락해 자진사퇴의 길을 밟았다.

배구의 박미희, 김세진 감독은 코치 경력없이 해설위원에서 곧바로 감독으로 변신, 성공적인 캐리어를 쌓은바 있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인 이영표와 박지성은 힘든 지도자의 길을 마다하고 행정가로 변신, 앞으로도 현장 복귀의 꿈은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승엽은 이미 가시밭길에 접어 들었다. 그의 앞에는 난관과 장애물이 수두룩하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야구인과 팬들은 내년 ‘이승엽의 두산’이 한화와 꼴찌 싸움을 벌일 것으로 벌써 점치기도 한다. 성적 부진으로 2년차에 중도사퇴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이승엽의 야심찬 변신이 어떤 모습을 이룰지, ‘야구 매니아’인 두산 박정원 구단주가 어떤 통큰 지원을 할지 베일을 드러내지 않았다.

‘9위 두산’이 이승엽 감독을 앞세워 명예회복을 잘 이뤄나갈지 지켜 보는 것도 20일 뒤 시작될 스토브리그의 정말 볼만한 구경거리가 아닐까.

Q;두산 팬들의 이탈도 점쳐 지는데.

A;두산이 크게 우려하는 부분이다. 삼성 팬들의 유입보다 두산 팬들의 외면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년부터 쌓은 우직한 곰, 상대하기 어려운 팀이라는 ‘두산 왕조’의 독특한 컬러가 이승엽 한사람으로 인해 씻겨질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삼성 시절 팬서비스에 인색했던 점을 기억하는 두산 팬들이 적지 않으므로 구단으로서는 적극적인 마케팅에도 힘써 팬 이탈을 막아야 할 것이다.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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