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영화 '헌트'의 감독으로 나선 이정재와 함께 주연을 맡아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불꽃 호흡을 펼친 정우성을 보고 있자면 '청담부부'라는 호칭보다는 '영혼의 단짝'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헌트'는 여러 가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며 개봉 한달여가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절찬 상영 중이다.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이자 정우성과 23년 만의 조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작이기도 한 '헌트'는 지난 9일 전국 4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올 여름 개봉한 대작 영화 4편 중 '한산:용의 출현'(김한민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이 됐다. 

'헌트'가 여느 해와 달리 전체 관객수가 급격히 줄어든 올 여름 시장에서 선방할 수 있었던 것에는 뛰어난 영화의 완성도가 가장 큰 몫을 했겠지만 유튜브 예능을 비롯해 지상파, 종편 등 가리지 않는 예능 행보와 5주 연속 190여회에 가까운 무대인사라는 국내 영화계 홍보사를 새롭게 쓴 이정재 감독, 정우성,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정만식, 허성태 등 주연배우들의 헌신적 노력도 단단히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재 감독이 '헌트'가 '남산'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이던 시절 판권을 사들여 제작을 결심했다가 결국 감독으로 나서기로 결심한 전 과정의 고민의 순간에 함께 했고 총 네 번의 출연 제안 거절이후 끝내 주연을 맡은 것은 물론이고 영화 흥행 전반의 일등 공신으로 활약해온 정우성을 '헌트'의 개봉이후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 27년 만에 한 작품 안에서 호흡한 소감이 가장 궁금하다. 

▶ 시사 행사가 끝나고 동료분들이 '좋은 자극을 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그 말에 여러 요소가 내포돼 있다. 감독님들만 모셔놓고 시사를 한 관이 있었는데 그 때 무대 인사를 하며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부흥기인 90년대 초반 두 배우가 데뷔해서 청춘스타의 수식어를 얻고 좋은 모습을 외형적으로 보여드렸다. 그동안 스타의 모습만 보여드렸는데 그 시간동안 얼마나 이 두 친구가 진지하게 영화에 임했는지 봐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런 우리의 뜻이 잘 전달된 것 같아 뿌듯하다.

- 김정도는 군부독재 당시 자신이 임무로써 수행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바로 잡으려는 인물이다. 캐릭터를 디자인해간 과정이 궁금하다. 이정재 감독과 어떤 의견을 나눴나.  

▶ 정재씨가 처음 '남산'이라는 시나리오를 프로듀싱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정우성과 하면 괜찮지 않을까'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긴 시간이 지나서 같이 하게 됐는데 작품을 같이 하겠다고 의기투합할 당시 김정도를 놓고 결정한 건 아니다. 동료로서 파트너로서 제가 회피할 수 없다면 더 치열하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결심하게 됐다. 

김정도라는 인물은 그 이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5·18민중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가 합의에 도달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사건 자체에 얼마나 큰 아픔이 있었나. 긴 시간이 흐르며 이 사건을 놓고 상처를 주고 생채기를 내는 긴 시간이 이어졌다. 김정도라는 인물은 그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억울함, 아픔으로만 만들수 있는 있물이었지만 긴 시간이 지난 후 이 시대를 사는 정우성이라는 사람이 그 역사적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는지 지켜봤던 사람이잖나. 개인적 소회도 함께 얹어질 수 밖에 없었다. 김정도라는 사람의 군인으로서의 본분, 자기를 객관화하면서 생각하고 (시민들에)가해지는 폭력이 정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걸 바로 잡겠다는 생각의 신념과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다. 그 딜레마를 운반할 수 있는 원동력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한 아니었을까. 김정도에게 그런 한을 집어 넣고 싶었다. 

- 엔딩에서 "박평호"를 외치며 포효할 때 김정도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 정도 입장에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을 잡기 위해 박평호라는 도구를 선택했고 그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을 거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원망도 있지 않았겠나. 되돌릴 수 없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 억울함을 박평호에게 물었던 걸 거다.  

- 박평호와 김정도 두 인물간의 서로를 향한 의심이 팽팽하게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다가 엔딩에서는 서로 다른 듯 닮은 존재감이 드러난다. 

▶ 김정도라는 인물이 혼자만의 존재감으로 100% 드러나는 인물이 아니잖나. 박평호도 마찬가지다. 박평호는 체제와 이념에 대해 객관화하면서 빠져 있는 딜레마가 있고 그것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김정도 또한 스스로를 객관화했다는 점에 있어서 박평호와 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평화에 대한 갈구하는 마음이 있잖나. 두 사람의 내면의 사고는 일맥상통하지만 분단돼있는 이 나라의 현실에서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한 방향으로 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두 인물이 신념적 행위를 하고자 했을 때 그 열기가 마주할 때 두 사람의 존재감이 각인될 수 밖에 없는 구성의 인물 설정이었다. 박평호와 대립 관계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또 서로 부딪히면 깨질 수 밖에 없는 단단한 두 존재들이었다. 

- '태양은 없다'이후 이정재와 23년 만에 호흡을 이룬 '헌트'가 정우성 개인에게 남긴 의미는.  

▶ 촬영 시작전부터 이정재와 만남의 의미에 대한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도 안되고 그걸 벗어던지고 치열하게 하려고 했다. 두 배우의 연기가 나쁘지 않게 완성된 것 같아 의미부여를 할 수 있게 됐다. 

- 영화 속 상황처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신념이 무너져내린 순간을 겪은 적이 있나. 

▶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받지 않나? 어쩔 수 없다. 상대가 의도를 하든 안하든 그런 일은 일어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듯 때로는 작정하고 상처를 주려는 사람에게 걸려들어 상처 받을 때도 있다. 또 상처를 회복하는 것도 사람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관계는 내가 택한 것이기에 회피하거나 도망치면 안된다. 내가 가져가야할 몫이다. 

- 1년에 한 번 꼴로 네 차례나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던데 이유는.

▶ 초반 '남산'이라는 시나리오의 제작과 프로듀싱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저 또한 그런 일을 하고 있었으니 이정재가 작품을 디벨롭하고 있을 때 파트너이자 동료로서 프로듀싱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독과 감독이 원하는 작가를 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고 정재 씨는 계속 그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여러 감독과 작가를 찾아봤지만 '헌트'라는 시나리오로 가는 적당한 인물을 만나지 못했다. 정재씨 스스로 수정을 거차고 계속 시나리오 작업을 해나가면서 새로운 시나리오도 보여주고 의견도 나누는 시간이 지속됐다. 

그러다 주위에서 감독을 찾는 것이 어려운데 본인이 이렇게 오래 작업했으면 직접 감독을 해도 되는 게 아니냐는 권유들이 나왔다. 정재씨가 '주위에서 제가 감독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묻기에 웃었다. 제가 '보호자'를 연출하고 있을 때였다. "아, 이 양반도 이제 고생길로 접어들겠구나" 싶더라. 그동안 이정재는 '연출은 안하겠다, 자신없다'고 했었다. 내가 연출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괜찮아요? 죽어가고 있는 것 아냐'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가 합류하면서 본인이 감독을 하는 것이 나쁘지 았겠다는 결론이 섰던 것 같다. 저 또한 정재씨가 연출을 한다면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야한다는 결심이 들었다. 

사실은 첫 연출 도전을 잘 해내는 것도 힘들텐데 사람들은 '얼마나 잘 하나'하면서 지켜볼 거고 사이즈가 작은 영화가 아니고 우리 둘이 한다고 하면 '북치고 장구치고 자기들이 다 하네, 얼마나 잘 하나 볼까'하며 판단의 기준은 점점 날카롭게 올라갈 거라고 봤다. 우리 둘이 23년 만에 하는데 팬들에게 진짜 좋은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그래서 짐을 하나 덜고 연출만 해서 가볍게 도전하라고 했다. 그래서 배우를 한참 찾았지만 스케줄이나 이런 것이 맞는 사람이 없었던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감독과 배우를 같이 하게 됐고 '정재씨가 고난의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싶더라. 오케이, 마음을 그렇게 먹었다면 그 끝에 계란이 다 깨져도 우리는 후회하면 안되니 함께 가보기로 했다. 흥행이야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흥행도 작품의 만듦새도 잘 해내야 하는 거니 치열하게 같이 해보기로 한 거다. 

- 최근 영화 '보호자'를 연출했다. 직접 연출하며 느낀 어려운 점은.

▶ 연출을 하며 동시에 출연을 하면 아침에 현장에 가서 캐릭터 의상을 입을 때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 내 출연분이 없으면 내 몸이 깃털처럼 가볍고 즐겁다.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시점으로 카메라 동선과 다른 배우들의 연기, 커버리지 컷으로 어떤 것을 할지 생각해야 하고 내일 촬영도 생각해야 한다. 다음 촬영지에 대한 컨펌도 해야 하고 줄줄이 계속 이어진다. 한 캐릭터에 몰입했다가 빠져 나와서 퇴근하고 쉬고 이게 안된다. 관점도 왔다갔다 해야 하고 쉬는 시간도 줄어든다. 캐릭터 의상의 무게가 마치 100톤은 되는 것으로 느껴진다. 출연을 안하면 가볍다. 감정신이면 슛들어가면 배우는 제정신이 아닌 시간까지 왔다갔다 해야한다. 

-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유추할 수 있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헌트'가 첩보 액션물이라는 장르에 맞도록 가장 적당한 시대적 배경은 폭력이 당연했던 그 시대였다. 정보국의 활동에 영화적 상상을 더할 수 있는 시대여야 했다. 그 시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배치했지만 그 사건을 들여다보거나 이용하지 않았다. 그 사건을 가져다 놓은 것은 인물의 딜레마의 현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허구적 인물에 허구적 스토리일 뿐이다. 

-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셀럽으로서 제작자로서 30여년을 살아오면서 이정재가 정우성에게, 정우성이 이정재에게 보완해준 것은 뭘까. 서로 의지할 수 있었던 점은 또 뭔지 궁금하다.  

▶ 우리의 우정에 대해 말하자면 서로에게 바라는 게 없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바라봐 왔다. '왜 그런 선택 했어요?'라고 물은 적이 없다. 어떤 선택을 하면 그 결과가 어떻던지 바라보고 응원했을 뿐이다. 본인이 가져야 하는 의미를 함께 공유해주고 공유받고 했다. 정재씨나 저나 예전부터 어떤 작품으로 인해서 주어진 성공이나 찬사 수식어 이런 것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 했다. 이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게 뭘까를 찾아서 선택했다. 그런 서로의 도전을 지켜보면서 응원했다. 그러면서 긍정적 자극을 주기도 했고 서로에게 큰 위로도 됐던 것 같다. 

- 두 사람에게 '헌트'가 남긴 의미는 뭘까. 

▶ 방금 전에 말했든 우리 두 사람이 2시간의 영화에 그동안 우리의 경험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낸 것 아닐까. 그것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도 객관적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돌출된 문제와 고민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다른 행동으로 옮기려는 노력을 해오게 되는 것 같다. 정재씨도 저도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배우란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고민해왔고 서로 다른 현장에서 서로 다른 영화인들과 접촉하면서 다양한 감정과 디테일을 가지게 돼고 또 그 경험들을 경험하다 보니 하나로 섞이게 되기도 하고 해온 것 같다. 

- 정우성이라는 개인이 지니고 살아가는 믿음과 신념이 있다면. 

▶ "모든 것은 당연하지 않다"는 점이다. 칭찬도 당연하지 않고 성공도 당연하지 않다. 실패도 당연하지 않다. 내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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