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의 야구회관 총재실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허구연 KBO 총재. ⓒ스포츠한국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지난 3일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의 야구회관 총재실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허구연 KBO 총재. ⓒ스포츠한국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도곡동=스포츠한국 이정철, 허행운 기자] 허구연(71)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그의 입을 빌리자면 ‘9회말 1사 만루’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마운드를 넘겨받았다. 한국야구 발전이라는 큰 목표 아래 허 총재는 열심히 자신만의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허구연 총재는 지난 3월 29일 열린 취임식과 함께 ‘최초의 야구인 출신 총재’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리고 쉴새없이 바쁜 한 달을 보냈다. 프로야구 스포츠산업화를 위한 초석인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전국의 야구장을 돌며 정계 인사들을 만났으며, 그가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팬 퍼스트(Fan First)’를 위해 야구장 내 실내취식, 육성응원 재개 등 작은 목표들을 하나하나 거치며 여기까지 왔다.

스포츠한국은 지난 3일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의 야구회관 총재실에서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란 허구연 총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새 시즌 해설을 위해 자료조사를 하던 중에 총재직을 제안 받았다”는 허 총재는 “야구계가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날 찾는다면 해설보다는 그 일을 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취임 당시를 떠올린 후,  KBO리그의 각종 현안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허프라' 허구연 총재 "야구가 있는 도시의 시장은 모두 만날 것"[허구연 인터뷰上]에서 계속

▶ 야구계 선배로서 전한 따끔한 조언 “선수들, 권리만 챙기고 의무에는 충실치 못했다”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맞대결이 펼쳐진 고척스카이돔. ⓒ스포츠코리아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맞대결이 펼쳐진 고척스카이돔. ⓒ스포츠코리아

‘총재 허구연’을 상징하는 말이 ‘팬 퍼스트’라는 것은 이제 모든 야구팬들이 알고 있다. 허 총재는 “취임 당시 그 말을 꺼냈을 땐 즉흥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구성원들의 초점이 이쪽으로 맞춰졌다”라며 “생각보다 빠르게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어 허 총재는 “서서히 프로야구 인기가 가라앉았다면 개선이 안 됐을 텐데 이번에 왕창 떨어져 보니 다들 ‘장난이 아니구나’라고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프로야구는 지난달 12일 충격적인 숫자를 한 차례 경험했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맞대결을 보기 위해 모인 관중수가 단 774명에 불과했던 것.

고척돔(1만6200명 수용) 개장 이래 최저 관중 수이자 홈팀 키움의 구단 최소 관중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수치다. 전자의 종전 기록은 1158명(2019년 4월 10일 kt wiz전), 후자는 918명(2009년 4월 21일 한화 이글스전)이었다.

허 총재는 최악의 위기 속 ‘전화위복’의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도 선수들을 향한 따끔한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그는 “선수들이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팬들이 경기의 승부만 보러 온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라며 “야구장은 팬들이 응원하는 팀, 좋아하는 선수들도 보고 가족, 애인과 ‘치맥’을 먹으며 즐기는 장소다”고 힘줘 말했다.

“경기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팬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시 강조한 이유다. 그는 “선수들이 자신의 권리는 잘 챙기지만 의무에는 충실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메이저리그(MLB)는 계약서에 팬 서비스 의무조항이 있지만 한국은 그런 게 없다. 따라서 우리도 통일 계약서에 해당 조항 삽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팬들에게 사인을 건내는 삼성 라이온즈 이성규. ⓒ스포츠코리아
팬들에게 사인을 건네는 삼성 라이온즈 이성규. ⓒ스포츠코리아

특히 선수들 그리고 팬들 모두가 예민한 사인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놓았다. 허 총재는 “MLB처럼 1,3루 관중석에 파울 그물을 일정 부분 걷어 개폐식으로 만든 후, 경기 전 연습 때 사인을 받으면 어떨까 싶다”라며 “열성 팬들은 2시간 전부터 경기장 찾아서 선수들을 지켜본다. 그때 사인을 받을 수 있다면 선수들도 한결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새 구장을 건설한 광주, 대구, 창원을 빼면 선수단 (출퇴근) 동선과 팬들 동선이 모두 겹친다. 선수 및 팬들의 안전을 위해서 MLB처럼 동선이 철저히 겹치지 않게 만든 후, 운동장 안에서 팬 서비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 ‘한국서 MLB 개막전’ 받고 ‘LA서 KBO 개막전’ 얹겠다는 허 총재 “이건 꼭 해보고 싶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개막전 경기. ⓒAFPBBNews = News1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개막전 경기. ⓒAFPBBNews = News1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지난 2019년 6월 29일은 MLB 역사에 길이 남는 날이었다. 야구 불모지인 유럽에서 MLB 개막전이 열린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런던의 런던스타디움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가 개막 2연전을 치렀다.

이처럼 MLB 사무국은 꾸준히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힘써왔다. ‘런던 시리즈’ 이전에도 멕시코(1999), 일본(2000·04·08·12·19), 호주(2014), 푸에르토리코(2018) 등 4개국에서도 MLB 개막전이 열린 바 있다.

이후 코로나19로 중단됐던 MLB의 해외 시리즈는 이번에 새롭게 합의한 MLB 노사 협약으로 다시 추진력을 얻었다. 노사협약에 명시된 해외 경기 계획에 따르면 MLB는 올 시즌을 마친 후 아시아 투어를 계획 중이다. 여기엔 한국도 포함돼있다. 이에 더해 MLB 사무국은 오는 2024년 개막전을 아시아에서 치를 계획이라 전했다. 그리고 허구연 총재는 이 개막전 장소가 한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허 총재는 “MLB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로부터 2024년 한국 개막전과 관련해 안 그래도 연락이 왔다. 그래서 ‘OK, 좋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라며 “우리는 돈 드는 것이 없다. 장소 제공만 할 뿐이다”라며 환영의 뜻을 건넸다.

그리고 여기에 허구연 총재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도리어 MLB 측에 이야기하고 싶은 건, KBO리그 개막전을 LA에서 하자는 것”이라며 파격적인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허 총재는 “사실 맨프레드 커미셔너와 사무국에는 예의상 계획을 밝히고 실질적으로는 구장을 빌려야 하는 LA 다저스와 이야기를 나누긴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허구연 총재가 이 계획을 떠올린 데에는 미국에 있는 팬들 즉, 한국 교민들을 위한 것이다. LA는 과거 류현진이 미국으로 건너가 몸 담은 첫 번째 팀이기도 하고, 그 이전에는 ‘국민 영웅’ 박찬호도 적을 뒀던 팀이라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친숙하다. 뿐만 아니라 LA는 한인타운이 가장 발달했을뿐더러 미국 내 한국 교민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허 총재는 “개막 열흘에서 보름 전, 플로리다나 애리조나로 캠프를 떠난 두 팀이 2연전을 하고 오는 것이 계획이다. 그렇게 하면 교민들도 많이 와서 즐기지 않겠나”라며 부푼 꿈을 전했다. “총재 임기에 이거는 꼭 해보고 싶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다진 허 총재는 “이렇게 말하면 일본이 먼저 가로채려나 모르겠다”라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오는 2023년 3월에는 당장 WBC 본선이 기다리고 있다. 허 총재는 “본선 끝나고 주말에 진행하려면 시간이 다소 촉박하다. 그걸 마치고 팀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면 시간 여유가 많이 없어서 시차 적응, 연습 경기 등에 문제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2024년은 WBC는 없지만 내가 총재를 할지 안 할지 모른다. 그때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허구연 총재는 다양한 경로로 한국 야구를 되살리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리그 흥행을 위해 무승부를 없애고 승부치기 혹은 무제한 연장전을 살리는 방안이라던가 다가올 WBC를 위해 A매치 추진과 한국계 메이저리거 기용 등 다양한 문제를 고민하는 중이다.

허 총재는 “총재가 일을 안 해도 야구계는 돌아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해야 할 게 끝이 없는 자리인 것”이라며 총재직의 무게를 설명했다. 이어 “자유인이던 해설가 시절보다 총재가 되면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있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길지 않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한국 야구를 되살리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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