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수락폭포

온몸으로 맞는 洛水…부서진 여름
구례 수락폭포

하얀 물줄기가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하다. 하물며
물밑에 서면 기분이 어떨까. 지리산 자락의 수락
폭포는 여름이면 물맞이객이 몰린다.

한 중년의 남자가 달랑 수영복 하나만 걸치고 호기있게 나섰다.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 속으로 한발 옮긴다. 수영복이 대번에 벗겨지고 하얀 엉덩이가 드러난다. 기겁을 하고 수영복을 끌어올린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장대소한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껴입었다. 모자까지 쓴 사람도 있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살이 아플 정도로 강하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에 있는 수락폭포는 물맞이 폭포다.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사람들이 줄을 선다. 우리 산천에 폭포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물을 맞을 수 있는 폭포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폭포는 낙수 지점이 움푹 패여 소(沼)를 이룬다. 속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기 때문에 떨어지는 물줄기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물을 맞을 수 있는 폭포는 경북 청도군 남산의 약대폭포, 제주도의 정방폭포 등이다.

새찬 물줄기에 '오들오들'

수락폭포는 물이 떨어지는 바로 아래까지 바위로 된 턱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폭포수 뒤쪽이 동굴처럼 되어 있어 어른 10여명이 충분히 들어설 수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에서 가깝다. 지리산 줄기에 들어있지만 주차장에서 100㎙ 정도만 걸으면 물소리가 들린다. 이 폭포의 상류는 국지성 강우가 많은 곳이어서 수량도 풍부하다. 그래서 일제 때부터 여름 물맞이객들이 찾았다. 구례 주민 뿐 아니라 남원에서도 50리 길을 걸어와 물맞이을 즐겼다.

요즘은 목욕탕이나 온천장마다 물맞이를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지만 예전엔 폭포 물맞이가 여름철의 중요 이벤트였다. 주로 나이 지긋한 여인들이 찾았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삼복더위를 식히는 물맞이는 허용이 됐다. 장쾌한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잠시나마 해방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물맞이가 더위를 피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낙수의 안마 효과도 크다. 신경통이나 관절염, 특히 산후통이 있는 여성들은 며칠씩 머물며 물맞이를 즐겼다.

수락폭포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폭포 원줄기가 떨어지는 곳은 남녀가 함께 물을 맞는 혼탕이다. 높이 20㎙, 폭 5㎙ 정도의 물이 떨어진다.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이다. 이 곳에 들어가려면 옷을 더 입어야 한다. 떨어지는 물에 몸이 흔들거릴 정도이다. 머리와 어깨를 짓누른다. 가장 취약한 부분은 귀. 마치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그래서 모자를 쓴다. 물 아래에 서면 천둥소리가 들린다. 완전한 복장(?)을 갖추더라도 2분 이상 버티기 힘들다. 서너번 반복해서 물을 맞으면 온몸이 녹초가 된다.

안마효과 커 중년층 인기

원줄기 왼쪽 약 15㎙ 지점에 별도로 물줄기를 만든 여탕이 있다. 몸에 옷이 착 달라붙는 모습을 보이기가 부끄러운 여인들이 주로 찾는다. 그 위 약 30㎙ 지점은 남자들을 위해 물을 끌여들였다. 여자들의 시선이 없는 이 곳에서 남자들은 조금 더 과감한 모습으로 물맞이를 즐긴다. 바지를 내리고 은밀한 곳에 떨어지는 물을 맞는 사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노래를 부르는 사람, 아예 누워서 온몸으로 물을 맞는 사람 등등.

폭포 원줄기는 밑으로 작은 폭포 몇 개를 더 만들다가 평평하고 완만하게 흐른다. 깊지 않고 안전하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에 알맞다. 어른들이 물맞이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이 곳에서 더위를 피한다.

수락폭포에는 오전 10시께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물론 물맞이광들은 아침 일찍부터 한가롭게 폭포를 즐긴다. 오후 2시 정도면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폭포 밑이 사람으로 넘쳐 나지는 않는다. 오래 머물 수가 없기 때문에 회전이 빠르다. 찬물을 온몸으로 맞고 폭포 아래의 평상에 누워 시원한 수박 한쪽을 먹는다. 여름은 없다.

수영복이 벗겨졌던 신사가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다시 도전을 한다. 모자는 물론 우비까지 입었다. 물밑에 서자마자 비명을 지른다. 어찌나 크게 지르는지 주변 사람들이 다시 주목한다. 아니나 다를까. 채 30초를 버티지 못하고 뛰쳐 나온다. 물에 범벅이 된 표정이 묘하다. 사람들이 또 웃음을 터뜨린다.

구례=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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