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제주 유나이티드는 이번에도 ‘베테랑’을 잡지 않았다.

K리그 37년 역사에 신인왕-MVP-득점왕을 모두 차지한 세명(이동국, 신태용, 정조국) 중 한명인 ‘패트리어트’ 정조국(36)이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프로축구연맹
축구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정조국은 제주 측에 은퇴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구단 역시 이를 인정했다.

2003년 프로에 데뷔한 정조국은 K리그 무대에서 392경기 121골을 넣은 ‘K리그의 레전드’다. 2003년 등장과 동시에 신인왕을 받았고 2016년에는 MVP와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K리그 37년 역사에서 신인왕-MVP-득점왕을 모두 달성한 선수는 신태용과 이동국, 정조국 밖에 없다.

정조국은 8경기만 더 뛰면 K리그 4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다. 400경기는 K리그 37년간 17명밖에 이루지 못했던 기록이다. 또한 3골만 더 넣어도 K리그 역대 득점 4위(4위 김은중 123골) 등극도 가능했다.

‘레전드’ 정조국은 올시즌을 앞두고 K리그1 강원FC에서 K리그2인 제주로 옮겨왔다. 광주에서 함께한 남기일 감독을 믿고 36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K리그2 무대까지 내려온 것.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뛰고 싶었기에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믿은 제주로 왔다.

하지만 막상 정조국은 12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그중 8번은 교체출전이었다. 풀타임으로 뛴 것은 딱 1번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리그 경기에서 넣은 딱 한골이 충남 아산전 결승골이었고 FA컵 3라운드에서는 서울 이랜드를 상대로 연장전에서 극적인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적은 기회에도 번뜩이는 ‘패트리어트’ 같은 모습은 보여줬다.

그럼에도 정조국이 은퇴의사를 밝힌 것은 팀내에서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조국은 팀에서 많은 기회를 받지 못하더라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버텨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참인 자신이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 승격 경쟁 중인 팀에 해가 갈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어린 선수들이 고민을 토로하면 조언해주는 등 베테랑 역할을 잘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벤치에서도 ‘응원단장’을 도맡으며 팀사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었다.

ⓒ연합뉴스
정조국은 최근까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현역 활동에 대한 의지와) 계획은 충분히 갖고 있다. 미래에 대해 신중히 고민 중이다”라며 현역 연장의지를 밝혔다. 팀사정을 알기에 ‘승격을 한다면’ 제주와 더 함께하고 싶어했다. 제주로 올때부터 제주에서 자신의 선수 커리어를 마치겠다고 다짐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조국에 관심을 보이는 구단도 있었지만 정조국은 제주에서 끝내겠다는 다짐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고 제주는 그럼에도 정조국과 결별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 측은 스포츠한국에 “구단에서 (정조국에게)선수로 계속 함께하자는 말을 못했다”며 “내년 K리그1에 있으면서 정조국에게 만족할만한 기회를 약속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스스로 올해 경기를 통해 느꼈을 것”이라며 은퇴 결심 이유를 설명했지만 정조국 측은 현역 생활에 대해 충분히 자신있어 했다는 것이 후문.

남기일 제주 감독은 자신의 필요로 인해 베테랑 선수를 영입했지만 딱 한 번의 풀타임 기회밖에 주지 않았고 그대로 레전드를 보내게 됐다.

2020시즌을 앞두고 K리그2로 강등된 제주는 ‘선수단 쇄신’을 명목으로 박진포, 조용형, 권순형, 김원일 등 오랜시간 팀에서 헌신한 베테랑 선수들과 결별했다. 박진포는 주장까지 지낸 선수였고 조용형 역시 구단 레전드였지만 은퇴식도 없이 은퇴했다. 결국 김원일도 K3리그를 거쳐 은퇴했다. 모두 제주와 더 함께하고 싶어했던 선수들이었다.

‘명문구단’은 단순히 성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구단의 인기를 위해 스타를 대우하며 활용해 멋지게 보내는 것 역시 이를 포함한다. 하지만 제주는 2006년 제주로 연고이전 이후 단 한 명도 ‘레전드’라 할 수 있는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제주’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없다. 제주에서 아름답게 퇴장한 선수도 찾아보기 힘들다.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제주 팬들이다.

제주는 또 한 번 베테랑 선수를 허무하게 떠나 보낼 것으로 보인다.

ⓒ프로축구연맹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