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한국에서는 ‘韓축구 명경기 열전’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경기 중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기억된 위대한 한 경기를 파헤쳐 되돌아봅니다.

-2011 아시안컵 8강 이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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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개요

2010 남아공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을 끝으로 허정무 감독이 물러나고 경남FC에서 ‘조광래 유치원’을 이끌던 현 대구FC 사장 조광래가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다. 부임 후부터 구자철, 손흥민, 석현준 등 어린선수를 발굴하고 윤빛가람-이용래로 대표되는 경남 애제자로 팀 리빌딩에 들어간 조광래 감독은 2011 아시안컵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팀의 주포인 박주영이 부상으로 결장하고 이동국, 안정환 등의 노쇠화로 대표팀 최전방의 자원이 없었던 것. 이에 아시안게임과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신예' 구자철과 지동원을 적극적으로 기용한다. 특히 지금으로 보면 가짜 9번 역할을 했던 구자철은 조별리그 3경기 4골의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이며 ‘히트작’이 된다.

바르셀로나식 티키타카를 베이스로 ‘김치타카’-‘만화축구’를 모토로 내세운 조광래호였지만 아시안컵은 순탄치 않았다. 조별리그 1승1무 이후 조 최약체인 인도와의 승부에서 로테이션이 아닌 주전급 선수를 상당히 썼음에도 4-1 승리에 그쳐 골득실 1점이 부족해 조 1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2위로 8강에 오른 것은 치명적이었다. 바로 8강 상대가 D조에서 3전 전승을 거둔 이란이었기 때문이다.

이란과 한국은 지독한 아시안컵 8강 악연이 있다. 1996 아시안컵을 시작으로 2011 아시안컵까지 5개 대회 연속으로 8강에서 한국과 이란이 맞붙었던 것. 게다가 한국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었다. 1996 아시안컵은 한국 축구사 치욕으로 기억되는 이란에 2-6 대패를 당한 것.

2000 아시안컵에서는 신예 이동국의 결승골로 2-1 승리했고 2004 아시안컵은 알리 카리미에게 당하며 난타전 끝에 3-4로 패했다. 2007 아시안컵은 0-0 후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었다. 패-승-패-승의 전적이었기에 ‘이번에는 질 차례’라는 불안과 주전 선수들이 3일 간격의 짧은 경기 일정에 지쳐 걱정이 많았다.

대회 전 박지성과 이영표가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암시하면서 행여 이 경기가 그들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될까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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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0-0 경기… ‘조광래의 황태자’ 윤빛가람이 해내다

지동원을 최전방에 두고 좌-우에 박지성-이청용,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 구자철, 3선에 기성용과 이용래, 양쪽 풀백은 차두리와 이영표, 중앙 수비는 황재원과 이정수, 골키퍼는 정성룡으로 나선 이란전은 아시안컵의 라이벌답게 매우 치열했다.

양팀 모두 골문을 두드렸지만 골키퍼 선방과 결정력 부족으로 쉽사리 골문을 열지 못했다. 전반 27분에는 왼쪽에서 이란이 오른발로 감아올린 프리킥을 수비가 헤딩으로 걷어낸다는 것이 골문으로 향했지만 정성룡 골키퍼의 선방으로 간신히 실점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구자철, 박지성, 지동원 등이 지속적으로 골문을 노렸지만 모두 골대를 살짝 빗나가거나 마무리 슈팅으로 이어가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볼점유율은 5:5로 매우 대등했지만 전체적인 공격기회는 한국이 조금 더 많이 만들어냈다. 이란은 알리 카리미 이후 제대로 마무리 지어줄 공격수가 없음을 실감한 듯 후반전에는 좀처럼 위협적인 슈팅도 하지 못했다.

후반 18분에는 한국 입장에서 행운도 따랐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차두리의 팔에 공이 맞은 것으로 보였지만 정면에서 본 심판이 페널티킥을 선언하지 않은 것. 이란 선수들은 항의했지만 VAR도 없고 정면에서 심판이 보고 페널티킥이 아님을 선그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점수는 나오지 않고 시간만 흐르자 자연스레 조광래 감독도 연장전을 준비했다. 첫 번째 교체카드를 후반 36분에야 쓸 정도였다. 구자철을 빼고 윤빛가람을 투입한다. 결국 이 선택은 주효했다.

0-0으로 전후반을 모두 마치고 연장전에 돌입했고 연장 전반 15분 오른쪽에서 공을 잡은 윤빛가람이 서서히 중앙으로 드리블을 해오더니 순간 수비와 거리가 벌어지자 지체없이 왼발 중거리슈팅을 때린 것. 이 슈팅은 발등에 제대로 얹혀 먼골대를 향해 날아갔고 그대로 골문에 꽂혔다.

‘조광래호의 황태자’ 윤빛가람이 교체로 투입돼 쏘아올린 결승골이었다. ‘난적’ 이란을 잡고 4강에 오르기에 포효했다. 이후 조 감독은 홍정호와 염기훈을 투입하며 굳히기에 들어갔고 총공세를 펼친 이란을 막아내며 1-0 신승을 거뒀다. 그렇게 한국은 아시안컵 4강 진출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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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개요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5연속 아시안컵 8강에서 만난 이란과의 악연은 3승2패 한국 우위로 종료된다. 이후 2015년과 2019년 아시안컵에서 한국과 이란은 만나지 않았기 때문. 박지성이 자신의 마지막 국가대표 대회에서 남긴 선물이다. 세계 축구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메이저대회에서 두 국가가 같은 곳에서 지속적으로 만난 이 대결은 지리적으로는 접점이 없는 한국과 이란을 아시아의 라이벌 국가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윤빛가람의 득점이 아니었다면 이 경기가 A매치 마지막 경기가 될 뻔도 했다. 특히 박지성의 경우 이 경기가 A매치 99번째 경기였기에 하마터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지 못할 뻔도 했다. 그러나 이란을 잡으면서 4강에 진출했고 4강 일본전에 출전해 A매치 100경기로 국가대표 커리어를 마치게 된다.

2011 아시안컵은 이렇게 힘들게 4강에 올랐음에도 4강에서 또 일본이라는 거대한 산을 만나 엄청난 접전 끝에 2-2 무승부 후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3연속 승부차기 실축이라는 기억하기 싫은 일이 일어나며 결승진출에 실패한다. 이후 3,4위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이기고 3위로 아시안컵을 마무리한다.

2011 아시안컵은 현재까지 한국축구에 큰 영향을 남기고 있다. 먼저 박지성-이영표로 대표된 2002 월드컵 세대가 이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을 떠나지만 기성용-구자철-이청용-홍정호-지동원으로 대표되는 ‘런던 세대’가 본격적으로 대표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게 된 대회다. 또한 손흥민이 조별리그 인도전을 통해 A매치 데뷔골을 쏘아올리며 축구대표팀에 화려하게 등장한 대회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구자철은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곧바로 이적한다. 또한 대표팀 최전방을 책임진 지동원도 6개월 후 잉글랜드 선덜랜드로 이적하면서 아시안컵 활약이 큰 기반이 됐다.

2011년 당시 왼쪽부터 박지성, 조광래, 손흥민.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코리아
이 대회 내내 조광래 감독의 지시로 박지성과 손흥민은 룸메이트를 이루며 대회가 열린 한달여를 함께 지냈다. 조 감독은 훗날 “(박)지성아. 너가 같이 방을 쓰면서 (손)흥민이 한번 키워봐라. 물건이다.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고 격려하고 칭찬 좀 해줘라”고 말했음을 밝혔다. 두 선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한 대회며 이때 박지성을 보며 손흥민은 많은 것을 배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이 대회를 끝으로 ‘캡틴’ 박지성이 은퇴를 하면서 이후 한국대표팀은 박주영-구자철 등이 주도한다. 2014 월드컵은 구자철이, 2018 월드컵은 기성용이 주장 완장을 찼다.

조광래 감독은 이 대회 후 1년도 못가 대한축구협회와 갈등 끝에 사임한다. 2011 아시안컵을 통해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냈다는 평가와 국내파-유럽파 간의 갈등, 만화축구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교차했다. 분명한건 조 감독 부임기간 동안 한국과 이란의 8강전이 최고의 명경기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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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Uirh_xOfM8

-韓축구 명경기 열전 시리즈

[韓축구 명경기 열전①] 홍명보-서정원, 5분의 기적으로 무적함대를 세우다(1994 스페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②] 황선홍-홍명보에 당한 독일 "5분만 더 있었다면 졌다"(199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③] 역사상 최고 한일전 ‘도쿄대첩’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1997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④] TV 역대 최고 시청률의 전설, 투혼의 벨기에전(1998 벨기에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⑤]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겼나(1999 브라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2002 5월 평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⑦] 이때부터였죠… 사람들이 축구에 미치게 시작한게(2002 폴란드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⑧] 박지성, 히딩크 품에 안겨 월드컵 16강을 이루다(2002 포르투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⑨] 역적에서 영웅된 안정환, 히딩크의 상상초월 전술(2002 이탈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⑩]한국 2군이 독일 1군을 누르다… 최고 미스터리 경기(200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⑪] ‘방송인(?)’ 이천수-안정환, 월드컵 원정 첫승을 일구다(2006 토고전)(2006 토고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⑫] 박지성, 산책하며 일본의 출정식을 망치다(2010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⑬] ‘야쿠부 고마워’ 실력+천운으로 첫 원정 16강 이루다(2010 나이지리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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