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한국에서는 ‘韓축구 명경기 열전’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경기 중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기억된 위대한 한 경기를 파헤쳐 되돌아봅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B조 3차전 나이지리아전

ⓒAFPBBNews = News1
▶경기전 개요

韓축구 명경기 열전⑫에서 소개된 한일전을 승리하고 한국은 머나먼 월드컵 장도에 오른다. 오스트리아에서 먼저 전지훈련을 가진 후 남아공에 입성한 한국은 B조 1차전 그리스전을 이정수-박지성의 골로 승리한다. 이어진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전에서 1-4로 패하긴 했지만 나이지리아전을 통해 여전히 16강 진출의 희망이 남아있었다.

B조 2경기까지 아르헨티나가 2승, 한국과 그리스가 1승1패, 나이지리아가 2패였다. 아르헨티나는 16강 진출을 확정했었고 나머지 16강 진출 티켓 한장은 그리스보다 한국에게 조금 더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스는 아르헨티나와 맞붙어야했고 한국은 이미 2패를 해 동기부여가 떨어진 나이지리아와 최종전을 가지기 때문. 골득실도 똑같은 -1이지만 한국이 3득점, 그리스는 2득점이기에 한국이 유리했다. 심지어 승자승마저 한국이 그리스를 이겼기에 앞섰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은 2002 멤버인 박지성, 차두리, 이영표, 안정환, 김남일 등과 이후 월드컵에서 주축이 된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등의 선수들이 노장과 신예로 섞인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들은 한국축구사 가장 위대한 업적인 월드컵 4강 신화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이뤄낸 세대라는 점에서 뜻 깊다.

2006 월드컵에서 아쉽게 1승1무 후 스위스전 판정시비 끝에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은 이번만큼은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을 위해 나이지리아전을 나섰다.

▶이른 실점에도 이정수의 ‘헤발슛’ 작렬… 초조한 한국

2010년 6월 22일 남아공 더반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B조 3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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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가 전반 12분 오른쪽에서 크로스 때 중앙을 파고드는 칼루 우체가 낮은 크로스를 밀어넣으며 오히려 선제골을 넣는다. 차두리가 우체를 한 발짝 뒤늦게 따르며 결정적 수비실수를 저지르자 당시 해설을 하던 ‘아버지’ 차범근 위원은 말을 잇지 못한다.

우체는 전반 중반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한국의 골대를 맞출 정도로 위협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하지만 전반 38분 왼쪽에서 이영표가 얻어낸 좋은 위치에서의 프리킥을 고작 만 21세의 기성용이 키커로 나선다. 기성용은 오른발로 감아 문전으로 올리고 이 크로스는 중앙을 넘어 뒤쪽으로 간다. 이때 스위스전에서 세트피스 득점을 했던 이정수가 뒤에서 달려들어와 머리를 갖다댄다. 하지만 머리에 맞지 못하자 이정수는 공도 안보고 오른 다리도 함께 든다. 이 공은 이정수의 정강이에 맞은 슈팅이 됐고 골키퍼는 예측도 못한 특이한 위치에서 나온 슈팅에 그대로 골을 허용한다.

‘헤딩도 아닌 발리슈팅도 아닌’ 헤발슛이 작렬했고 한국은 1-1 동점을 만든채 전반전을 마친다. 이때까지 같은시각 열린 그리스와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0-0으로 전반이 종료되며 한국은 행여 그리스가 이길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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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슈팅은 골대를 맞고, 한국은 이정수의 애매한 슈팅이 골이 되는 ‘행운’이 따르고 이 행운은 경기 끝까지 한국을 지켜준다.

▶‘자책골’ 아픔있던 박주영, 프리킥 작렬… 야쿠부 고마워

후반 시작 4분만에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다. 박주영이 헤딩경합을 하며 얻어낸 프리킥이 페널티박스 바로 밖 왼쪽 중앙 지점에서 나온 것.

염기훈이 공을 찰 듯 지나간 후 박주영은 매우 신중하게 오른발로 감아찬다. 이 프리킥은 먼 골대쪽으로 낮고 빠르게 감겼고 일반적으로 오른발로 감을 경우 수비벽을 넘겨 가까운 포스트를 넘기는 프리킥과는 달랐다. 자연스레 나이지리아 골키퍼는 수비벽을 넘길 줄 알고 움직였다 역동작이 걸렸고 박주영의 프리킥은 멀리 감긴 후 안으로 들어오며 바운드까지 된다. 골대 구석에 정확하게 꽂히는 역전골이 작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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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은 아르헨티나전에서 대패의 서막이 된 자책골의 주인공이 되며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2006 월드컵은 신인이었기에 부담이 없었지만 2010 월드컵은 박지성과 함께 한국의 에이스로 한방을 해줘야했다. 마음고생 심했던 박주영의 골이 이제야 터졌고 박주영은 특유의 기도 세리머니와 함께 설움을 폭발하며 포효한다.

2-1 역전에 성공한 한국은 이제 지키는게 중요해진다. 여전히 0-0이었던 그리스-아르헨티나전의 상황을 볼 때 16강 진출이 가능했기 때문. 허정무 감독은 후반 19분 공격수 염기훈을 빼고 노장 미드필더 김남일을 투입한다. 김남일을 통해 중원 수비 강화를 하겠다는 것.

하지만 1분 후 정말 큰 일이 날 뻔했다. 한국의 오른쪽 수비가 뚫리고 왼쪽 뒤에서 달려온 아일라 유세프가 낮은 크로스를 중앙에 투입한 것. 나이지리아 공격수인 야쿠부의 발 앞으로 공이 갔고 이미 정성룡 골키퍼가 상대 크로스로 인해 골대를 반쯤 비우고 나온 상황이었다. 야쿠부의 발에 맞기만 하면 골인 상황.

하지만 야쿠부는 골대 바로 앞에서 오른발을 갖다 대고도 골을 넣지 못한다. 텅빈 골대를 두고 골대 밖으로 밀어 찬 것. 나이지리아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아마추어도 하지 않을 실수를 야쿠부한 것이다.

FIFA
야쿠부 역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한반도는 정말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하지만 또 다시 한국은 끔찍한 악몽을 경험한다. 믿었던 김남일이, 수비강화를 위해 넣은 김남일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자신이 소유한 공을 다소 앞으로 밀어차는 실수를 했고 이때 공격수가 뒤에서 달라붙자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백태클을 한 것이다. 명백한 반칙이었고 페널티킥이었다.

결국 후반 24분 야쿠부가 페널티킥 득점에 성공하면서 2-2 동점이 된다. 이렇게 되면 행여 남은 시간동안 그리스가 아르헨티나를 이기면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상황이 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피말리는 20여분이었다.

후반 막판에는 나이지리아 공격수 마르틴스가 정성룡과 맞서는 일대일 기회에서 지나치게 옆으로 찍어 차는 바람에 일대일 완벽한 골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한국에겐 천운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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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아르헨티나전은 한국에게 너무나도 고맙게도 아르헨티나가 웃는다. 후반 32분 아르헨티나 수비수 데미첼리스가 드디어 골을 넣은 것에 이어 후반 44분에는 팔레르모가 추가골까지 넣으며 2-0으로 이겨준 것.

결국 한국은 2-2 무승부를 지켜냈고 아르헨티나 3승, 한국 1승1무1패, 그리스 1승2패, 나이지리아 1무2패로 B조 순위가 정해진다. 한국 축구 역사상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게 된다.

▶경기 후 개요

기성용은 고작 만 21세의 나이에 이정수의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 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며 이 대회에서 월드컵 2도움을 기록한다. 이정수는 1994 월드컵 홍명보 이후 수비수로서 한 대회에서 2골을 기록한 첫 한국 선수로 남게 된다.

박주영의 프리킥 득점으로 인해 한국은 1990년 월드컵부터 2010년까지 20년간 6개 대회 연속으로 월드컵에서 직접 프리킥 득점에 성공한다(1990 황보관, 1994 홍명보, 1998 하석주, 2002 이을용, 2006 이천수, 2010 박주영). 이 기록은 2014 월드컵에서 무득점으로 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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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영국의 BBC는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실수’ 1위로 바로 야쿠부의 한국전 엄청난 실수를 선정했다. 그만큼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나와서는 안 될 아마추어도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지른 야쿠부다.

이렇게 보면 야쿠부가 수준 낮은 선수로 인식될 수 있으나 야쿠부는 EPL에서 제대로 한가닥 한 선수다. 포츠머스-미들스브러-에버튼-레스터 시티-블랙번 등에서 총 10년이상을 뛰며 100골 가량을 넣은 선수. 탄탄한 피지컬이 장점이었던 야쿠부는 나이지리아 간판 선수였음에도 이 실수로 기억되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1승1무1패 골득실 -1,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1승1무1패 골득실 -1을 기록했다. 하지만 2006년 당시에는 조 3위, 2010년에는 조 2위로 희비가 엇갈렸다. 2006년에는 불운했고 2010년에는 천운이 따른 셈이다.

이같은 조별리그 성적은 물론 나이지리아전 야쿠부 실책과 골대강타, 그리고 결정적 일대일 기회를 놓쳐준 ‘행운’과 박지성-박주영-기성용 등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의 연결고리가 탄탄했던 실력도 있었기에 가능했던 한국축구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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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1rhlDzXIJg


https://youtu.be/xrw9Za3BlDg


https://youtu.be/EayE8oF5nfI

-韓축구 명경기 열전 시리즈

[韓축구 명경기 열전①] 홍명보-서정원, 5분의 기적으로 무적함대를 세우다(1994 스페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②] 황선홍-홍명보에 당한 독일 "5분만 더 있었다면 졌다"(199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③] 역사상 최고 한일전 ‘도쿄대첩’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1997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④] TV 역대 최고 시청률의 전설, 투혼의 벨기에전(1998 벨기에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⑤]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겼나(1999 브라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2002 5월 평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⑦] 이때부터였죠… 사람들이 축구에 미치게 시작한게(2002 폴란드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⑧] 박지성, 히딩크 품에 안겨 월드컵 16강을 이루다(2002 포르투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⑨] 역적에서 영웅된 안정환, 히딩크의 상상초월 전술(2002 이탈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⑩]한국 2군이 독일 1군을 누르다… 최고 미스터리 경기(200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⑪] ‘방송인(?)’ 이천수-안정환, 월드컵 원정 첫승을 일구다(2006 토고전)(2006 토고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⑫] 박지성, 산책하며 일본의 출정식을 망치다(2010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⑬] ‘야쿠부 고마워’ 실력+천운으로 첫 원정 16강 이루다(2010 나이지리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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