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서귀포=이재호 기자]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꿈같았던 브라질에서의 ‘한여름의 밤’을 꾸고 온 이창민(22·제주 유나이티드)은 부쩍 달라져있었다. 고작 한 달여의 시간이었지만 제주 관계자들은 물론 조성환 제주 감독도 “창민이가 많이 달라졌다”며 놀라워했다.

누군가는 평생 경험해보지도 못할 특별한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이창민에게 브라질을 가기 전과 가고난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얘기해달라고 하자 “전국민이 지켜보는 큰 대회에서의 압박감을 이겨내고 나니 경기장에 설때 여유와 자신감이 확실히 다르다. 예전에는 조급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쫓기는 마음이 사라졌다”며 활짝 웃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2012 런던 이후 혼자 디데이 세웠던 2016 리우… ‘슈퍼 조커 되리라’ 다짐

2016 리우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은 2승1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8강에서 온두라스에게 0-1로 아쉽게 패하면서 2012 런던 올림픽의 동메달을 넘지 못했다.

아무래도 호기로웠던 조별리그 성적에 비해 마지막 경기로 인해 올림픽은 국민들에게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창민 역시 “많이 아쉬운 올림픽”이라며 “나 역시 국민들이 아쉬워했듯 온두라스전이 안타까웠다. 비록 경기를 나가지 못했지만 벤치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번 리우 올림픽을 사실 혼자서 많이 기다렸어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아직 어렸던 저는 그날로 혼자만의 디데이를 만들었어요. 혼자 리우 올림픽 개막이 언제인지를 찾아보고 나서 2012년 8월부터 디데이를 만들어 혼자 매일같이 세어왔어요. 물론 당시 만해도 고작 연령별 대표팀밖에 뽑히진 못했고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혼자 목표를 세우면 가능하지 않을까하고 꿈꿔왔죠. 실제로 힘들 때마다 저 혼자 세어오던 리우 올림픽 디데이를 보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죠.”

혼자 천일을 넘게 세어오던 나날들 속에 이창민은 성장해갔다. 하지만 결코 올림픽 대표팀 18인 명단에 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단 와일드카드 3장에 골키퍼 2장을 빼면 사실상 13명만이 뽑히는 자리다. 거기에 포지션마다 할당량이 있으니 사실상 23세이하 나이에 중앙 미드필더를 가장 잘해야만 한다.

“솔직히 쉽지 않았죠. 하지만 2016년 카타르에서 열린 올림픽 진출권을 따내는 대표팀 속에서 활약하며 ‘아 올림픽을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솔직히 거의 마지막 주자로 대표팀에 합류한 것 같아요. 2선에 경쟁자들이 워낙 뛰어났잖아요? 대표팀 합류 확정이 되고나서 냉정히 보니 주전으로 뛰기 싶지않겠다라고요. 그래서 제 스스로 ‘슈퍼 조커가 되야겠다’고 다짐했죠.”

이창민은 피지와의 1차전에 선발로 출전해 80분을 뛰었고 3차전 멕시코전 역시 선발로 55분을 뛰었다. 비록 자신이 생각한 ‘슈퍼조커’는 되진 못했지만 한국이 이긴 경기에만 모두 출전한 ‘승리의 사나이’가 됐다.

'호우 세리머니'를 펼쳤던 이창민. SBS
욕 많이 먹은 ‘호우’ 세리머니… 흥민이형이 놀려요

이창민이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3월 열렸던 알제리와의 평가전에서였다. 이때 이창민은 알제리를 상대로 골을 넣은 후 일명 ‘호우’ 세리머니로 유명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전매특허 세리머니를 따라했다.

“나중에 그게 많이 화제가 됐더라고요. 호날두 따라했다고. 하하. 물론 호날두를 좋아하긴 하는데 저도 모르게 나왔던 세리머니였어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국내에도 호날두 팬들이 많으셔서 그런지 욕 많이 먹었어요. ‘너만의 세리머니를 하라고’ 욕 많이 먹었네요.”

그래도 이 세리머니 덕분에 와일드카드로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했던 손흥민과 친해진 얘기도 들려줬다. 손흥민 역시 자타공인 호날두를 좋아하는 선수 중 한명. 오죽하면 별명이 ‘손날두’일 정도.

“흥민이형을 처음 봤었거든요. 흥민이형 본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떨렸죠. 그런데 흥민이형이 절 보자마자 ‘아, 너 ’호우‘구나’라고 하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그 이후 흥민이형은 저만 보면 ‘호우’하면서 놀리더라고요. 정말 장난도 많이 치시고 재밌어요. 선후배들 모두에게 장난도 잘 쳐서 쉽게 융화되는 성격이 놀랍더라고요.”

와일드카드로 선발됐던 석현준, 손흥민, 장현수와 직접 생활해보니 어떠했는지를 묻자 “당연히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나죠. 저희 23세 이하 선수들과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여유’와 ‘자신감’이 다르더라고요. 팀 분위기가 안 좋든, 개인적으로 좋은 안 좋든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여유가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모습을 많이 배우려고 했죠”라며 석현준과 장현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석현준 형은 솔직히 처음엔 겉모습만 보고 무뚝뚝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친절하고 쾌활하시더라고요. 장난도 많이 치고, 의외로 팀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셨어요. 그리고 장현수 형은 뒤늦게 합류하셨지만 딱 행동과 말에서 ‘아 이런게 바로 진짜 리더구나’하는게 느껴지더라고요. 오시자말자 바로 현수형을 중심으로 팀이 꾸려졌어요. ‘타고난 리더’라는 말이 딱 현수형한테서 느껴졌죠.”

올림픽 이후 떨어진 의욕, '국가대표+제주 핵심 역할' 기대로 다 잡아

이창민은 “솔직히 올림픽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 멍했다. 4년전부터 이것만보고 내달려왔기에 다소 허탈한 마음도 있었다. 솔직히 조금은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다”며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죠. 다음 목표가 반드시 필요했고 그 목표는 역시 ‘국가대표’였어요. 올림픽대표팀 멤버가 꼭 국가대표를 보장하진 않잖아요. 더 노력해서 이제 국가대표에 꾸준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선수가 돼야겠죠.”

대한축구협회 제공
개인적으로는 국가대표를 얘기했지만 제주라는 소속팀에서도 충분히 욕심을 내볼 수 있는 처지다. 마침 제주의 핵심 미드필더였던 송진형이 지난 21일 UAE의 알샤르자로 이적하면서 제주 미들진에 공백이 생겼고 딱 그 자리에 이창민이 들어갈 수 있다.

“진형이형의 빠진 공백을 이제 제가 메워야죠. 조성환 감독님도 잘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올림픽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 선수로 거듭나서 제주를 올 시즌 꼭 3위내에 입상시켜 내년시즌 ACL에도 나가게 하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에 포털 사이트에 ‘이창민’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2AM출신의 가수가 먼저 검색된다고 장난스럽게 언급하자 “제 목표예요. 더 유명해지고 성공해서 가수 이창민씨보다 먼저 제 이름을 나오게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제주’ 이창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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