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 전 부회장은 혼자 1천만달러 챙겨

미국 법무부가 27일(현지시간) 공개한 국제축구연맹(FIFA) 뇌물 의혹 관련자 공소장에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대회 유치 과정에서 이뤄진 돈거래 정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체포된 FIFA 간부들이 뇌물수수와 돈세탁 후 다양한 금융기법으로 은폐를 시도했던 것과 달리 남아공 월드컵과 관련해서는 뇌물이 '고전적' 방법으로 오갔다고 보도했다.

미 검찰은 공소장에서 남아공 정부가 아프리카의 첫 월드컵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1천만 달러(110억4천800만) 이상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 돈을 받은 FIFA 임원들이 남아공을 차기 개최지로 밀어준다는 조건이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당시 FIFA 집행위원이었던 잭 워너 전 FIFA부회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남아공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워너 전 부회장은 한번은 자금전달책인 제3자에게 프랑스 파리로 가서 남아공 월드컵유치위원회 고위 관계자로부터 '호텔방에서 1만 달러의 지폐묶음들로 채워진 서류가방'을 받아올 것을 지시했다.

이 인사는 수 시간만에 파리행 비행기를 탔고, 돈가방을 받은 뒤 트리니다드토바고로 날아와 워너 전 부회장에게 이를 전달했다.

당시 모로코도 2010년 대회를 유치하려고 워너에게 100만 달러(11억480만 원)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워너 전 부회장은 척 블레이저 전 FIFA집행위원에게 "FIFA 고위 간부들과 남아공 정부, 남아공 유치위가 1천만 달러를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고 알림으로써 일종의 '표단속'을 했다.

이 돈을 받은 워너 등 3명은 결국 남아공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게 미 검찰의 판단이다.

이 뇌물이 남아공이 아닌, FIFA로부터 워너 전 부회장에게로 건너간 모양새였다는 점도 눈에 띈다.

공소장에 따르면 FIFA의 한 관리가 2008년 1∼3월 모두 1천만 달러를 FIFA의 스위스 금융계좌에서 미국 뉴욕을 거쳐 워너 전 부회장이 관리하는 금융계좌로 온라인 입금했다.

만약 워너 전 부회장에게 건네지지 않았다면, FIFA가 남아공에 보내야 하는 돈이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미 검찰은 워너 전 부회장이 이중 상당액을 개인 용도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워너 전 부회장의 이름은 2011년 FIFA 회장 선거에서도 등장한다.

당시 선거에 출마한 FIFA의 한 고위 임원은 워너 전 부회장에게 "축구 관계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고 싶으니 사람들을 좀 모아달라"고 부탁하면서, 그에게 36만3천537.98달러(4억163만 원)을 온라인 송금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 인사는 그해 5월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한 호텔에서 캐러비안축구연맹(CFU)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연설을 할 수 있었다.

워너 전 부회장은 행사 후 호텔의 한 회의실에서 '선물'을 받아가라고 참석자들에게 권했다.

선물이란 4만 달러(4천419만 원)가 든 현금 봉투였다고 NYT는 전했다.

이 사실이 다음날 CFU의 한 회원에 의해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측에 알려지자 워너 전 부회장은 CFU에 전화를 걸어 "그렇게 경건하면 교회를 열어. 사업은 사업이잖아"라며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 얼룩진 FIFA, 최대 위기 봉착

[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 세계 축구계를 총괄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위기에 빠졌다.

지난 1904년 FIFA가 설립된 이후 111년만의 최대 위기다. FIFA가 '부정부패'로 얼룩지게 된 것은 축구가 전 세계적인 인기스포츠로 자리 잡으면서 막대한 금액이 오고 가는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FIFA는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의 경우 TV 중계권과 각종 마케팅권 판매로 57억 달러(약 6조3,0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현재 FIFA의 현금보유고는 15억 달러(약 1조6,5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수입에도 불구하고 FIFA는 중립국인 스위스 취리히에 비영리 단체로 등록돼 있어 세금도 낼 필요가 없다. 사실상 어느 누구의 간섭 없이 자금 운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5선에 도전하는 제프 블래터(79·스위스) 회장의 독주체제 아래 FIFA는 더욱 폐쇄적인 단체가 됐다.

FIFA 고위직 7명을 체포한 스위스 법무부 관계자가 "FIFA의 부패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곳곳에 만연돼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밝힐 정도로 FIFA의 폐쇄성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블래터 회장은 이번 수사를 계기로 FIFA의 비리를 뿌리뽑고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으나 블래터 회장 본인이 '부패의 원흉'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어 회장의 자리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FIFA는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뇌물수수 논란이 불거진 2018년 러시아 월드컵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예정대로 진행 될 것이라는 입장이나 수사 결과에 따라 변동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러시아와 카타르, FIFA 고위직이 뇌물을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될 경우 개최지 재선정을 요구하는 각국의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FIFA를 향한 수사기관의 움직임은 오는 29일로 예정된 회장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단 FIFA는 이번 수사와 상관없이 당초 예정된 날짜에 회장선거를 강행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수사의 추이를 볼 때 블래터 회장이 수사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대로 선거를 강행할 경우 현직 FIFA 회장이 조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각 대륙 가운데 블래터 회장의 5선을 가장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럽축구연맹(UEFA)은 성명을 내고 "축구를 지키기 위해 FIFA의 리더십 자체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이번 선거 역시 연기해야한다"며 선거 연기를 주장했다.

UEFA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거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블래터 회장이 예측대로 5선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블래터의 지지기반 세력으로 알려진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의 표심이 흔들리면서 도전자 알리 빈 알 후세인(40) 요르단 왕자가 반사이득을 볼 수도 있다.

최대 위기를 맞은 FIFA가 개혁을 통해 부패의 온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지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이번 수사와 회장 선거에 집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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