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사실 차두리(35·FC서울)의 커리어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굴곡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차두리를 그저 ‘뛰어났던 선수’정도로만 인식하며 다소 과소평가하고 있다. 또한 세밀함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차근차근 곱씹어보면 차두리만큼 뛰어나고 재능이 많으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선수는 한국 축구사, 아니 세계 축구사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다.

▶고작 대학선수가 A대표팀에 발탁됐던 재능

프로선수도 아닌 대학팀 선수가 A대표팀에 소집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차두리는 아직 고려대 재학 중이던 21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소집돼 데뷔전(2001년 11월 세네갈전)을 치렀다.

당시까지만 해도 윙포워드였던 차두리는 월드컵 개막을 2개월도 채 남겨두지 않았던 4월,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 선발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고 전반 24분 안정환의 패스를 그대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뽑아냈다.

그의 A매치 데뷔골이자 대학선수가 2002 한일월드컵 23인 최종명단에 들어가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골이었다. 차두리는 더 이상 현대축구에서 쉽사리 보지 못하는 대학선수의 A대표팀 발탁이라는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 물론 그 대표팀이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강했던 대표팀이었다는 것은 그의 위대함을 더한다.

▶분데스리가, SPL, 아시아 정상까지 넘본 화려한 프로경력

그가 대단한 것은 대표팀 데뷔만이 아니다. 그의 첫 팀은 현재 손흥민이 뛰고 있는 레버쿠젠이었다. 당시의 레버쿠젠은 현재의 레버쿠젠과 비교를 달리한다. 당시 레버쿠젠은 2001~2002시즌 리그 준우승은 물론 지네딘 지단이 버티던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 아쉽게 패해 유럽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던 강팀이었다.

그러한 명문팀이 단지 팀 레전드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영입할리는 없었다. 그의 잠재력을 알아봤기 때문에 가능한 영입이었다. 물론 레버쿠젠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빌레펠트,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임대를 다녔지만 분명 차두리의 프로데뷔는 당시에도 역시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였던 분데스리가에서 시작한 놀라운 출발이었다.

이후 차두리는 2005~2006시즌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의 FA컵인 포칼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마인츠, 괴블렌츠, 프라이부르크 등 많은 팀을 옮겨 다녔다. 그가 많은 팀을 옮긴 것은 분명 타팀들이 매력 있어 할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차두리는 2010년부터는 스코틀랜드 리그로 적을 옮겨 스코틀랜드 최강팀 셀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2시즌을 머물면서 리그 우승과 준우승, 컵대회 우승 등 영광의 세월을 누리기도 했다. 이정도면 너무나도 성공적인 프로생활이었다.

게다가 차두리는 국내 복귀 후에도 2013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독일, 스코틀랜드에 이어 아시아 무대까지도 차두리는 성공적이었던 것이다.

▶쉽지 않은 포지션 변경의 성공

차두리는 데뷔시절 오른쪽 윙이었다. 하지만 마인츠에서 뛰던 2006시즌부터 오른쪽 풀백으로 전환했다. 축구계에서 오른쪽 수비수가 왼쪽 수비수로, 혹은 윙이 중앙 미드필더로 옮기는 등의 포지션 변경은 꽤 흔하다. 하지만 프로생활을 공격으로 시작해 대표 선수까지 지냈던 선수가 미드필더도 아닌 수비수로 변신해 다시 대표선수로 복귀하고 공격수때보다 더 나은 커리어를 이어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포지션 변경은 프로선수들에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차두리는 이를 해냈고 31일 뉴질랜드전을 통해 오른쪽 윙으로 A매치 38경기, 수비수로 A매치 38경기라는 정확한 데칼코마니같은 기록을 완성했다.

▶‘월드컵 4강부터 아시안컵 준우승까지…’ 화려한 대표 경력

차두리의 대표경력은 뛰어난 프로선수 경력을 뛰어넘는다. 한국축구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2002한일월드컵 4강의 핵심멤버로 활약했고 한국 축구사 처음으로 원정월드컵 16강을 기록했던 2010남아공월드컵도 그는 주전이었다. 또한 27년 만에 다시 오른 AFC 아시안컵 결승무대에서도 차두리는 늘 팀의 핵심선수였다.

세계에서 월드컵 4강에 아시안컵 준우승까지 직접 경험한 선수는 몇 명이 될까. 박지성, 이영표, 차범근도 달성하지 못한 위대한 업적으로 이 세상 단 한명밖에 없다.

그 이름은 바로 차두리다. 이래도 우리는 차두리를 단지 ‘차범근의 아들’이나 ‘피지컬로 승부하는 선수’로 치부해도 될까. 그는 단연 과소평가 받고 있던 선수였다.

사진= 스포츠코리아 제공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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