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과 함께 했던 차두리. 차두리 트위터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박)지성이만큼 축구를 했더라면, 손흥민만큼 축구를 잘했으면 아버님도 더 자랑스러우셨을 것.”

브라질 월드컵 전 방영됐던 한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차두리(34·서울)는 더 큰 선수로 성장하지 못해 아버지(차범근)를 실망시킨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축구로 비유하면 후반 44분에 다다른 그의 축구인생은 그럼에도 ‘지성이만큼’이 아닌 어쩌면 더 나은 마무리로 귀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차두리는 최근 여러 차례 은퇴를 고려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어느덧 한국나이로 35세인 그는 대표팀과 소속팀 모두에서 최고참으로 변함없는 활약을 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힘에 부치고 있음을 토로했던 것.

“축구라는 게 정신과 육체, 마음이 일치될 때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 육체적인 건 사실 문제가 없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마음 속 열정이 얼마큼 남아있는가가 중요하다. 모든 걸 쏟을 준비가 돼있지 않다면 팀 동료, 구단, 감독님에게 모두 짐이 되는 것 같다.” (10월 30일 K리그 클래식 34라운드 전북전 미디어데이)

‘열정’의 문제를 언급하며 시즌 후 은퇴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던 차두리는 자신의 말과는 다르게 지난 요르단 원정 경기(14일)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혹자들은 ‘인생 경기’라 칭할 정도로 수비면 수비, 공격이면 공격 전 방위적인 모습을 선보였고 한교원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완벽 그 자체의 모습을 45분간 보여줬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더 좋은 선수가 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던 차두리. SBS
경기에서만큼은 겉으로 보기엔 여전한 열정을 가진 것으로 보였지만 평소 신중한 성격으로 알려진 차두리가 저 정도 언급을 공식석상에서 꺼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마음을 굳힌 게 아니냐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그럼에도 그를 보내기는 아쉽다. 단순히 요르단전에서 보여줬던 활약상 때문은 아니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20일 중동원정을 마치고 귀국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차두리는 필드 안팎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다. 경험이 풍부하다"며 그가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임을 밝혔다.

대표팀뿐만이 아니다. 소속팀 최용수 감독은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은퇴시기를 늦춰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면서도 “그러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본인의 선택을 무시할 수는 없다. 본인이 더 힘든 상황일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본인이 원하면 은퇴를 할 수밖에 없다. 타인이 개입할 수 없는 본인의 의지가 내려졌다면 이제 주위에서 고민해야 할 일은 어떻게 마무리를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느냐가 될 것이다. 이 마무리에 대한 단서는 뜻밖에도 슈틸리케 감독의 입에서 나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차두리와 면담을 통해 아시안컵까지 함께 하겠다는 얘기를 나눴다”고 밝힌 것.

결국 차두리의 선수생활 혹은 대표팀 생활의 종착지는 내년 1월 열리는 2015 호주 아시안컵일 것으로 보인다. 가장 좋은 마무리는 당연히 아시안컵 우승컵을 들고 정점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그만큼 축구를 못해 아버지께 죄송하다’고 언급했던 박지성(33)의 마무리와 오버랩 될 수밖에 없다. 박지성 역시 아시안컵을 통해 대표팀 생활에 방점을 찍은 바 있기 때문.

박지성은 2011 아시안컵 준결승 일본전을 끝으로 딱 A매치 100경기 출전을 채움과 동시에 대표팀 생활을 마무리했다.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지만 박지성에게도 선수생활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아시안컵 우승’을 하지 못한 채 태극마크를 내려놓았기 때문.

박지성은 선수시절 내내 “아시안컵 우승을 꼭 달성하고 싶다”고 주장한 바 있고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 자격으로 국내 기자들과 만난자리에서도 “아시안컵은 선수 생활 중 가장 아쉬운 대회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완벽해 보이는 박지성에게도 끝내 들지 못한 아시안컵은 ‘이루지 못한 학창시절 첫사랑’같은 셈이다.

차두리는 ‘박지성만큼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지만 그에겐 아직 박지성이 가지지 못한 기회가 있다. 박지성은 출전할 수 없는 이번 아시안컵으로 좋은 마무리를 하게 된다면 그를 능가하는 차원이 아닌 아버지도 못한 54년 묵은 한국축구의 한(恨)을 풀 수 있는 것이다. 아시안컵 우승은 박지성 역시 두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바람이다.

물론 혼자 힘으론 안 된다. 모두의 힘이 절실할 때다. 최고참을 위해, 한국 축구 비운의 역사를 씻기 위해 아시안컵 우승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아시안컵 우승을 통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차두리의 모습을 보고 싶은 팬들은 결코 적지 않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