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 책 낸 공부하는 미스코리아 금나나의 끝나지 않은 도전
피말리는 스트레스 겪으며 치통까지 … 내가 받은 축복, 다른이 위해 돌려줄 생각
"넓은 세상서 쓴맛 제대로 경험했어요… 성공 위한 통과의례로 생각"

# 장면1-2008년 6월 하버드대학교 졸업식장

"금나나, 생화학과 쿰라우데."

안내자의 에스코트를 받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졸업장을 주고 받는 짧은 시간, 금나나의 얼굴에 밟은 미소가 스쳐갔다.

"축하한다. 우수상이구나."

엄마, 아버지, 남동생 등이 격려해주었다. 졸업장의 이름 밑에 'the degree of Arts, cum laude'라 적혀 있었다. 최우수상인 숨마 쿰라우데는 아니지만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상이다. 학점 4.0 만점에 3.8점을 따낸 결과였다.

# 장면2-2002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회자 최수종이 금나나에게 물었다.

"죽고자 하는 용기로 다시 살아보세요. 단 하나 뿐인 생명을 끊지 마세요."

최종 심사가 끝나자 공동 사회를 맡은 최수종-신동엽이 미스코리아 진을 발표했다.

"참가 번호 30번, 금나나."

최종점수 97.2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경북대 의예과 1학년인 금나나가 최고의 영광을 안았다.

"기대하지 못했는데, 부족한 저에게 좀더 자기 개발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올해 나이 스물여섯 금나나. 짧고도 긴 시간이 도전의 연속이었고, 겉의 화려함 속에서 좌절과 시련도 맛봐야 했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써가고 있다.

이젠 대학원 진학을 앞둔 여느 여대생처럼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공부벌레'로 지내느라 해보지 못한 일을 마음껏 하는데다 지난 7일에는 '천재들의 전쟁터'인 하버드대에서 가장 절친했던 친구 프리실라가 멀리 브라질에서 왔기 때문에 더없이 밝은 표정이다.

하버드에서 기초 과학인 생화학(Biochemistry)을 공부한 금나나는 지난해 메디컬스쿨에 들어가려고 무려 26곳에 지원서를 냈다. 인터뷰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지만 묵묵부답. 운명처럼 생각한 의사의 꿈은 확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엄청난 스트레스 탓에 몸까지 아팠다. 치통이 심해 일주일 동안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고통스런 기다림이었다.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경험한 것 같다. 처절하게 느끼고, 철저하게 세상을 배운 시간이지만 지금 되돌아봐도 반복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었다. 혐오스러울 정도다."

8월말까지 기다렸지만 어느 메디컬스쿨도 합격 통보를 보내오지 않았고, 결국 금나나는 이미 4월에 입학 허가를 받았던 1년 과정의 컬럼비아 영양대학원(Institute of Human Nutrition)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이 역시 새로운 도전이고,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곧바로 의대로 가면 의술 배우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컬럼비아 대학원을 거치면 좀더 깊이 있는 의학적 기초 과학을 공부하게 될 것이고, 내가 왜 의사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이나 원인이 있듯이 이번 기회에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대학원 진학 과정을 큰 사람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버드의 '지각 입학생' 금나나의 대학 생활은 지독했다. 뒤 처지는 영어 공부하랴, 전공 따라 잡으랴 정신이 없었다. 녹음기를 들고 이 강의실, 저 강의실로 뛰어 다녔다.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한 것은 기숙사로 돌아와 녹음기를 다시 돌리고 돌리고.

"하버드에선 공부, 잠, 식사 뿐이었다. 국제 학생으로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마음이 천사 같은 브라질 친구 프리실라와 중국인 리웨이가 있어 서로 이해하고, 도와가며 버틸 수 있었다."

금나나에게 하버드행은 직감으로 다가온 운명적 선택이었다.

2002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힌 금나나는 다음해 파나마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의대생 미스코리아'라는 우쭐함에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였다. 그러나 세상은 넓었다. 생각도 달랐다. 의대생이란 배경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양한 경력과 학력을 지닌 미녀들이 많았다.

"상큼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충격이었다. '의대생이 뭐 대단한다'하는 표정들인데 뭔가 '띵' 하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미국의 대학 탐방에 나섰고, 하버드 교정에 들어서는 순간 경북 과학고를 선택할 때처럼 이 곳이 내가 올 곳이란 직감이 들었다."

마음을 정하자 다시 책을 잡았다. 어차피 휴학 기간인데 유학공부에 빠져들자며 매달렸고, 4개월만에 SAT와 토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려 하버드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금나나는 '시골 소녀'다. 경북 영주의 부부교사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 금기영씨는 체육 선생님, 어머니 이원홍씨는 가정 선생님이다. 부모가 함께 교단에 서야 하는 까닭에 웬만한 일은 모두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했다. 힘들고 괴로워도 참았고,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신데렐라'도, '공주'도, '천재'도 아니다. 그저 노력파다. 중학교 땐 IQ 150의 '천재형 친구'에게 지기 싫어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했고, 과학고에선 시골 아이가 도시의 수재들과 경쟁하느라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 진학도 순탄치 않았다. 수시 모집 때 의대 5곳을 지원했지만 4곳은 낙방.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고, 새로운 도전으로 꿈을 이어갔다.

"늘 1등은 아니었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직관에 따랐다. 놀면서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찾는 것이 진정한 경쟁이라 느끼며 지낸다."

금나나는 하버드에서 정체성을 찾았다.

"하버드에서 처음엔 친구들의 장점만 보였다. 자신감이 떨어졌고, 위축됐다. 자꾸 '나는 뭔가'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단점도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장점도 찾을 수 있었다. 학교를 떠나 세상에 나갔을 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금나나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낸다. 미스코리아에서 하버드대를 거려 컬럼비아 대학원생이 되기까지 수많은 축복을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직 행복을 모른다.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 여전히 걷고 있기 때문이다.

●금나나는

생년월일 ; 1983년 8월19일

가족 관계 ; 아버지 금기영씨(55)와 어머니 이원홍씨(53)의 1남1녀 중 장녀

출신교 ; 영주 영광여중-경북과학고-경북대 의대-하버드대-컬럼비아 영양대학원

< 주요 경력 및 저술 >

2002 미스코리아 진

2004 금나나의 공부일기

2005 나나 너나 할 수 있다

2008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

하버드대 4년간 겪은 좌절과 성취의 기록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는

어느 날, 금나나는 미스코리아 진에서 '하버드의 공부 벌레'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하버드대 졸업생으로 컬럼비아 영양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뒤 찾아온 3개월의 휴식 기간을 맞아 지난해 말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란 책을 냈다. 벌써 자신의 이야기를 세번째 책으로 엮어냈다.

금나나는 경북대 의대 신입생이던 2002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혀 주목 받더니 2004년에는 미국의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 대학교에 동시에 합격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2004년 '금나나의 공부 일기'로 자신만의 학습법을 알렸고, 2005년에는 '나나 너나 할 수 있다'(김영사)라는 책을 통해 꿈을 향해 도전해 나가는 소녀의 성공 스토리를 담아냈다.

모두 화려한 성공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김영사)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겪은 4년 동안의 힘겨웠던 학창 생활과 성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전세계 수재들이 모이는 하버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물겹게 영어에 매달려야 했던 기억과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수업 방식에서 오는 좌절과 시련을 딛고 창의적인 모습으로 거듭나기 까지의 체험담을 담았다.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초코릿 폭식'을 하고, 공부에 지쳐도 '달리기'로 건강을 유지해 나가는 일상까지 그려냈다.

금나나는 과학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 '10kg 다이어트'에 성공하면서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을 권유 받았다. 지독한 참을성이 성공을 만들었듯이 하버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희망도 무너졌다. 의학 대학원 불합격 이야기 속에선 1등보다 더 귀한 승리가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을 풀어냈다.

금나나에게 '하버드'는 성공보다 값진 실패와 좌절의 참 뜻을 일깨워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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