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20분 지연ㆍ빈 객석 속출
가창력ㆍ춤으로 무대 압도

"병 주고 약 주던데요"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귈레라(27)의 공연을 관람한 이지희(31) 씨. 장당 17만6천원하는 스탠딩석을 예매했고 공연 시작이 1시간20분이나 지연돼 다리가 아파 오자 슬며시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알찬 공연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23일 오후 8시20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아귈레라의 '백 투 베이직스 투어 인 서울(Back to Basics Tour in Seoul)' 공연이 열렸다.

당초 개막 예정 시각은 오후 7시. 일본에서 이날 오후 5시께 입국해 간신히 공연장에 도착한 아귈레라가 무대에 오른 건 오후 8시20분. 리허설도 없는 무성의한 태도였다. 공연 주최 측은 일부 관중이 야유를 보내자 '미안하다'는 사과 방송을 뒤늦게 내보냈다.

오후 7시가 넘도록 스탠딩석은 3분의 2도 차지 않았다. 2층과 3층 객석은 뭉텅 뭉텅 빈 자리가 보였다. 일부 관객들은 마음에 드는 곳으로 좌석을 옮겨가며 앉았다.

"시장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고가의 티켓 값을 책정한 탓에 예매가 저조하다"고 토로했던 공연 관계자들의 우려가 사실로 나타난 셈.

관객의 짜증이 고조될 무렵 무대에 오른 아귈레라는 딱 1시간30분 동안 개세지재(蓋世之才:세상을 뒤덮을 만큼 뛰어난 재주)를 펼쳐보였다.

농도 짙은 파워풀한 가창력은 고가의 음향 기기를 통해 깨끗하게 전달됐다. 브라스 세션과 코러스, 밴드를 좌우에 배치한 채 흰색 정장을 입고 등장한 그는 '에인트 노 아더 맨(Ain't No Other Man)'을 시작으로 '컴 온 오버(Come On Over)' '오 머더(Oh Mother)' '캔디 맨(Candy Man)' '레이디 마멀레이드(Lady Marmalade)' 등 약 20곡을 열창했다.

성적 매력이 넘치는 그의 동작 하나 하나는 집중을 요구했다. 테이블에 올라가고, 회전 목마를 타고, 때론 누운 남자 댄서를 밑에 두고 춤 추는 모습은 뮤지컬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아귈레라는 현재 임신 3개월. 다소 배는 나와 보였지만 풀어헤친 금발과 붉은 립스틱, 푸른 눈화장을 한 그는 마치 바비 인형 같았다.

무엇보다 돋보인 대목은 곡과 곡 사이의 흐름이 전혀 끊기지 않았다는 점. 의상교체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핫 팬츠 위에 긴 망사 팬츠, 긴 치마를 덧대 입는 아이디어도 돋보였다.

"어메이징 투나잇!(Amazing Tonight)"을 외친 아귈레라는 "땡큐 소 머치(Thank You So Much), (한국말로)감사합니다"라며 여러 번 인사했다. 앙코르 곡으로 '뷰티풀(Beautiful)'과 '파이터(Fighter)'를 부른 후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고 두 줄로 늘어선 스태프와 손을 부딪치며 퇴장했다.

아귈레라는 관객을 울렸다가 웃게 했다. 씁쓸함이 남는 것은 늑장 공연에 대한 공연기획사의 궁색한 해명이다. "원래 팝가수들 공연은 다 늦게 시작하잖아요. 메탈리카도 그랬고…." 어설픈 준비와 지각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옥에 큰 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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