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주당으로 만든 것은 '국가'… 술 끊었더니 노래 안돼 금주 포기
양희은 '…그 쓸쓸함' 정말 슬퍼… 눈물 흘릴 듯 말 듯 불러야 더 애잔


기억 하나. 2003년초. 경기도 한 스튜디오.

8집 뮤직비디오 촬영장 한 켠에는 떡 하니 술상이 놓여 있었다. 부침개 안주에 소주.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찍고, 술상으로 다가와 한 잔 털어넣고. 스태프에게 “자, 한 잔 하면서 하자”라며 ‘취중 촬영’을 조장한다.


기억 둘. 2005년 봄. 미국 LA.

한국일보 주최 헐리우드보울 공연을 두 시간 앞두고 나타나 “나 어제 술 많이 마셨어”라며 허허 웃는다.


기억 셋. 2007년 봄. 서울 여의도 KBS신관.

2년 만의 첫 방송인 KBS 2TV 녹화에 앞서 “아직 술이 안 깼어”라며 너스레를 떤다.

누구 이야기냐고? 연예계의 소문난 주당 김건모 이야기다. 단편적인 기억만 더듬어도 그는 늘 술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최근 그와의 만남 역시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김건모의 단골 술집에서 이뤄졌다.

안재욱 차태현 이재훈 등과 자주 어울린다는, 그들의 아지트격인 소주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건모는 자리에 앉자 마자 “여기 소주부터 주세요~”라고 외치곤 “음악 먼저 들어봐! 자!”라며 넉살좋게 자신의 11집을 건넨다.

술과 친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김건모와 소주집에서의 만남이라.

잔뜩 긴장한 아줌마(이재원기자ㆍ이하 이)와 청년(김성한기자ㆍ이하 김) 앞에서 김건모는 안주거리가 나오기 전 소주부터 들이킨다.

김건모는 순진한 소년이 이웃집 아가씨의 입술을 훔쳤다는 고백만큼이나 놀라운 고백부터 풀어놨다. 학창시절에는 술을 못 마셨다나.


#소주 한 잔에 쓰러졌던 김건모, 이제 술 없인 노래 안 돼

김건모의 고등학교 후배들과 꽤나 교류가 두터웠던 청년이 먼저 분위기를 띄웠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 조용하지만 노래를 잘 해서 유명하셨다고요. 고등학교에 공연 오셨을 때 저도 놀러갔지요.”(김)

김건모는 “그럼, 그럼. 옛 생각이 나니 한 잔 해야죠”라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대학(서울예대 국악과)에 진학한 뒤 180도, 아니 그것도 모자라 360도로 변신했다.

“대학교 가니까 놀면 되더라고요. 노래만 잘 하면 모든 게 일사천리였어요. 근데 호프집에서 소주 한 잔 마시고 기절한 거에요. 오기가 나서 또 갔죠. 혼자서 연습했어요. 소주 두 잔으로 늘어난 날은 혼자 화장실 가서 토하고….”

김건모는 그렇게 독학(?)으로 주량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드디어 소주 반 병을 마실 수 있게 되던 날, 이태원의 한 포장마차에 가서 호기롭게 “소주 반병 주세요”를 외쳤다.

김건모는 당시 박학기의 기타를 들어주면서 음악의 길을 기웃거렸다. 박학기 이종만 등 선배 가수들과 서울 신촌에서 노래하며 술 마시며 그렇게 보냈다.

김건모를 본격적으로 ‘주당’으로 만들어 준 곳은 국가였다. 다름 아닌 군대였던 것. 김건모는 요즘 군대에 가지 않는 후배들을 염두에 둔 듯 “나 군대‘까지’ 갔잖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건모는 “홍보단에서 낙도 홍보 활동을 가곤 했는데, 어부 형님들이 물 대신 소주를 마시더라고요. 지금 주량? 생각보다 많진 않아요. 소주 두 병 정도일까”라고 말했다.

많든 적든 술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김건모가 지난해 술을 끊어 봤단다.

10집 앨범이 미국의 아티스트 레이 찰스에게 영감을 얻어 지나치게 음악적으로 갔던 탓인지 대중의 사랑에 목말랐다. 김건모는 ‘이번 앨범 제대로 해 보자’며 술도 끊고 심지어 담배도 손에서 놨다.

“술을 끊었더니 노래가 안 됩디다. 담배도 끊었더니 고음이 나오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리던데요. 늘 하던 대로 소주 왕창 마시고 노래 하니까 노래가 나왔어요. 계획대로 해서는 안 되는가 봐요. 공연도 잘 하고 싶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봤더니 막상 저녁에 공연 시간이 되어서는 졸려서 혼났지 뭐에요.”

김건모의 결론. ‘살던 대로, 하던 대로 살자’. 마음을 편하게 먹고 알던 사람 챙기고, 즐겁게 작업을 했다. 기본으로 돌아간 셈이다.

지난 2004년 9집 앨범을 내놓으며 방송 중단도 선언했었지만 조금 길을 돌아왔을 뿐 김건모는 지난 1992년 이후 가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 사람 울리는 김건모,나는 찰리 채플린

사실 김건모처럼 댄스 발라드 레게까지 두루 소화하는 가수도 흔치 않다.

발라드에선 애절하기 그지 없다 댄스곡에서는 개그맨 뺨친다. 혹시 까만 피부도 타고난 것인가 싶은 착각이 들 만큼 레게도 흑인처럼 소화해내곤 한다.

이번 타이틀곡 는 소주를 많이 먹고 걸죽한 소리로 부른 발라드 곡이고, 가장 자신의 이야기와 흡사하다고 생각하는 은 술을 먹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발랄하게 부른 곡이다.

김건모는 미리 준비하지 않고 녹음실에서 곡을 바로 받아 그야말로 ‘필’(feel) 꽂히는 대로 부른다. 녹음하는 날의 컨디션과 분위기에 맞는 곡으로 부르면 그만이다.

“슬픈 노래를 부를 때 눈물도 흘리나요?”(이) 김건모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김건모는 “눈물도 가끔 흘려요.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 했다.

“안 된다고요? 왜죠? 눈물을 흘린다는 건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는 뜻 아닌가요?”(이) “노래는 ‘쌩까고’ 해야 해요. 나는 눈물을 흘릴 듯 말 듯 잔잔히 노래해야 해요. 그게 더 슬퍼요. 생각해봐요. 내가 눈물을 흘려 버리면 팬은 눈물이 안 나요. 슬픔이 반감되죠.”

이 사람, 술만 좋아하는 허허실실이 아니구나 싶었다. 타고난 광대라고나 할까.

“영화배우로 치자면 찰리 채플린 같아요.”(김) 김건모는 반색을 했다. 웃으면서 찡한 감동을 주는 찰리 채플린이야말로 김건모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고 했다.

김건모가 이번 앨범 중 눈물을 흘린 곡은 양희은의 리메이크 곡이다.

김건모는 “술 먹고 한 번 불러봐요. 농담이 아니고 정말 슬퍼요. 내가 이 곡을 리메이크하자고 마음 먹었을 때는 100번도 더 불러본 뒤였지. 원곡에서 기타만 피아노로 바꾸고, 현을 넣자고 했어요. 최대한 원곡을 살려봤어요. 제일 마음에 드는 곡이에요”라고 말했다.

김건모는 소주잔을 들고 자연스레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부분을 흥얼거렸다.

김건모는 “정말 울컥한다니까. 이 부분을 울다 부른 탓에 지우고 다시 불렀어요”라고 말했다.

김건모는 이번 앨범 중 가 반응이 좋다며 즐거워했다.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이기 때문이다. 어느틈에 아지트에 들어와 김건모 옆에 와 있던 안재욱은 와 이 좋다고 거든다.

김건모가 “요즘 가 여성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니까”라고 하니 안재욱은 “ 라고? 하하”라며 제목을 즉석에서 바꾸더니 티격태격 농담을 건넨다

김건모는 당초 으로 지으려다 어머니의 충고에 따라 로 바꾼 마지막 트랙의 곡이 자신의 이야기같다고 했다.

‘불이 켜진 무대에 서면 내 모습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도/날 바라보며 웃는 사람들 속에 때론 눈물 감추며 살았지/사랑에 들뜬 널 축하하고 이별에 아픈 널 위로했지/언젠간 나를 잊어버릴 사람들 속에 그렇게 많은 날을 보냈어’

“11집이라는 숫자가 한 바퀴 돌아 1집이라는 의미 같아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김) “계획?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 그냥 술이나 마시고 아는 사람이나 챙기고…. 허허.”

김건모는 안재욱과 새로운 술잔을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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