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을 높여라] 사회비판보단 일상 주목…김진표의 랩 비중 높아져

새로 산 운동화 밑바닥에 쫙 달라붙어버린 껌, 손아귀서 놓쳐 바닥으로 다이빙한 날계란, 정성 들여 깎다가 돌연 부러진 연필심….

일상에서 부딪치는 난감한 ‘시추에이션’들이다.

7년 만에 재결합한 패닉(이적, 김진표)이 내놓은 새 앨범의 재킷 속지에는 일상에서 묻어나오는 ‘패닉’들이 오래된 사진처럼 나열돼 있다.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의 가벼운 패닉 모음집이다. 그들이 4집 ‘패닉04’에서 선보인 노래들 역시, 우리의 일상을 주목한다.

지난 95년 패닉은 1집 ‘왼손잡이’나 ‘달팽이’에서 사회 소외 계층을 빗댄 비판적인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7년 만에 돌아온 이번 앨범에서 그들은 사회가 아닌 자신들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다.

패닉의 김진표는 “패닉이 항상 사회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중요한 것은 2005년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적 또한 “지금까지 메타포(은유)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왔다. 이제는 ‘당신네, 그렇게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지 않다.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쯤에서 왜 그들이 4집의 타이틀 곡을 ‘로시난테’로 정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풍차를 향해 거침 없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늙은 애마처럼, 그들은 여전히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그들만의 행진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이다.

패닉은 이번 앨범에서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가장 ‘패닉’스러운 음악을 들려준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에 맞춘 발라드 곡부터, 록과 힙합, 포크를 넘나드는 장르가 시종일관 뒤통수를 친다. 초창기 이적의 보컬에 상당한 비중이 실렸다면, 이번 앨범은 래퍼 김진표의 비중이 한층 커져 색다른 재미를 준다.

'나선계단’과 ‘종이나비’ 같은 수록곡은 애초부터 김진표의 랩이 곡 전체를 리드하도록 염두에 두고 작곡한 곡들이다. 나직이 감정의 고저를 조율하는 김진표의 능수능란한 랩은 결혼 후 더욱 성숙해진 그의 삶을 엿보게도 한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타이틀 곡 ‘로시난테’는 패닉 특유의 철학적인 노랫말이 뇌리에 남는다.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서 달려보자/ 언제고 떨쳐 낼 수 없는 꿈이라면 쏟아지는 폭풍을 거슬러 달리자/ 휘날리는 갈기 날개가 되도록’이란 가사가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온 몸을 소름돋게 만든다.

이적은 “특이한 삼박자 곡으로, 일반 가요와 느낌이 다르다. 패닉 음악 같은, 패닉밖에 할 수 없는 음악이라 ‘눈녹듯’이란 수록곡에서 ‘로시난테’로 타이틀 곡을 바꿔 정했다”고 설명했다.

패닉의 4집은 사계절을 연상시킨다. 파릇파릇한 싹이 돋는 화창한 봄날의 설렘과 평온, 겨울 거친 눈보라를 맞는 불안과 격정까지 한 번에 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패닉이 7년 만에 선사한 4집은 하지만, 뒤돌아보면 금세 지나간 일년처럼 11트랙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게 아쉬움이다.

“음악을 음악으로 듣기보다 액세서리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다. 이제 몇 년 후면 사라질지도 모를 앨범을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이적의 말은 패닉의 새 앨범에 대한 그저 막연한 반가움 외에 씁쓸한 여운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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