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샤킬 오닐의 코트 위 지배력은 엄청났다. 커다란 덩치에다 그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 여기에다 부드러운 골밑 슈팅 터치까지 더해져 좀처럼 막기 힘든 센터였다.

이런 오닐의 위력에 힘입어 LA 레이커스는 1999~00시즌부터 2001~02시즌까지 3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 세 번의 우승 때마다 NBA 파이널 MVP 트로피는 오닐의 차지였다. 파이널뿐만 아니라 당시 플레이오프 전체를 아울러 지배적인 모습과 기록을 동시에 남겼다.

이런 오닐에게 가장 강력했던 성과의 시리즈는 언제였을까. 아무래도 가장 일방적인 승부를 가진 시리즈가 가장 먼저 꼽힐 만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4연승 스윕으로 뉴지지 넷츠를 돌려보낸 2001~02시즌 파이널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오닐은 평균 36.3득점 12.3리바운드 3.8어시스트 2.8블록을 기록했다.

다만 개인 기록 측면에서, 그리고 전면에 나서 활동한 정도를 보자면 본인의 생애 첫 우승을 맞이한 1999~00시즌 NBA 파이널을 꼽을 만하다. 4승2패를 통해 승리한 이 시리즈에서 오닐은 평균 38득점 16.7리바운드 2.3어시스트 2.7블록을 기록했다.

본인의 첫 우승이자 파이널 MVP 영예를 누린 1999~00시즌 파이널에서 오닐은 지배적인 센터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AFPBBNews = News1
생후 28년93일째에 1차전을 맞이한 이 파이널 시리즈에서 오닐이 이렇게 크나큰 기록을 쌓을 수 있던 이유들이 있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친 시즌이기도 했고 오닐이 가장 전면에서 나서야 했던 시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999~00시즌의 오닐에겐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까.

▶생애 유일의 MVP 시즌

본인을 가리켜 역대 가장 지배적인(Most Dominant Ever)이란 뜻의 ‘MDE’란 별칭을 만들기도 했고 훗날 타인들로부터 제법 수긍을 받을 만큼 지배적인 위력을 보여줬던 오닐이지만 시즌 MVP는 한 번만 차지해 봤다. 1999~00시즌이다.

사실 오닐의 시즌 기록은 이미 2년차부터 대단한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1993~94시즌에 평균 29.3득점 13.2리바운드 2.4어시스트 2.9블록을 기록해 올NBA 써드 팀 센터로서 선정됐다.

그리고 큰 변동이 없는 기록이 이어지다 8년차 1999~00시즌 평균 29.7득점 13.6리바운드 3.8어시스트 3블록을 기록했다. 젊은 시절 시즌별로 소폭의 차이이긴 했지만 커리어 중 가장 높은 득점을 올린 시즌이 이때다.

오닐 개인 커리어에 있어 이 1999~00시즌의 의미라면 커리어 중 가장 많은 경기 당 40분을 뛴 시즌이었다. 3경기 결장이 있었기 때문에 총 출전시간에선 3163분으로, 81경기를 뛰었던 1993~94시즌(3224분)보다 적지만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던 시즌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워낙 거대한 체격의 선수이기 때문에 20대 후반 연령 이후의 커리어 동안엔 건강 문제로 출전 경기에서 점수를 깎인 측면도 있었다. 2000~01시즌 이후 오닐은 시즌마다 8경기 이상의 제법 되는 결장을 남긴 한편 2001~02시즌부터 2003~04시즌까지는 각각 동일하게 15경기씩 결장을 남겼다.

그리고 팀 차원에서 보자면 67승15패(승률 81.7%), 리그 1위이자 구단 역사에서 69승의 1971~72시즌 다음의 2번째로 가장 좋은 성적의 시즌이었다. NBA 선수들 중에서도 216cm 신장으로 너무나 거대한 체격 조건의 그이기에 MVP 투표에서 불이익을 받는 감도 있지만 1999~00시즌에선 너무나 돋보였다.

▶가장 왕성했던 플레이오프 시즌

정규 시즌뿐만 아니라 플레이오프에서도 오닐의 활동은 1999~00시즌에 가장 돋보였다. 플레이오프 전체 23경기 동안 평균 43.5분을 뛰며 30.7득점 15.4리바운드 3.1어시스트 2.4블록을 기록했다.

2005~06시즌과 더불어 커리어 중 가장 많은 23경기를 치렀고 단연 가장 많은 평균 43.5분 출전을 기록하면서 오닐은 팀의 확실한 구심점으로서 위치했다. 동료 코비 브라이언트가 스타로서 발돋움하는 시기였지만 아직 4년차의 어린 선수였고 빅맨이란 역할에 있어서도 자신 외에 큰 위력의 지닌 동료가 없었다.

같은 서부 컨퍼런스 팀들을 상대한 앞선 세 라운드 동안 오닐은 평균 42.7분 동안 28.2득점 15리바운드 3.4어시스트 2.3블록을 기록했다. 1라운드 1차전의 46득점은 오닐의 플레이오프 커리어 중 1996~97시즌 1라운드 1차전과 공동으로 가장 높은 경기 기록이다.

오닐의 플레이오프 커리어에서 40득점 이상 경기는 총 12경기였고 1999~00시즌에서만 5경기로 가장 많았다. 그 중 세 번이 NBA 파이널에서 나왔다.

정규 시즌에서도 오닐의 커리어 최고 득점은 1999~00시즌 3월 LA 클리퍼스전에서 올린 61득점이었다. 커리어 유일의 60득점 이상 경기이기도 했다. 커리어 40득점 이상의 49경기 중 1999~00시즌에 9경기가 나왔다.

2인 이상의 협력 수비를 기본으로 달고 다니던 오닐이었기 때문에 레이커스 전체 공격력에 큰 플러스가 됐다. ⓒAFPBBNews = News1
▶주변 돌발 변수 상황에서도 꾸준히 위력적이었던 파이널

1999~00시즌 NBA 파이널에서 레이커스가 상대한 팀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였다. 1976~77시즌 NBA에 합병된 이후 처음으로 NBA 파이널에 진출한 인디애나에겐 컨퍼런스 챔피언이 된 순간 크나큰 감격을 맛봤다.

그래도 같은 시점 레이커스도 1990~91시즌 이후 9년 만에 다시 올라간 NBA 파이널이었기에 큰 감격이 왔을 것이다. 1990~91시즌 인원들 중 오직 AC 그린만이 1999~00시즌에도 남았다.

이런 인디애나를 맞이한 레이커스는 홈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며 104-87, 17점차 승리를 거뒀다. 인디애나의 에이스 레지 밀러가 3쿼터에서야 본인의 처음이자 유일한 야투를 성공시키는 등 부진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오닐은 모든 쿼터마다 레이커스의 최고 득점자로서 총 43득점을 올렸다.

그런데 2차전에서 사고가 터졌다. 브라이언트가 1쿼터 채 9분을 채우지 못한 시점에서 발목 부상으로 코트를 떠나야 했다. 동료 윙 플레이어 글렌 라이스와 가드 론 하퍼가 각자 21득점씩 올리며 지원해 111-104, 7점차로 2연승을 거뒀지만 비상상황이 닥쳤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2차전 인디애나는 오닐에게 일명 ‘핵어샤크(Hack-a-Shaq)’ 작전을 걸곤 했다. 자유투가 좋지 못한 그에게 의도적인 반칙을 가해 야투 대신 자유투를 던지도록 했다. 오닐은 2차전에서 무려 39회의 자유투를 시도했다. 이는 현재까지 드와이트 하워드와 더불어 공동으로 가장 많은 자유투 시도 횟수이며 플레이오프에선 단독 최다 기록이다.

이 중 18구(46.2%)만 성공시켰지만 4쿼터에선 16회 중 9구(56.3%)를 성공시키며 리드를 지켜냈다. 결국 오닐은 최종 40득점으로 마감하며 파이널 2경기 연속 40득점 이상을 기록했다.

3차전은 브라이언트의 결장도 생겼고 홈으로 온 인디애나의 페이스도 초반부터 워낙 좋아 레이커스에겐 흐름이 좋지 못했다. 91-100으로 패한 경기에서 오닐이 62.5% 야투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자유투는 13회 중 3구(23.1%)만 성공시키며 33득점을 올렸고 나머지 동료들도 큰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4차전엔 빠르게 복귀한 브라이언트가 51.9% 야투율로 28득점을 올리며 레이커스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오닐이 전반전부터 파울 트러블에 걸리며 지장을 입었고 연장전 중반에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닐은 47분 출전시간을 통해 36득점을 올렸고 레이커스는 브라이언트의 막판 활약에 힘입어 120-118로 승리했다.

자유투가 안 좋은 오닐이었지만 바스켓 주변에서 수비 너머로 던지는 슈팅 터치는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높은 효율의 고득점 행진을 이을 수 있었다. ⓒAFPBBNews = News1
5차전은 너무나 좋았던 인디애나와 너무나 좋지 못했던 레이커스의 만남이었다. 야투율 57.4%와 3점슛 성공률 50.0%를 기록한 인디애나는 전반전을 19점차로 앞서며 마쳤고 4쿼터에서도 압도하며 결국 레이커스는 백기를 들어야 했다. 87-120, 33점차로 패한 이 경기에서 오닐이 63.0% 야투율로 35득점을 올렸지만 나머지 동료들이 30.2% 야투율에 그쳤다.

홈으로 돌아왔지만 6차전 레이커스는 또 끌려다녔다. 1쿼터 막판 인디애나 가드 마크 잭슨의 원거리 버저비터 3점슛으로 2점차 리드를 내준 이후 계속해서 따라잡지 못했다. 오닐이 2쿼터 동안 15득점, 3쿼터 동안 7득점을 올려도 인디애나의 페이스가 레이커스를 앞섰다.

그래도 결국 4쿼터에 레이커스는 따라잡았다. 4쿼터 동안 오닐은 자유투 7회 중 1구만 성공시켰지만 야투 6개 모두 성공시키며 13득점을 올렸다. 이로써 총 41득점을 올렸고 레이커스는 116-111, 5점차로 승리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인디애나 장신 라인업 앞에서 보여준 지배력

파이널 시리즈 6경기 동안 오닐은 최소 33득점 이상의 고득점 행진을 펼치며 평균 38득점을 올렸다. 야투율은 최저가 52.0%로써 시리즈 야투율 61.1%였다. 다만 그의 자유투는 인디애나가 핵어샤크 작전을 꺼내들 마음을 가질 만했다. 38.7% 성공률이었고 1차전과 5차전엔 각각 6회 시도 중 1구(16.7%)만 성공시켰다.

오닐 앞에 주로 섰던 인디애나의 주전 센터 릭 스미츠는 오닐보다도 큰 224cm 신장이다. 하지만 힘과 유연함을 동시에 갖춘 오닐은 골밑에서 스미츠의 저항 너머로 성공시킬 수 있는 슈팅 터치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스미츠보다 먼저 유리한 지점으로 움직임일 수 있는 빠르기까지 보여주며 득점 기회를 창출할 수 있었다.

이는 211cm 신장에 강한 근력을 지닌 데일 데이비스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206cm 신장 샘 퍼킨스 상대로는 신체 우위를 제대로 살리기도 했다.

4인의 수비수가 둘러싸는 와중에도 득점을 성공시킬 수 있던 오닐의 위력은 이후 한동안 유지됐다. 그렇기 때문에 3연속 파이널 MVP 수상이 가능했다. 그래도 오닐이 보여줬던 민첩함과 역동적인 움직임은 다시 상기해볼 만한 관전 포인트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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