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리그에 큰 존재감을 드러냈던 팀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다. 2003~04시즌 NBA 파이널 우승을 시작으로 디트로이트는 이후 몇 시즌 동안 리그의 우승후보로서 고정적으로 꼽히곤 했다.

디트로이트가 약팀으로 지내오다가 갑자기 우승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2001~02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갔고 2002~03시즌에는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갔다. 상승의 경향은 있었다.

하지만 2003~04시즌 챔피언 등극은 디트로이트의 위상을 단숨에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비교적 약한 동부 컨퍼런스의 플레이오프 팀들 중 하나에서 큰 지지를 받는 우승후보로서 그 입지가 달라졌다.

심지어 이들이 2003~04시즌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이 되는 그 시기에도 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리그 1위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꺾은 디트로이트였지만 맞은편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 LA 레이커스에게 압도적인 우승 예상이 쏠렸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가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때만 해도 이들의 조직력과 수비력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인지하기 어려웠다. ⓒAFPBBNews = News1
2003~04시즌 파이널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도박 배당률 분석에서 레이커스-디트로이트는 레이커스의 4연승 스윕으로 끝난 2001~02시즌 레이커스-뉴저지 넷츠 사이의 배당률과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그만큼 레이커스는 압도적 승리 예상을 받는 팀(Favorite)이었고 디트로이트는 가능성이 낮은 팀(Underdog)의 입장에 있었다.

2003년 여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호화 라인업의 레이커스였던 데다가 디트로이트가 뚫고 올라온 그 과정들이 썩 순탄하지만은 않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컨퍼런스 전력 균형에서 서고동저의 인식이 강한 때에 충분히 나올법한 예상이었다.

그렇다면 2003~04시즌 신데렐라 우승팀이 되기 직전까지 디트로이트는 어떤 과정을 거쳤던 것일까. 혹여 NBA 파이널 자체에도 올라가지 못할 고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감독 교체와 선수단 변화

2002~03시즌 디트로이트는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갔지만 뉴저지에게 4연패 스윕을 당하며 물러나야 했다. 컨퍼런스 1번 시드로서 홈코트 우위를 가진 시리즈였지만 2번 시드 뉴저지에게 앞선 홈경기 두 번을 모두 접전 패배로 내줬다.

이런 디트로이트는 우선 2003~04시즌에 들어가기에 앞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감독으로서 부임하고 있던 래리 브라운을 감독 자리에 앉혔다. 오랜 베테랑 감독의 경력에다가 필라델피아를 2000~01시즌 NBA 파이널로 이끌었던 수장이다.

또한 2003~04시즌 시즌 선수단에 일어난 가시적 변화라면 2년차가 된 포워드 테이션 프린스가 정규 주전으로서 자리매김을 했다는 점이다. 신인으로서 40경기 출전 중 주전은 5경기에 그쳤고 평균 출전시간도 10.4분 출전에 그쳤던 프린스가 2년차에 82경기 중 80경기 선발에 평균 32.9분 출전으로 확실한 발돋움을 이뤄냈다.

그리고 2월 트레이드 데드라인 무렵 선수단에 큰 변화가 일었다. 우선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애틀란타 호크스로 트레이드됐던 파워 포워드 라쉬드 월러스를 10일 후 디트로이트가 또 3팀 트레이드를 통해 들였다.

즉 포워드 두 자리가 이전 시즌들과 확연히 달라졌다. 라쉬드 월러스는 가진 재능에 비해 코트 위의 태도 등 아쉬운 성과를 낸 올스타 출신이었는데 그때 디트로이트의 선택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프린스의 주전 승격과 월러스의 영입으로 디트로이트는 향후 몇 시즌 유지될 베스트 5를 마련하게 됐다. ⓒAFPBBNews = News1
▶외인부대

역대 NBA 우승팀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드래프트를 통해 뽑은 스타가 핵심 선수로서 성장하면서 성과를 이루곤 했다. 가장 대표적이면서 최근의 사례가 최근 5시즌 연속 NBA 파이널 진출에 3시즌 우승을 거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다.

이 외 1983~84시즌부터 현재까지 나온 우승팀들 중 단 두 팀을 제외한 모두가 플레이오프 평균 출전시간 상위 2인에 자신들이 드래프트에서 뽑은 선수를 두고 있었다. 그 두 팀들이 지난 2018~19시즌 토론토 랩터스와 2003~04시즌 디트로이트다.

2003~04시즌 플레이오프 디트로이트의 정규 주전 5인조이자 평균 출전시간 상위 5인이 벤 월러스(40.2분), 리차드 해밀턴(40.2분), 천시 빌럽스(38.3분), 라쉬드 월러스(34.9분), 프린스(34.6분)였다. 이 중 디트로이트가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는 2002년 23순위로 뽑은 프린스뿐이었다.

벤 월러스는 2000년 8월 트레이드를 통해 들어왔다. 해밀턴은 2002년 9월 트레이드를 통해 들어왔다. 빌럽스는 2002년 프리 에이전트로서 계약을 통해 들어왔다.

▶혈전 끝에 복수 성공

2003~04시즌 동안 54승28패(승률 65.9%)를 기록하며 디트로이트는 동부 컨퍼런스 2위인 한편 같은 센트럴 디비전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1위에 오르면서 3번 시드로서 플레이오프에 참여했다. 때문에 성적 3위 뉴저지는 2번 시드였지만 홈코트 우위는 디트로이트에게 갔다.

1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는 6번 시드 밀워키 벅스를 4승1패로 무난히 꺾으며 통과했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 만난 상대가 전 시즌 자신들을 스윕으로 꺾었던 뉴저지다.

직전 시즌엔 첫 홈경기 두 번을 모두 접전으로 내줬지만 이번엔 디트로이트가 여유롭게 2연승을 거뒀다. 특히 1차전 뉴저지는 56득점에 묶였다. 주전 5인 모두 야투율 38.5% 이하에 그친 부진을 보였다.

대신 뉴저지는 홈으로 돌아간 3차전부터 3연승을 이뤘다. 이번엔 디트로이트가 3차전 64득점, 4차전 79득점의 득점 가뭄에 시달렸다. 그리고 디트로이트 홈에서 치른 5차전이 3차 연장전까지 가며 120-127로 디트로이트가 패했다.

이렇게 보면 디트로이트 쪽의 타격이 클 법하다. 하지만 63분 경기를 치른 타격은 디트로이트보다 뉴저지 쪽에 더 간 모양이다. 6차전 홈의 뉴저지는 39.7% 야투율의 75득점에 묶였고 7차전 원정에서는 35.8% 야투율의 69득점에 그쳤다. 주전 포인트 가드이자 올NBA 퍼스트 팀 가드 제이슨 키드는 7차전 8개 야투 모두 실패하며 0득점에 그쳤다.

2승2패 동률에서 5차전을, 그것도 3차 연장전을 패했음에도 끝내 7차전에서 승리하면서 디트로이트는 당시 최고의 고비를 넘긴 셈이다. 만약 6차전 또는 7차전에서 패했더라면 역대 최고의 신데렐라 팀 논의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파이널 MVP 트로피는 빌럽스에게 갔지만 플레이오프 동안 디트로이트 에이스는 23경기 평균 21.5득점 4.2어시스트의 해밀턴이었다. ⓒAFPBBNews = News1
▶리그 1위 팀의 화력도 디트로이트 앞에서 식다

2003~04시즌 인디애나는 61승21패(승률 74.4%)를 통해 리그 1위에 올랐다. NBA닷컴에 따르면 100포제션 당 106.5득점 및 97.8실점으로 공수 양 지표 모두 동시에 4위에 오른 훌륭한 공수 균형을 보여줬다.

현재 메타 월드 피스로 개명한 론 아테스트가 올해의 수비수에 뽑힌 한편 올NBA 써드 팀에도 선정됐었고 빅맨 저메인 오닐은 올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인디애나는 컨퍼런스 파이널 시리즈 직전 보다 많은 승리 예상을 받았지만 결과는 2승만 거두며 물러났다. 6경기 동안 인디애나가 가장 많이 올렸던 경기 득점이 4차전의 83득점이었을 정도로 득점에 곤욕을 치렀다.

디트로이트가 평균 75.2득점, 인디애나가 72.7득점이었다. 서로 페이스가 느리기도 했지만 포제션 당 득점력도 큰 하락을 봤다. 시리즈 동안 인디애나는 100포제션 당 85.5득점에 그쳤다.

역대 우승팀들은 대개 공격 및 수비 양 진영에서 훌륭한 균형을 시즌 동안 보여줬었다. 수비가 승리를 이끈다는 격언도 있지만 공격력도 리그 상위권에 들어야 우승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뜻이다.

리그가 29개 팀으로 늘어난 1994~95시즌 이후 우승팀들 중 시즌 공격지표 리그 10위 안에, 즉 상위 3분의1 안에 들지 못했던 팀은 2003~04시즌 디트로이트가 유일하다. 100포제션 당 100.3득점으로 리그 19위로 마감했다. 월러스 가세 이후의 기간만 따져도 26경기 동안 100포제션 당 101.7득점으로 16위였다.

이런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상대방을 꺾은 힘은 엄청난 수비력이었다. 공교롭게도 2001~02시즌부터 2005~06시즌까지 2003~04시즌만 제외하고 4시즌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됐던 벤 월러스를 필두로 디트로이트는 상대방의 지난 공격성과를 무시하는 수비력을 보여줬다.

디트로이트는 2003~04시즌 플레이오프 동안 100포제션 당 97.7득점으로 전체 참가 16개 팀들 중 8위의 공격지표를 기록했다. 즉 플레이오프에서도 공격성과가 딱히 상승한 것이 아니다. 대신 100포제션 당 90.3실점으로 단연 가장 좋은 수비 성과를 남겼다.

디트로이트는 1라운드에서 100포제션 당 94.5실점을, 2라운드에서 90.0실점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85.5실점을, 그리고 NBA 파이널에선 91.9실점을 기록했다. 이런 강력한 수비력이 디트로이트가 2003~04시즌 플레이오프 동안 가장 돋보이도록 만든 힘이었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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