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역사에서 가장 파이널이 늦게 끝난 시즌, 바로 20년 전 1998~99시즌이었다. 직장폐쇄로 말미암아 시즌도 늦게 시작했고 경기 일정도 늦게 끝났다.

그 독특했던 시기에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뜻깊은 구단 첫 우승을 이룩했다. 바로 20년 전 오늘, 1999년 6월26일(이하 한국시각) 샌안토니오가 뉴욕 닉스 상대로 4승1패를 통해 NBA 파이널 우승을 결정지은 날이다.

현재까지 샌안토니오는 2013~14시즌을 마지막으로 5시즌 우승을 이룩했다. 1997~98시즌부터 올시즌까지 2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룩하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즉 리그의 강팀으로서 떠오른 샌안토니오가 뚜렷한 강팀으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시기가 되기도 했다.

이와 한편으로 팀 던컨의 전설이 시작되기도 한 계기였다. 현재까지 샌안토니오 구단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로서 남은 던컨은 불과 2년차로서 1998~99시즌 우승의 주역이었고 팀의 5시즌 우승 모두에 참여했다.

이에 당시 상황과 배경을 바탕으로 1998~99시즌 NBA 파이널을 돌아보고자 한다.

10년차 데이비드 로빈슨의 경험과 2년차 던컨의 위력이 합쳐지면서 샌안토니오는 5시즌 우승의 시작을 열었다. ⓒAFPBBNews = News1
▶단축 시즌

1998~99시즌은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1999시즌이 맞다. 구단주 그룹과 선수단 그룹의 협상 결렬로 인해 직장폐쇄가 일어났고 1999년 2월초가 돼서야 모든 일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또 한 번의 단축시즌인 2011~12시즌은 2011년 크리스마스부터 시작됐다.

때문에 모든 팀에게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 부여됐다. 백투백(back-to-back) 경기, 2일 연속 일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3일 연속 일정도 배정되곤 했다.

그리고 이 시즌에 일어난 독특한 현상으로 시즌 중에 아예 한 번도 맞닥뜨리지 않은 팀들도 있었다. 82경기 시즌의 경우 반대 컨퍼런스 팀끼리는 홈과 원정을 오가며 2경기 맞붙는다. 하지만 이 시즌 NBA 파이널의 주인공인 샌안토니오와 뉴욕은 시즌 동안 한 번도 대결한 적이 없다.

시즌 중 샌안토니오가 상대한 동부 컨퍼런스 팀은 6팀, 뉴욕이 상대한 서부 컨퍼런스 팀은 5팀뿐이었다. 당시 동부에 15개 팀, 서부에 14개 팀이 있던 시절에서 반대 컨퍼런스 팀과 맞붙는 기회가 꽤나 적었다.

이렇게 생략되고 압축된 시즌을 치렀지만 결국 늦게 시작한 만큼 플레이오프도 늦게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4월 중순에 시작하는 1라운드지만 이때는 5월 9일이 돼서야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6월17일에 시작한 NBA 파이널 시리즈는 만약 7차전까지 갔더라면 6월 30일에야 끝이 나는 일정이었다.

▶슬로우 스타터 샌안토니오

현재 샌안토니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1996~97시즌 중간 3승15패 후 떠난 밥 힐 감독의 뒤를 이어 계속해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이로써 NBA는 물론 북미 4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한 팀에서 오래 부임한 감독으로서 기록을 쌓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98~99시즌이 그의 위기라면 위기였다. 14번째 경기까지 6승8패에 그친 상황에서 감독 경질설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에서 나온 것이 9연승이었고 시즌 15번째 경기부터 마지막 50번째 경기까지 샌안토니오는 31승5패의 큰 약진을 거뒀다.

결국 29개 팀 모두 각자 50경기를 치른 시즌에서 샌안토니오는 37승13패(승률 74.0%)로 유타 재즈와 함께 리그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유타에 상대전적 2승1패로 앞서며 플레이오프 1번 시드를 획득했다.

한편 뉴욕은 아슬아슬하게 8번 시드 막차에 올랐다. 동부 8위 뉴욕과 9위 샬럿 호넷츠 사이엔 1경기차만 났다. 팀의 기둥이자 스타들인 패트릭 유잉과 라트렐 스프리웰이 각자 12경기 및 13경기 결장을 거쳤다.

당시 뉴욕의 제프 밴 건디 감독은 현재 ESPN 중계의 간판 해설자로서 활동 중인 반면 포포비치 감독은 계속해서 샌안토니오의 지휘관을 맡고 있다. ⓒAFPBBNews = News1
▶플레이오프 진군 과정의 차이가 컸던 두 팀

샌안토니오는 1번 시드로서 서부 컨퍼런스 세 라운드를 꽤 순탄하게 통과했다. 당시 5전3선승제였던 1라운드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상대해 3승1패로 통과하고 이후 2라운드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각각 4연승 스윕으로 통과했다.

당시 2라운드 상대 팀 LA 레이커스는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샌안토니오를 2시즌 연속 가로 막기도 했지만 아직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를 비롯해 팀으로서 파괴력이 크지 않았다.

한편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상대한 지구결승에서는 2차전이 결정적이었다. 홈에서 치른 2차전 동안 샌안토니오는 줄곧 뒤져 있었다. 그리고 83-85로 뒤져 있던 마지막 공격 때 볼을 받은 션 엘리엇이 가까스로 바깥 라인을 밟지 않으면서 3점슛을 성공시켜 결승득점을 올렸다.

반면 8번 시드로서 시작한 뉴욕에겐 모든 시리즈를 원정에서 시작하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럼에도 1라운드에서 1번 시드 마이애미 히트를 5차전 끝에 잡아내는 쾌거를 이루며 탄력을 받았다. 8번 시드의 1번 시드 상대 승리는 당시까지 NBA 역사에서 2번째였다.

앨런 휴스턴의 슈팅이 림을 두 번 튕기며 들어가 1라운드를 통과한 뉴욕은 2라운드에서 애틀란타 호크스 상대로 4연승 스윕을 거뒀지만 지구결승에서 그간의 숙적 인디애나 페이서스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렀다.

8번 시드의 NBA 파이널 진출 자체는 현재까지도 역사에서 단 한 번만 일어난 경사였다. 하지만 출혈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주전 센터 유잉이 컨퍼런스 파이널 2차전 부상 이후 전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또한 동료 빅맨 래리 존슨도 부상의 영향으로 컨디션이 매우 좋지 못했다.

▶저득점의 NBA 파이널 시리즈

1998~99시즌 NBA 파이널 시리즈에서 100득점을 넘겨 본 팀은 없었다. 최고 득점이 4차전 승리 팀 샌안토니오의 96득점이었다. 최저는 2차전 패배 팀 뉴욕의 67득점이었다. 이 이후로 어느 팀도 100득점을 넘긴 경기를 가지지 못했던 NBA 파이널 시리즈는 없다.

샌안토니오가 평균 84.8득점, 뉴욕이 79.8득점으로 끝난 이 시리즈는 낮은 득점 양상으로 인해 재미없는 시리즈로도 인식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수비 농구를 즐기는 팬들에겐 재미있게 다가올 수도 있었다.

양 팀 모두에게 쉬운 골밑 득점은 나오기 힘들었다. 때문에 다소 불안한 슈팅 선택지가 종종 나오곤 했다. ⓒAFPBBNews = News1
비교적 느린 페이스이기도 했지만 양 팀의 공격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했다. 던컨과 데이비드 로빈슨의 트윈 타워가 버티는 샌안토니오, 그리고 유잉을 대신해 수비에서 힘을 보여준 마커스 캠비와 커트 토마스의 뉴욕은 서로에게 골밑 득점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경기들은 레이업과 덩크 대신 근거리 이상의 점프슛 위주로 흘러간 양상이었다. 샌안토니오의 44.5% 야투율도 높은 것이 아니었지만 뉴욕의 39.2% 야투율은 정말 낮은 편이었다.

이런 양상에서 빛을 발한 선수가 파이널 MVP 던컨이었다. 시리즈 평균 27.4득점 14리바운드 2.4어시스트 1스틸 2.2블록을 기록한 던컨은 어린 나이에도 공수 양 진영에서 팀의 중심축을 맡아줬다.

공격에서 간결하고도 정확한 골밑 움직임에 더해 외곽 아이솔레이션 상태에서 백보드에 굴절시켜 성공시키는 뱅크슛의 정확도까지 더해져 던컨은 가장 듬직한 득점원이 됐다. 당시 그의 53.7% 야투율은 시리즈 동안 총 10회 이상의 야투 시도를 가진 선수들 중 가장 높았다.

▶젊은 스타와 베테랑들의 조화를 이룬 우승 1기 멤버들

샌안토니오의 5회 우승 중 뒤쪽의 4회 우승에는 모두 던컨-토니 파커-마누 지노빌리라는 빅3 조합의 활약이 있었다. 이에 비해 첫 우승에는 던컨-로빈슨이라는 트윈 타워의 힘이 컸다.

그리고 모두가 첫 우승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 슈팅 가드 마리오 엘리는 커리어 3번째 우승을 자축했다. 1993~94시즌 및 1994~95시즌 휴스턴의 2연속 우승 당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현재 샌안토니오 지역 방송 해설자로서 활약 중인 당시 10년차 포워드 엘리엇과 11년차 포인트 가드 에이브리 존슨도 베테랑의 안정성을 더해줬다. 특히 존슨은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는 가운데 기회가 왔을 때는 정확한 슈팅 마무리로 50%의 야투율을 기록했다.

이후 샌안토니오의 플레이오프는 썩 순탄치 못했다. 1999~00시즌에는 던컨이 부상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해 1라운드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이후 2시즌 동안에는 레이커스에게 막혔다. 신장 이식 수술까지 받으며 일찍 은퇴한 엘리엇 포함 백코트의 위력에서 아쉬움을 가졌다.

즉 1998~99시즌 샌안토니오의 우승 멤버들은 나름의 이상적인 궁합을 보여줬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평균 출전시간 상위 7인 모두가 17경기 동안 한 번의 결장 없이 뛴 건강의 복도 누렸다. 생후 23년61일 시점 파이널 MVP에 오른 던컨의 위력이 결정적이었지만 그만큼 팀의 완성도도 있었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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