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공식 입성하는 행사가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각) 열렸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에 위치한 명예의 전당 건물에서 2000년대 NBA 스타들인 그랜트 힐,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쉬, 레이 앨런을 포함 여러 농구 전설들이 영광스런 입성 소감을 전했다.
농구 선수로서 은퇴한 지 4년을 다 채운 뒤에 선정 대상 자격이 생기는 명예의 전당은 NBA 선수들에게 크나큰 의미가 있는 영예다. 그리고 이런 시기의 자격 조건을 넘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 위해선 큰 업적을 남긴 농구 커리어가 있어야 한다.
이런 자격 측면에서 여전히 애매한 위치에 있는 선수들이 있다. NBA에서 한때 큰 이름을 날렸지만 커리어 전체의 측면에서 봤을 때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보이는 경우다.
이런 이유로 인해 2011~12시즌 후 은퇴했지만 4시즌 올해의 수비수 경력을 가진 벤 월러스의 이름이 아직 불리지 않고 있는 듯하다. 올해의 수비수 4시즌 선정은 NBA 역사에서 디켐베 무톰보와 함께 가장 많은 횟수를 자랑한다.
2003~04시즌 NBA 파이널에서 스타들로 가득했던 LA 레이커스를 꺾으며 깜짝 우승을 거뒀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서 가장 많은 출전시간을 기록했던 선수가 월러스였다. 4시즌의 올스타와 5시즌의 올NBA 팀 선정 경력도 있다.하지만 크게 빛났던 시기를 제외하고 보면 월러스의 경력은 그렇게 빛나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공격 진영 쪽 숫자는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경력을 보낸 월러스에게 명예의 전당은 정말 먼 거리에 있는 것일까. 월러스가 갖고 있는 자격의 근거들과 그에 맞서는 근거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동일한 4시즌 올해의 수비수 무톰보와의 비교
2008~09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무톰보는 2015년에 명예의 전당 일원이 됐다. 당시 기준에선 선정 대상 자격이 생긴 첫 해에 선정됐다.
무톰보는 농구 코트 밖에서도 NBA의 좋은 이미지를 널리 전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NBA 경력 동안 남긴 숫자 자체도 충분한 선정 근거로 작용했다.
NBA 통계분석 사이트 바스켓볼 레퍼런스에는 각 선수들마다 명예의 전당 입성 확률이 나와 있다. NBA 농구 기록지에 남긴 숫자를 통해 선정 가능성을 보는 측정치다.
여기에서 무톰보는 96.9%, 거의 확실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즉 2015년 명예의 전당 선정 발표에서 무톰보는 놀랄 대상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월러스는 45.3%다. 될 가능성보다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톰보와 월러스의 기록은 이렇게 많이 차이 났을까. 무톰보도 공격 진영에서 빛났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월러스보다 앞섰다.
무톰보는 18시즌 1196경기 커리어 동안 평균 30.8분 출전 51.8% 야투율, 9.8득점 10.3리바운드 1어시스트 0.4스틸 2.8블록을 남겼다. 이에 비해 월러스는 16시즌 1088경기 커리어 동안 평균 29.5분 출전 47.4% 야투율, 5.7득점 9.6리바운드 1.3어시스트 1.3스틸 2블록을 남겼다.
두 선수 모두 리그 최고의 리바운더이자 블로커로서 이름을 날린 때가 있었지만 여기에서 무톰보는 더 높은 숫자를 기록했다. 역대 통산 리바운드 순위에서 무톰보는 20위(1만2359리바운드), 월러스는 33위(1만482리바운드)에 올라 있다. 역대 통산 블록 순위에서는 무톰보가 2위(3289블록), 월러스가 13위(1369블록)다.
▶월러스를 지지해주는 근거, 강력한 수비 성과
206cm 신장, NBA 센터로서 작은 축에 드는 공식 신장에다가 실제 월러스의 신장은 201cm 근처라는 소견도 많다. 이런 월러스는 상대방 장신 센터와 서 있을 때 큰 신장 차를 보이곤 했다.
그럼에도 엄청난 근력을 자랑했고 널찍하게 벌어진 체격을 통해 훌륭한 자리싸움을 벌일 수 있었다. 그리고 폭발적인 도약력과 타이밍을 통해 많은 리바운드와 블록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누구 못지않은 투쟁심이 뒷받침됐다.
공수 교체 횟수가 최근과 비슷해지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평균 15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해본 선수는 7명뿐이다. 이 중 한 명이 2002~03시즌 평균 15.4리바운드를 기록한 월러스였다. 2001~02시즌과 2002~03시즌에는 각각 평균 13리바운드와 15.4리바운드로 리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2001~02시즌부터 2003~04시즌까지 3시즌 연속 평균 3블록 이상을 기록했으며 2001~02시즌에는 커리어 최고 평균 3.5블록으로 리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7시즌에 걸쳐 평균 블록 리그 상위 10인 안에 들었다.
그리고 전성기를 보낸 팀 디트로이트가 월러스를 들이고 난 뒤 거둔 수비 실적이 있다. NBA닷컴에 따르면 월러스가 오기 직전 1999~00시즌 디트로이트는 100포제션 당 103.1실점으로 리그 20위의 수비지표로 마감했다. 그 후 월러스가 평균 34.5분 동안 뛴 2000~01시즌에는 수비지표 리그 8위(98.9)로 뛰어올랐다.2000~01시즌부터 2007~08시즌까지 월러스가 평균 30분 이상 뛰었던 팀들은 리그 10위 안의 수비지표를 남겼다. 이 동안 월러스는 명시적인 영예들을 남겼다.
우선 2001~02시즌과 2002~03시즌, 2004~05시즌과 2005~06시즌에 걸쳐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됐다. 그리고 2001~02시즌부터 2005~06시즌까지 5시즌 연속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2006~07시즌 세컨드 팀에 선정됐다. 이때마다 수비 성과의 힘을 받아 올NBA 팀에도 동시에 선정됐다.
▶맞서는 근거들, 빈약한 득점력과 늦게 떠오른 활용도
2014년 한 매체에서는 현대 농구 최악의 NBA 공격수 20인 중 한 명으로서 월러스를 꼽았다. 그만큼 월러스는 NBA 선수로서 빈약 공격 소질을 보여줬다.
팀의 공격 전개 중 골밑에서 발생하는 좋은 기회만이 월러스에게 적합한 기회였다. 그 외엔 월러스로부터 득점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월러스의 야투 시도 중 절대다수가 5피트(약 1.5m) 안쪽에서 나왔다. 수비 진영에선 장신들을 너끈히 상대했지만 공격 진영에선 극복하지 못했다.
커리어 평균 5.7득점의 월러스에게 최고 시즌은 9.7득점의 2004~05시즌이었다. 36분 당 기준에서도 최고가 2004~05시즌의 9.7득점이었고 최저가 마지막 2011~12시즌의 3.1득점이었다. 실제 평균 15.8분을 뛴 2011~12시즌 월러스는 1.4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드래프트를 받지 못한 월러스는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평균 20분 이상 출전을 기록한 것이 3년차 1998~99시즌부터였다. 81경기 모두 주전으로서 출전한 1999~00시즌 전까지는 벤치 출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개인으로서는 약했던 20000년대 중반 디트로이트 5인조
1999~00시즌이 끝나고 당대 최고의 인기 선수들 중 한 명인 그랜트 힐이 프리 에이전트로서 올랜도 매직을 택했을 때 디트로이트는 어쩔 수 없이 계약 후 트레이드로 넘겼다. 이때 올랜도에서 넘어온 두 선수들 중 한 명이 월러스였다.
이후 디트로이트는 여러 선수 이동을 거치면서 리그의 강호로서 올라섰다. 2002~03시즌부터 2007~08시즌까지는 적어도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갔다. 2003~04시즌에는 우승, 2004~05시즌에는 NBA 파이널 7차전 끝에 물러났다.
이 당시 팀의 주전 5인조는 팀으로서 큰 매력을 발산했다. 심지어 2005~06시즌에는 디트로이트에서 4명이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그 디트로이트 주전 5인조에 대한 명예의 전당 소식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저마다 개인적으로 전체적인 커리어가 문턱을 넘기엔 애매하기 때문이다.
월러스가 딱 그렇다. 디트로이트에서 활약했던 때를 제외하면 돋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월러스는 올해의 수비수 트로피 4개를 가지고 있어도 명예의 전당 입성에는 큰 기대를 걸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래도 힘이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줬던 월러스의 모습은 계속해서 명예의 전당 선정을 두고 꾸준히 회자될 것이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