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와 프랑스 리그를 거친 보리스 디아우가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각) 농구에서 은퇴하겠다는 발표를 전했다.

본인의 SNS를 통해 올린 동영상에서 디아우는 프랑스 국가대표 동료로서 같이 보낸 NBA 선수들인 토니 파커 및 로니 튜리아프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에서 그간 보낸 농구 인생에 대한 추억과 소감을 말했다.

1982년생 디아우는 2003~04시즌부터 2016~17시즌까지 14시즌을 NBA에서 보냈고 지난 2017~18시즌은 프랑스의 프로 팀에서 보냈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프랑스를 대표하기도 했다.

농구 선수로서 NBA 선수로서 디아우가 보여준 농구는 정말 묘했다. 203cm, 전형적인 포워드의 신장을 지녔지만 그의 포지션을 딱 집어 말하기란 정말 애매하다. 가드처럼 때로는 센터처럼도 플레이했기 때문이다. 즉 가드, 포워드, 센터 모두 디아우의 플레이 안에 담겨 있었다.

이런 다양한 포지션 소화와 더불어 디아우는 편광판 같은 선수였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확연이 달라지는 편광판처럼 디아우 플레이의 성과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크게 갈렸다.

피닉스에서의 디아우는 재드래프트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일순간 큰 인지도 변화를 거쳤다. ⓒAFPBBNews = News1
결정적으로 디아우의 농구가 묘했던 것은 농구 기록지로는 이 선수를 평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아무리 경기 장면 동안 핵심 조각으로서 임했음에도 기록지에 남긴 숫자는 썩 돋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디아우의 농구를 14시즌 NBA 커리어를 통해 돌아보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 국가대표 센터의 아들

디아우는 높이뛰기 선수 아버지, 농구선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각 종목에서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는 프랑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센터로서 디아우는 어머니에 대한 존경을 크게 드러냈다.

이런 부모님의 운동 재능을 물려받은 디아우는 첫 프로 커리어를 프랑스 리그의 팀에서 보냈고 올스타전에도 나가고 슬램덩크 대회에도 나가는 스타가 됐다. 그리고 2003년 NBA 드래프트에 참여해 애틀랜타 호크스에 의해 전체 21순위로 호명됐다.

하지만 첫 소속팀 애틀랜타에서 디아우는 별다른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주로 벤치에서 출전했던 디아우는 오히려 1년차보다 2년차에 출전시간 포함 모든 기록이 떨어졌다.

▶디아우의 재능을 써먹을 줄 알았던 피닉스

애틀랜타에서 장신 슈팅 가드로서 임했던 디아우는 사실 날카로운 외곽 슈팅 능력을 지닌 선수는 아니었다. 자신이 나서기 보다는 주위 동료들의 움직임을 한껏 살려주는 데에 장기가 있었다.

그리고 수비 진영에서 디아우는 확실히 가드보다는 포워드 이상의 선수들을 맡는 것이 어울리는 신체를 지녔다. 심지어 센터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자리싸움을 보여줬다.

2005년 여름 트레이드로 디아우를 들인 피닉스는 이런 디아우의 능력을 제대로 써먹었다. 2005~06시즌은 팀의 센터로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부상으로 단 3경기만 출전했던 때여서 더욱 디아우의 존재는 크게 빛났다.

2004~05시즌 평균 36.1분 출전하며 26득점을 올렸던 스타더마이어가 나오질 못했음에도 2005~06시즌 피닉스는 54승28패(승률 65.9%)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스티브 내쉬라는 명예의 전당 포인트 가드의 지휘 때문이기도 했지만 평균 35.5분 동안 보조 지휘자로서 나선 디아우의 기여도 컸다.

2004~05시즌 2년차 디아우는 평균 18.2분 출전 42.2% 야투율 4.8득점 2.6리바운드 2.3어시스트 0.6스틸 0.3블록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2005~06시즌에는 평균 35.5분 출전 52.6% 야투율 13.3득점 6.9리바운드 6.2어시스트 0.7스틸 1블록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디아우는 해당 시즌 기량발전상을 수상했다. 이런 기량발전상을 넘어 그 시기의 디아우는 NBA의 깜짝 발견이었다. 농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디아우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비 진영에서의 능력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특히 111-93으로 대승했던 1월 마이애미 히트 상대 홈경기는 수비에서 샤킬 오닐이란 거대 센터도 맡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05~06시즌 60.0% 야투율 평균 20득점으로 마감했던 오닐은 해당 경기에서 2개의 야투만 성공시키며 8득점에 그쳤다. 피닉스 센터 커트 토마스의 기여도 컸지만 디아우도 오닐 상대로 잘 버텨냈다.

2014년 농구 월드컵에서 디아우의 프랑스는 동메달이라는 깜짝 성과를 이룩했다. ⓒAFPBBNews = News1
▶또 다시 암흑기를 거치다 맞이한 빛나는 시즌

이렇게 피닉스에서 기량을 꽃피우며 3시즌 반을 보내다가 디아우는 2007~08시즌 12월에 샬럿 밥캣츠로 트레이드됐다. 현재는 1988~89시즌 창단했던 샬럿 호넷츠의 이름과 역사를 잇고 있지만 당시 기준에서 샬럿은 2004~05시즌에 창단한 신생 구단이었다.

이런 샬럿에서 디아우는 동기를 크게 잃었는지 체중조절에 실패했고 이전의 기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커리어 중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4시즌 중 3시즌이 샬럿에서 나왔지만 사실 득점은 디아우의 장기가 아니다. 재치 넘치는 움직임으로 팀의 공격을 살려주는 것이 장기다.

이런 장기를 살릴 기회가 2011~12시즌 3월에 왔다. 더 이상 디아우의 가망성을 보기 힘든 샬럿은 그를 방출시켰고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이 기회를 잡았다.

한창 피닉스 선수로서 활약할 때 플레이오프에서 디아우와 피닉스를 막아섰던 팀 샌안토니오는 디아우의 활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2011~12시즌 리그 공동 1위 성적으로 마감했던 샌안토니오라는 환경에서 디아우는 큰 동기를 갖고 움직였다.

디아우가 들어온 후 샌안토니오는 8연승과 10연승 포함 18승2패를 기록했다. 이렇게 팀의 플레이를 살려줄 줄 아는 선수임이 새삼 밝혀졌기 때문에 후에 디아우는 샬럿 홈에 갈 때마다 관중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샌안토니오에서 디아우는 대개의 시간을 파워 포워드 또는 센터로서 뛰면서 뛰어난 감각, 볼 핸들링, 패스를 통해 팀의 높은 득점력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 체중관리를 거치긴 했지만 여전히 넓은 체격을 통해 스몰 라인업 상대로 득점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프렌치 커넥션이라 불린 토니 파커-디아우는 샌안토니오와 프랑스 국가대표를 통해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춘 인생의 친구 사이다. ⓒAFPBBNews = News1
▶작은 숫자, 큰 기여

디아우가 가진 묘한 능력의 덕을 샌안토니오가 제대로 봤던 때가 2013~14시즌이다. 2012~13시즌 마이애미 상대로 NBA 파이널에서 석패를 당하며 눈물을 머금어야 했지만 2013~14시즌에서는 역대 손꼽히는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2차전 96-98 석패를 당하긴 했지만 나머지 4경기 모두 15점차에서 21점차 사이의 대승을 거뒀다. 이때 파이널 MVP 카와이 레너드의 활약도 눈부셨지만 디아우도 못지않은 기여를 보여줬다. 포스트업 상태에서 디아우가 보여준 움직임과 패스에 마이애미가 속절없이 당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 파이널 5경기 동안 디아우의 기록은 평균 6.2득점 8.6리바운드 5.8어시스트 0.8스틸 0.2블록이었다. 평균 35.2분을 출전한 선수로서 숫자만 본다면 팀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추론하기 힘들다.

여기엔 샌안토니오란 팀이 여러 차례 패스를 통해 득점을 올리는 팀이란 배경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디아우가 수비에서 큰 힘을 발휘하며 마이애미의 예봉을 꺾었던 것이 컸다.

디아우의 각 부문 커리어 최고 평균 기록은 2010~11시즌 0.9스틸 제외 모두 2005~06시즌에 있다. 그만큼 디아우는 어떤 숫자 측면에서 평가하기 힘든 선수로 볼 수 있다. 그래도 디아우를 설명해주는 숫자가 있다면 2012~13시즌 53.9% 야투율을 필두로 가장 좋았던 야투율 5시즌이 모두 피닉스와 샌안토니오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즉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성과가 크게 갈리는 면모도 디아우의 농구라 봐야 한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을 통해 상대 수비가 반응하다 무너지는 모습들도 디아우의 농구였다. 또한 강한 체격을 갖지 못한 빅맨을 엉덩이로 밀어내며 재미를 봤던 것도 디아우의 농구였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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