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인원들을 정식 소개하는 행사가 오는 8일(이하 한국시각) 열린다. 올해는 NBA 선수로서 보낸 커리어를 통해 선정된 인원들이 무려 5명이나 될 정도로 파격적인 인원수를 자랑한다.

연령순으로 모리스 칙스, 그랜트 힐,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쉬, 레이 앨런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중 힐, 키드, 내쉬, 앨런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를 관통해 NBA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어냈던 스타들이다. 이에 [NBA현미경]은 이 4명 각자의 커리어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마지막 4번째 주인공은 1975년생 앨런이다. 2000년대를 수놓은 스타 슈팅 가드들 중 한 명이자 역사에서 손꼽히는 슈터다.

사실 앨런은 전성기에 코트를 휘젓는 득점원으로서 스타덤에 올랐다. 다만 커리어 후반기 워낙 인상적이고 역사에 남을 하이라이트 3점슛을 남기면서 슈터의 이미지가 크게 남게 됐다. 그리고 2시즌에 걸쳐 맛본 우승에서도 슈터 역할의 지분이 컸다.

이런 앨런의 NBA 커리어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그 기점은 2007~08시즌이다. 그 시즌을 전후로 앨런은 팀에서의 위치에서나 남긴 기록에서나 큰 변화를 보여줬다.

앨런의 슈팅 자세는 농구 교재에 가장 어울리는 정석을 갖고 있다. ⓒAFPBBNews = News1
▶어린 시절부터 익힌 철저한 자기 관리

앨런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NBA 선수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연습벌레였다. 이런 습관은 이미 청소년기부터 다져졌는데 그 이유가 다소 우울하다.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미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군인 가족이었기 때문에 앨런은 세계 각 곳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을 영국에서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왔을 땐 또래들과 다른 말투로 인해 따돌림을 당했다.

앨런에겐 다행스럽게도 남들과 다른 신체 능력과 운동 소질이 있었다. 혼자가 된 시간을 공부에 지장이 되지 않는 한에서 연습에 다 쏟아 부었고 돋보이는 농구 선수가 됐다.

이런 앨런은 코네티컷 대학에 진학해 3학년으로서 올아메리칸 퍼스트 팀에 선정됨과 동시에 컨퍼런스 최고의 선수에 선정됐다. 그리고 마지막 3학년 시즌에 남긴 115개의 3점슛은 학교의 단일 시즌 기록으로 남았다.

▶간판스타들을 배출한 1996년 드래프트 5순위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신청한 1996년 NBA 드래프트에서 앨런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 의해 전체 5순위로 호명된 직후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됐다.

이 1996년 드래프트는 역사에 남을 스타들을 제법 배출했다. 1순위 앨런 아이버슨과 13순위 코비 브라이언트에 더해 올해 앨런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15순위 내쉬도 있다.

그리고 그때를 출발점으로 에이스로 활약한 슈팅 가드들이 많이 나왔다. 1997년 9순위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1998년 5순위 빈스 카터와 10순위 폴 피어스까지 해서 2000년대 NBA를 대표하는 6명의 슈팅 가드로서 꼽히곤 했다.

더욱이 역대 최고의 선수, 역대 최고의 슈팅 가드로서 꼽히는 마이클 조던의 시대 바로 다음이라 그 시기의 슈팅 가드들은 큰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서 브라이언트와 아이버슨이 워낙 앞서나가는 성과들을 남겼기에 앨런은 가려진 감이 있었다.

브라이언트는 올NBA 팀에 15시즌, 아이버슨은 7시즌에 걸쳐 선정됐다. 각자 시즌 MVP 1회 선정 경력도 있다. 이에 비해 앨런은 2000~01시즌 써드 팀 한 번, 2004~05시즌 세컨드 팀 한 번으로 올NBA 팀 선정 2시즌이 전부였다.

하지만 굳이 이런 서열을 떠난다면 NBA 가드들 중 수위권에 올랐던 적이 있고 올스타에 10시즌 선정된 이력을 가진 대단한 커리어다. 팬 투표에 의해 선발로 선정된 적이 없고 부상당한 원래 올스타 인원의 대체로서 선정된 적들도 있지만 NBA 역사에서 10시즌 이상 올스타에 선정된 인원은 39명뿐이다.

▶에이스로 나선 밀워키와 시애틀 시절

1년차 1996~97시즌을 평균 13.4득점으로 시작한 앨런은 4년차 1999~00시즌 22.1득점을 기록해 평균 20득점 이상 득점원의 커리어를 열었다. 커리어 평균 18.9득점의 앨런은 4년차부터 11년차 2006~07시즌까지 8시즌 연속 20득점을 넘겼다.

그 11년차까지의 커리어에 첫 소속팀 밀워키와 2번째 소속팀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의 경력이 모두 담겨 있다. 10시즌의 올스타 출전 중 7시즌이 이때에 나왔다.

2000년 전후 무렵 당시 밀워키는 샘 카셀-앨런-글렌 로빈슨의 3인조 화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 여기에서 앨런은 1999~00시즌 첫 평균 20득점을 넘김과 동시에 팀 내 득점 선두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앨런은 2006~07시즌까지 밀워키와 시애틀에서 시즌마다 팀의 득점 선두로서 나섰다. 32세로 마친 2006~07시즌은 커리어 최고인 평균 26.4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커리어 전체 동안 본인의 전체 야투 시도 중 3점 야투의 비중이 42.0%였을 정도로 앨런은 3점슛 활용을 많이 했다. 다만 2006~07시즌까지는 대부분 40% 아래의 비중을 기록했다. 볼 핸들링을 기반으로 한 플레이메이커로서도 자주 나선 편이었다.

▶빅3 결성의 2007~08시즌

2007년 여름 리그에는 커다란 파장이 전해졌다. 피어스가 에이스로 뛰고 있던 보스턴 셀틱스에 케빈 가넷과 앨런이 각각 트레이드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1976년생 가넷과 1977년생 피어스 등 한창 최고의 전성기는 아니지만 저마다 30대 초반의 농구 기량을 한껏 펼치던 시기였다. 이런 팀의 등장은 리그에 긴장을 심어줄 만했다.

당시 그 빅3 조합에서는 득점 측면에서 유독 이끌어나간 인원이 없었다. 평균 득점에서 피어스(19.6득점), 가넷(18.8득점), 앨런(17.4득점) 순이었다. 직전 시즌에 커리어 최고 평균 26.5득점을 올리던 앨런을 포함 피어스도 가넷도 제법 되는 전 시즌 대비 개인 득점 하락을 봤다.

그래도 결국 5대5 농구에서 보스턴은 리그 최고를 달렸다. 66승16패(승률 80.5%), 리그 1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6~07시즌 24승58패(승률 29.3%)로 리그 29위에 있던 팀의 대반전이었다. 이는 NBA 역사에서 가장 큰 시즌 간 성적 상승이다.

앨런에게 3점슛 시도의 비중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부터였다. 2006~07시즌 본인의 전체 야투 시도 중 3점 야투 비중이 38.4%였던 앨런은 2007~08시즌에 45.8%를 기록했다. 이후의 시즌들에서도 40%를 훌쩍 넘는 3점 야투 시도 비중을 남기곤 했다.

갑자기 결성됐지만 충돌 없이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각자의 생애 첫 우승을 맞이한 보스턴 빅3이었다. ⓒAFPBBNews = News1
▶당대 최고의 3점 슈터

현재 역대 통산 3점슛 성공 1위가 2973개의 앨런이다. 종전 1위였던 레지 밀러의 2560개를 보스턴 시절인 2010~11시즌 2월 경기에서 넘어섰다.

NBA 역사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부문이 3점슛이다. 1965년생이자 1987~88시즌에 데뷔한 밀러의 시대와 앨런의 시대는 3점슛 활용에 있어 분명 서로 달랐다. 그리고 현재 통산 2129개 3점슛 성공으로 7위에 올라 있는 스테픈 커리가 언젠가 앨런을 앞지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결국 밀러도 그렇고 앨런도 자신이 있던 시대 최고의 3점 슈터들이었다. 현재는 커리와 클레이 탐슨의 다섯 시즌들이 앞서 있지만 2012~13시즌 커리 전까지 역대 단일 시즌 3점슛 성공 개수 1위의 자리는 269개의 앨런이 차지하고 있었다.

2001~02시즌(229개), 2002~03시즌(201개), 2005~06시즌(269개), 이렇게 3시즌에 걸쳐 앨런은 해당 시즌 3점슛 성공 개수 리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11시즌에 걸쳐 리그 상위 9위 안에 들었다.

또한 앨런의 3점슛 능력의 진가가 밀러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 결정적인 순간들에서 입증됐다. 그리고 그 플레이오프 활약들 중 하나는 소속팀의 우승에 정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2012~13시즌 NBA 파이널 6차전 4쿼터 앨런의 마지막 3점슛은 정말 드라마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AFPBBNews = News1
▶NBA 파이널 2회 우승에 대한 결정적 기여

2007~08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보스턴은 1,2라운드 모두 7차전까지 가는 고비들을 겪었다. 컨퍼런스 파이널도 6차전까지 가서야 통과했다. 그동안 앨런의 3점슛에는 기복이 있었다. 동부 컨퍼런스 팀 상대의 20경기 동안 3점슛 성공률 34.0%를 기록했다.

반면 LA 레이커스를 상대했던 NBA 파이널에서는 경기마다 2개 이상씩을 성공시키며 6경기 52.4%라는 훌륭한 정확도를 보여줬다. 그리고 마지막 6차전에 워낙 승부가 일찍 갈려 의미가 덜해지긴 했지만 3점슛 7개를 성공시키며 당시 기준 역대 파이널 3점슛 기록을 세웠다.

2007~08시즌 파이널에서 앨런이 경기 막판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득점은 3점슛이 아닌 레이업이었다. 2승1패 후 원정에서 치른 4차전, 보스턴은 2쿼터에 최대 24점차까지 뒤지고 있었다. 이런 경기를 결국 보스턴이 이기면서 NBA 파이널 역대 가장 큰 역전승을 남기기도 했다.

그 경기에서 앨런은 48분 모두 뛰면서 19득점을 올렸다. 그 중 경기 종료 16초를 남기고 성공시킨 리버스 레이업은 3점차에서 5점차로 달아나며 승부를 굳히는 득점이 됐다.

그리고 역사에 남은 하이라이트가 2012~13시즌 마이애미 히트 소속으로서 나왔다. 당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상대해 2승3패 후 맞이한 NBA 파이널 6차전에서 마이애미는 벼랑 끝까지 몰렸다. 종료 28초를 남기고 5점차로 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료 에이스 르브론 제임스의 3점슛 득점과 상대방 카와이 레너드의 자유투 1구 실패가 나오면서 7초를 남기고 3점차가 됐다. 이때 제임스의 3점슛이 실패한 뒤 크리스 보쉬가 공격 리바운드를 잡은 후 곧 바로 앨런에게 패스했고 앨런은 멋진 포물선의 3점슛을 성공시켰다.

이로써 연장전에 간 마이애미는 결국 승리할 수 있었고 7차전까지 잡아내며 본인의 2번째 우승이자 팀의 2연속 우승에 기여할 수 있었다. 당시 경기 총 3회의 3점슛 시도 중 유일한 성공이 가장 결정적 순간에 나왔다.

앨런의 슈팅 자세는 교과서로 불릴 만큼 올곧고 균형 잡힌 자세다. 이를 통해 드리블을 치다가도, 전속력으로 달리다 패스를 받은 직후에도, 가만히 서 있다 패스를 받은 직후에도 3점슛을 넣어줄 수 있는 슈터의 정석을 보여줬다.

대학 시절 돋보였던 성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NBA에서 득점원이자 슈터로서 보여줬던 정상급 슈팅 성과 등 앨런의 명예의 전당 헌액에는 충분한 근거들이 있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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