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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비관적이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을 향한 시선에는 비관론이 가득했다. 짧았던 준비기간, 평가전에서의 거듭된 부진 등이 맞물리면서 ‘망신만 당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비관론 속에서 남긴 ‘저마다의’ 족적은 그래서 의미가 컸다.

한국은 16강에 오르지 못했으나, 독일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일본 역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6강 무대를 밟았다. 비관적이기만 했던 분위기를 돌아보면 극적인 성과들이었다.

16강 진출 여부는 엇갈렸지만, 한국의 독일전 승리와 일본의 16강 진출은 세계축구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아시아 팀들이 경쟁력을 보여준 결과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같았다. 그리고 묘하게 닮아있던 한국과 일본의 행보는 월드컵 이후에도 그 연장선에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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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전, 비관론에 휩싸였던 한국과 일본축구

러시아 월드컵의 출발점은 같았다. 외국인 감독이었다.

4년 전 한국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일본은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다만 두 감독 모두 성적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한국은 최종예선 2경기를 앞두고 신태용 감독이, 일본은 월드컵 개막 두 달 전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 각각 지휘봉을 잡았다.

비관론은 감독 교체 이후 내내 이어졌다.

신태용호는 잇따른 평가전에서 좀처럼 희망을 보여주지 못했다. 콜롬비아전 승리나 동아시안컵 우승 등 반전의 불씨를 지피긴 했으나, 그 기세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뚜렷하지 못한 색채와 과도한 전술 실험 등이 늘 도마 위에 올랐다.

월드컵은 코앞인데 경기력이 좋지 못하자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4년 전보다 더 큰 창피를 당할 것”이라고까지 우려했다. ‘3전 전패로 탈락할 것’이라는 팬들의 예상도 대표팀의 준비 과정에서 비롯됐다. 역대 월드컵 중 가장 관심이 떨어지는 대회라는 평가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일본 분위기는 한국보다 더 심했다.

니시노 감독은 지난 5월 데뷔전에서부터 고개를 숙였다. 가나와의 월드컵 출정식에서 0-2로 완패한 뒤,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와 야유를 받아야 했다. 이어진 스위스전에서조차 무기력하게 패배하자, 한 일본 언론은 “월드컵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상 이상의 절망일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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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이룬 한·일 축구, 저마다의 의미와 함께

한국을 향했던 비관론은 개막 후 현실이 되는 듯 보였다.

‘올인’을 선언했던 스웨덴과의 첫 경기부터 무릎을 꿇었다. 신태용 감독은 4-3-3 전술과 김신욱(전북현대)의 선발을 승부수로 던졌지만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단 한 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하는 졸전을 펼쳤다.

멕시코전에서도 반전은 없었다. 장현수(FC도쿄)의 거듭된 실수로 내주지 않아도 될 실점을 하면서 또 졌다. 결국 한국은 20년 만에 월드컵 1, 2차전을 모두 패배했다. ‘3전 전패’라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기 직전이었다.

최종전 상대는 피파랭킹 1위이자 전 대회 우승팀, 그리고 한국을 이겨야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독일이었다. 도박사들은 한국이 2-0으로 독일을 꺾을 가능성(1%)보다 0-7로 대패(99%)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절망적인 예상이었다.

반전은 그래서 더 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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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은 수문장 조현우(대구FC)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등 단단한 수비 집중력을 앞세워 시종일관 독일의 화력을 잠재웠다. 여기에 후반 추가시간 김영권과 손흥민의 연속골로 독일을 2-0으로 이겼다.

단순히 ‘우승후보’ 독일을 꺾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118km(독일 113km)라는 경이적인 뛴 거리, 몸을 사리지 않았던 수비 장면 등은 축구팬들이 바라던 한국축구 특유의 투혼과 정신력이었다. 그동안 큰 실망감에 빠져 있던 팬들이 ‘16강 좌절’이라는 결과에도 기꺼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 이유였다.

일본은 첫 경기부터 반전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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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강호인 콜롬비아를 2-1로 꺾었다. 전반 3분 만에 상대가 퇴장 당하는 등 운이 따른 경기였지만, 경기 내내 패스축구와 탄탄한 기본기 등 일본 특유의 스타일이 유지됐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았다. 세네갈전 2-2 무승부 역시 경기력이 밑바탕에 있었다.

홍역도 앓았다. 폴란드전에서 0-1로 뒤진 가운데 10분 넘게 수비지역에서 공을 돌렸다가 전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6강 무대를 밟았지만, 경기 외적인 면에서 박수를 받지는 못했다.

벨기에전에서는 경쟁력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벨기에를 상대로 먼저 2골을 넣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후 안정 대신 공격에 무게를 두는 바람에 내리 3골을 내준 뒤 탈락했다. 감독의 전술적인 선택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래도 폴란드전을 제외하면 일본의 이번 월드컵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16강 진출이라는 결과는 물론, 수비축구가 아니라 패스와 기본기, 조직력 등 일본 특유의 축구철학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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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후에도 닮아있을 한국·일본축구의 행보

결국 외국인 감독의 경질과 국내파 지도자 선임, 비관론 속에서도 얻어낸 성과 등 한국과 일본의 이번 러시아 월드컵 행보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행보는 과정에는 차이가 있으나, 결과는 결국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은 니시노 감독과의 계약에 마침표를 찍었다. 16강을 이끌긴 했으나 폴란드전 논란이나 벨기에전 전술적 한계 등과 맞물려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독일과 미국 등을 이끌었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유력한 차기 감독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명확하게 선을 긋지는 않았다. 대신 신태용 감독을 10여 명의 차기 감독 ‘후보’ 중 한 명으로 포함시켰다.

다만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차기 감독 기준으로 월드컵 예선 통과 경험이나 대륙컵 대회 우승 경험, 세계적인 수준의 리그 우승 경험 등을 제시한 상황이어서, 신 감독과 외국인 감독 후보들 간 경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구나 독일전 승리와는 무관하게 신 감독의 유임을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1년여의 지난 과정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데다가, 독일전마저도 감독 전술의 영향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

4년 전 월드컵 실패 이후 홍명보 감독의 유임을 결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서는 뚜렷한 명분이 없는 신 감독의 유임을 결정하기가 조심스럽다.

결과적으로 한국 역시도 일본처럼 새 외국인 감독을 선임,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할 것이라는 전망이 축구계 중론이다. 같은 듯 달랐고, 또 다른 듯 같았던 한국과 일본축구의 묘한 행보가 월드컵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한편 김판곤 위원장은 9월 A매치 전까지는 신임 감독을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6일부터 10여 명의 차기 감독 후보들과 차례로 접촉에 나선 상태다. 신 감독 면접과 평가는 지난 1년의 행보로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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