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15년 만에 외국인 선수가 챔피언결정전 MVP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오랜 농구 팬이라면 지난 2002~03시즌 챔피언결정전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TG(현 DB)는 디펜딩 챔피언 동양(현 오리온스)에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4승2패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KBL 제공
당시 챔피언결정전을 휘어잡은 선수는 바로 TG의 데이비드 잭슨이었다. 정규시즌까지 잭슨은 3점슛 평균 2.9개(2위), 3점슛 성공률 45.9%(1위)를 기록하는 등 최고의 슈터로 인정받았지만 생각보다 기복이 있었던 선수다. 실제 6강과 4강 플레이오프에서 잭슨의 3점슛은 평균 1.4개, 성공률은 30.3%까지 크게 떨어졌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들쑥날쑥한 슛감은 계속됐다. 3차전에서는 단 7점에 묶여 팀의 30점 차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고, 4차전에서는 9번의 3점슛 가운데 2개를 성공시키는데 그쳤다. 5차전에서는 34점을 폭발시켜 3차 연장 승리의 주역이 됐으나 역시 3점슛 성공률은 22.7%(5/22)로 사실상 난사에 가까운 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슨은 TG의 우승을 이끌었고 사상 두 번째로 외국인 MVP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시리즈 평균 3.0개의 3점슛에 비해 30.5%의 성공률은 다소 초라했지만 특유의 크로스오버와 헤지테이션 드리블로 상대를 농락한 뒤 올라가는 스텝백 3점슛을 앞세워 클러치 상황에서만큼은 믿기 힘든 집중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실제 1차전 동점 상황이던 경기 종료 12초 전 결승 득점을 시작으로 2차전 역시 14초 전 동점 균형을 깬 결승골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5차전 역시 계시기 오작동 파문이 있기는 했지만 잭슨의 4쿼터 막판 맹활약이 없었다면 연장 승부 자체가 나올 수 없었다.

우승을 확정지은 6차전 역시 전반까지 무득점에 그쳐있었으나 4쿼터에만 3점슛 3방을 포함해 13점을 몰아치며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었다. 1쿼터 3-24의 절대적인 열세를 2쿼터 신종석이 3점슛 5개로 만회했다면 결국 막판 경기를 접수한 주인공은 또다시 잭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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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DB 팬들은 올시즌 디온테 버튼이 잭슨의 향기를 떠오르게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이미 정규시즌 최고의 활약으로 외국인선수MVP를 수상한 버튼은 비록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 잭슨과 전혀 달랐지만 ‘해결사 능력’에서만큼은 잭슨과 닮은 부분이 많았다. 실제 버튼의 시즌 득점 23.5점 가운데 14.8점이 후반에 쏟아졌고, DB는 수많은 역전 드라마를 작성해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버튼은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충분히 자기 몫을 다해줬다. 6경기에서 평균 27.3점을 폭발시켰고, 9.5리바운드 4.7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정규시즌보다 기록상으로는 훨씬 수치가 올라갔다.

특히 승리한 1, 2차전에서는 3쿼터에만 연속으로 20점씩을 폭발시키는 등 2경기 평균 38.5점으로 막을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3차전 이후 4경기에서 평균 득점이 21.8점으로 줄어들었지만 누구도 버튼을 원망하기 어려웠을 만큼 여전히 그는 DB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결국 잭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끝내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점이다. 버튼도 뛰어났지만 결국 잭슨에 이어 15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한 외국인 선수는 바로 SK의 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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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는 6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평균 25점 5.3리바운드 7.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3점슛 총 16개를 꽂아넣었으며 성공률은 42.1%였다. 특히 팀이 2연패를 당한 직후인 3차전에서 김선형의 연장 결승 득점이 극적인 역전승을 만들어낸 장면이었지만 화이트가 34점을 올리지 못했다면 결코 SK가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어려웠다.

4차전에서도 화이트는 3쿼터까지 단 13점에 묶이며 고전했지만 4쿼터에만 9점을 몰아쳐 SK의 리드를 지켜냈다. 1점 차로 뒤진 경기 종료 3분27초 전 바스켓 카운트를 통한 역전 득점을 시작으로 1분 뒤에는 상대 추격 의지를 꺾는 추가 점수를 뽑아냈고, 이후에도 자유투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화이트는 시리즈의 분수령이었던 5차전에서도 3점슛 4개를 포함해 23점을 기록했으며, 9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트리플 더블에 가까운 활약을 선보였다. 6차전을 앞두고 문경은 감독은 마음 속 MVP를 묻는 질문에 깊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화이트의 이름을 언급했다. 김선형마저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이유에서였다.

화이트는 마지막 6차전까지 집중력 있는 모습을 이어가며 결국 문 감독 뿐 아니라 기자단 투표에서도 전체의 약 3분의 2에 해당되는 높은 지지 속에 MVP를 품에 안았다. 다음 시즌 신장 제한 규정이 바뀌면서 KBL리그 잔류를 장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애런 헤인즈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에이스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화이트의 활약은 15년 전 잭슨처럼 오랜 기간 팬들 뇌리에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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