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피부와 눈동자 색이 다르고 말투가 다소 어눌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결국 모두가 ‘팀 코리아’로 하나가 되는 태극전사다.

최근 프로농구에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귀화가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과거 전태풍, 이승준, 문태영, 문태종 등이 귀화한 사례는 있지만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이 아닌 순수 외국인 선수가 귀화한 것은 남자 농구에서는 처음이다. 라틀리프는 ‘라건아’라는 한국 이름을 등에 새기고 FIBA 농구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 대표팀의 골밑을 책임질 예정이다.

한국이 단일민족 국가임을 강조하며 스포츠 귀화 선수를 마음으로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글로벌 사회에서 귀화 선수 영입은 어느덧 세계적 추세가 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무려 19명의 귀화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제2의 조국을 위해 뛰고 있다. 한국 선수 145명 중 13.1%가 귀화 선수로 채워졌으며 이는 한국 올림픽 사상 가장 많다. 2014 소치 올림픽에서 여자 쇼트트랙 공상정이 유일한 례였음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남자 아이스하키 전력의 핵심인 맷 달튼. IOC의 허가를 받지 못했지만 달튼은 본인의 마스크에 충무공 이순신 문양을 새겨 화제를 낳았다. 연합뉴스 제공
▶귀화 선수 최다 종목 아이스하키

귀화 선수가 가장 많은 종목은 아이스하키다. 남자 7명과 여자 4명으로 총 11명의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브락 라던스키는 태극마크를 단 귀화 선수 중 1호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비록 세계 최고의 무대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데뷔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됐을 만큼 뛰어난 잠재력을 인정받았고, 2008~09시즌 안양 한라 소속으로 한국 무대에 입성해 정규리그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라던스키는 어느덧 한국에서만 10년을 뛰었고, 대한체육회의 우수 인재 추천을 받아 2013년 3월 귀화한 이후로도 약 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어를 알아듣는데 전혀 무리가 없으며, 그의 가족들 역시 만족감을 드러낼 만큼 한국 생활에 완전히 정착한 상태다.

포지션이 골리(골키퍼)인 맷 달튼은 남자 아이스하키 전력의 핵심이다. NHL 다음으로 위상이 높다고 알려진 러시아대륙간아이스하키리그(KHL)에서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던 그는 2016년 태극마크를 단 이후 대표팀의 골문을 든든히 지켜왔다.

비록 3전 전패를 당했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2017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에서는 캐나다, 핀란드, 스웨덴 등 세계 최강팀들을 상대로 유효슈팅 155개 중 143개를 막아내는 맹활약을 펼쳐 기대감을 높였다.

특히 달튼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허가를 받지 못해 이번 올림픽에서 착용할 수 없게 됐지만 마스크에 충무공 이순신 문양을 새겨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고 싶은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박윤정과 한나 브랜트 자매. 연합뉴스 제공
▶친부모를 향한 그리움

입양아 출신으로서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은 선수들도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박윤정과 프리스타일 스키 슬로프스타일의 이미현 등이 그 주인공이다.

생후 4개월 만에 미국 국적의 그렉·로빈 브랜트 부부에게 입양됐던 박윤정은 2016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안을 통해 한국 국적을 회복했으며, 한 살 어린 자매 한나와 이번 올림픽에 나란히 출전하게 됐다.

물론 한나의 경우 세계 최강 미국팀에 속해있고, 실제 맞대결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자매가 서로 다른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한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물론 박윤정은 이같은 설렘 이면에 친부모를 향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살 때 입양된 이미현은 미국에서의 삶조차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양부모마저 7년 만에 이혼하면서 자칫 방황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스키 덕분이었다.

당초 대한스키협회로부터 강사 제안을 받았다가 뛰어난 기량 덕에 귀화까지 결심하게 된 이미현은 지난해 열린 국제스키연맹 월드컵 슬로프스타일 결선에서 7위에 오르는 등 뛰어난 실력을 뽐냈다. 올림픽 입상을 통해 본인을 널리 알려 친부모를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피겨 아이스댄스에 출전하는 알렉산더 겜린과 민유라. 연합뉴스 제공
▶ 서로 다른 사연, 모두가 한 마음

피겨 아이스댄스에 출전하는 알렉산더 겜린과 민유라는 올림픽 전부터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다. 겜린은 과거 함께 호흡을 맞췄던 쌍둥이 여동생 대니얼 겜린의 부상으로 짝을 잃었고,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재미동포 민유라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뜻을 함께 하기로 한 이후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던 민유라가 먼저 한국 국적을 택했고, 겜린 역시 그 뒤를 이어 귀화하면서 그들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특히 겜린과 민유라는 개량 한복 유니폼을 입고 가수 소향의 ‘홀로 아리랑’ 음악에 맞춰 연기를 할 예정이다. 비록 IOC에서 독도가 포함된 가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제시해 이 부문을 삭제시켰지만 한국의 전통을 알리겠다는 뜻을 줄곧 품어왔다

이 밖에 바이애슬론의 티모페이 랍신, 여자 루지 아일린 프리쉐와 같이 파벌 싸움에 휘말렸거나 고국의 치열한 경쟁을 아쉽게 뚫지 못한 채 귀화를 결심한 선수들도 있다. 비록 메달 가능성은 저마다 차이가 있지만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그동안의 노력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모두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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