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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신일중 시절 도루를 시도하는 주자를 제자리에 앉은 채로 잡아냈던 덩치 큰 포수. 소위 ‘앉아쏴’를 본인의 상징으로 만든 조인성(42)이 야구 인생 34년, 프로 20년의 순간을 뒤로한 채 정들었던 마스크를 벗게 됐다.

조인성은 지난 8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를 통해 공식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기나긴 야구 인생을 걷는 동안 많은 도움과 성원을 보내준 LG, SK, 한화 구단 관계자 및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은퇴서를 전달했다.

향후 한국야구와 팬들에게 빚진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은퇴식 대신 재능기부로 새로운 인생 첫 걸음을 걷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A4 용지 2페이지 분량의 은퇴서는 본인의 긴 야구 인생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조바깥’이라는 또 하나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 조인성에게 은퇴서에 모두 담지 못했던 ‘바깥’ 이야기를 좀 더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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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마스크를 벗는다는 것

조인성은 지난 6월말 한화에서 방출됐다. 김성근 전 감독과 박종훈 단장의 대립 속에서 김 전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지 약 한 달 만의 일이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조인성은 현역 연장 의지가 강했다. 20년간 이어온 프로선수의 인생이 1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미팅에서 결정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미 이전에도 조인성은 후배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역할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제가 주전이라기보다는 주변의 위치에서 팀을 도와왔는데 출장 빈도가 점점 떨어지고 잦은 부상까지 있다 보니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쉽지 않은 선택이었죠. 어린 시절부터 34년 동안 야구를 하면서 포수를 맡아왔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조인성은 포수 장비에 대해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장비는 언제나 한 몸과도 같았고 고된 훈련으로 지칠 때에도 장비를 입고 있는 순간만큼은 늘 힘이 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순간 및 현역 마지막 경기 때 입었던 장비와 글러브, 배트 등을 고이 보관하고 있는 상황.

아쉬움이 전혀 없다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은퇴 발표 후 많은 선후배 야구인들이 2000경기를 아쉽게 채우지 못한 안타까움을 위로했고, 스스로도 ‘조금만 더’라는 미련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인성은 많은 잔부상에 시달리는 등 몸 관리를 확실히 하지 못한 본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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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과 고마움, 그리고 영광의 시간들

조인성은 은퇴서를 통해 그동안 거친 구단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일일이 남겼지만 그 이면에는 미안한 감정을 함께 담아내기도 했다. 우수한 팀 성적으로 보답하지 못한 기간이 길었던 것에 대한 자책이었다.

그는 그동안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던 모든 경기들이 훗날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은 순간으로 꼽았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기억에 남을 영광의 순간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2010시즌이 아닐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성적(타율 0.317 28홈런 107타점)을 냈던 시즌이었어요. 그 해 포수 최초의 107타점을 올린 것이 가장 큰 자부심으로 남을 기록이기도 하고요. 단지 좋은 기록을 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 133경기에 모두 출전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박)찬호 형의 전담포수로서 태극마크를 달았던 시절도 제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었어요.”

가장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가 누군지도 궁금했다. 조인성은 “참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수많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생각나고 이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꼭 한 명을 꼽아야 할 경우 김태형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제가 SK 시절 감독님께서 배터리 코치를 하셨는데 실질적으로는 짧았지만 참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훗날 제가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될 경우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가르쳐주셨죠. 무엇보다 선수와의 거리감 없는 소통을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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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이 강조한 희생과 재능 기부

공격형 포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던 시절 조인성은 뜨거운 열정을 그라운드에 고스란히 분출할 때가 많았다. 때문에 후배들에게 눈치를 주고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베테랑에 접어든 그는 주연이 아닌 조연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묵묵히 팀에 헌신하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 희생의 마인드가 많은 것을 바꿔놨고, 20년의 프로 생활을 가능하도록 했다. 조인성이 후배 포수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도 이같은 부분이다.

“일단 첫째, 둘째, 그리고 셋째도 희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말로는 쉽지만 실제 몸과 마음에서 희생이 우러나오기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후배들이 본인과의 싸움에서 타협을 하지 않고 항상 희생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또한 투수나 야수들에게 항상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기원합니다.”

희생정신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욕심을 내려놓은 일 역시 조인성이 은퇴 이후 계속해서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마음가짐이다.

“나름 20년 동안 프로 생활을 했지만 제가 (이)승엽이나 (이)호준이처럼 화려한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잖아요. 사실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은퇴식을 가지는 것이 꿈일 수는 있어요. 저도 은퇴식을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아쉬움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겠죠. 은퇴는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잖아요.”

어떤 새 출발을 해야 할지 고민을 이어가다가 조인성이 떠올린 길 중 하나는 바로 재능 기부였다. 프로 선수로서 본인의 경험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중고등학교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것이 그의 설명. 이미 은퇴 발표에 앞서 조인성은 강릉고를 방문해 이같은 결심을 실천으로 옮겼다.

“연고가 있었던 팀에 찾아가서 후배 포수들에게 도움이 될 말을 해주고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해주고 싶어요. 어쩌다 감히 문을 두드리고 도전하게 됐는데 (연고 팀 쪽에서) 흔쾌히 믿음을 보내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에요. 한국야구와 팬들에게 빚진 은혜를 이렇게나마 갚아나가야겠죠.”

▶인생 1막 ‘앉아쏴’, 인생 2막 ‘빛나는 아버지’

‘앉아쏴’는 조인성의 야구 인생 34년을 대표하는 단어다. 앉은 자세에서 송구하는 특유의 동작으로 통산 3차례나 도루 저지율 5할 이상을 기록하는 등 강견으로서 이름을 떨쳤다. 과연 ‘앉아쏴’가 조인성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프로라면 남들과 똑같이 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앞서나가야 한다는 마음, 다른 방식으로 부딪혀보려는 모험도 필요하죠.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프로에서도 20년 동안 ‘앉아쏴’를 보여드렸는데 사실 내일이라도 당장 운동장에 나가서 ‘앉아쏴’를 해야 할 것만 같아요. 하하하. ‘앉아쏴’는 남들과는 다른 포수 조인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그리고 20년이라는 긴 프로 생활을 이어올 수 있게 해줬던 자부심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조인성의 인생 1막을 함축할 수 있는 단어가 ‘앉아쏴’라면 인생 2막은 ‘빛나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목표다.

조인성은 SK 소속이던 지난 2012년 2월17일 부친 고 조두현 씨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미국 플로리다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의 일이다. 폐렴 증상을 앓고 있던 조인성의 부친은 아들이 병원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뒤 말없이 눈물 한 방울을 흘렸고, 4시간 30분 뒤 눈을 감았다.

수유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준 아버지였기 때문에 임종 당시를 떠올리면 조인성은 현재도 가슴이 시큰하다. 그는 은퇴서에도 본인을 야구 선수로 만들어준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제게 아버지는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였어요. 어디에 가든 늘 따라다니며 곁에 있어주셨고, 힘들수록 이끌어주시고 밀어주셨어요. 과거에 제가 은퇴식을 하는 모습을 보길 희망하셨는데 사실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해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만큼 야구인으로서 재능 기부를 시작으로 남은 인생을 훌륭하게 채워나간다면 아버지께서도 하늘나라에서 인정해주시고 좋아하실 것 같아요.”

올해 5월23일 아들 민제가 세상의 빛을 보면서 조인성도 이제는 한 가정의 아버지 역할을 책임지게 됐다. 비록 득남의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기도 전에 방출 통보를 받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조인성은 초심을 간직한 채 새로운 인생 2막을 후회 없이 달려 나갈 계획이다.

“아버지가 제 곁을 늘 지켜준 그림자였다면 저는 아들에게 빛과 같은 존재이고 싶어요. 단어 자체의 의미는 정반대일 수 있지만 결국 그 속에 담긴 진심은 똑같지 않을까요. 아들에게 늘 존경받고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할 생각입니다. 아낌없는 응원 부탁드립니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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