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지난 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는 참으로 의미 있는 뉴스가 전해졌다.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박미희(54) 감독이 ‘4대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 우승’이라는 신기원을 쓴 것. 그동안 여성 감독들이 지휘봉을 잡은 적은 있었으나 우승을 일궈낸 것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이었다.

2014년 부임 이후 3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스포츠계의 ‘유리천장’을 깼다고 평가받은 박 감독은 “여성 감독이라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걸 원치 않는다”며 “똑같은 지도자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지도자로 선수들을 이끄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물론 한국 스포츠계에서 완전히 ‘유리천장’이 깨졌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아직 남자팀을 감독하는 여성을 찾아볼 수 없고 당연히 남자 프로스포츠에서 여성 감독이 우승한 적도 없기 때문.

그러나 일단 여성부에서 여자 감독이 우승을 일궈냈다는 것은 앞으로 남성부에서 여자 감독이 부임하고 우승까지 할 수 있는 완전한 ‘유리천장’ 깨기의 서막이 됐기에 뜻 깊다. 시나브로 '여자 지도자는 안된다'는 편견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떨까. 좀 더 개방적이고 여성의 스포츠계 진출이 활발한 미국에서조차 여전히 여성 감독이나 코치가 뚜렷한 업적을 남긴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왼쪽부터 한국 여자 배구의 박미희 감독, NBA 첫 여성 코치 베키 해먼, MLB 첫 여성 코치 저스틴 시걸, 세계 축구 1부리그 역사상 첫 여성 감독으로 우승한 홍콩의 찬유엔팅. 스포츠코리아 제공 ⓒAFPBBNews = News1
▶여성 감독은 찾아보기 힘든 미국 4대 스포츠

미국 4대 스포츠(풋볼, 야구, 농구, 하키)에서도 여성 감독은 없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분명 유리천장은 존재하는 것. 그래도 여성 코치가 남성부에 들어와 성공한 사례는 충분히 찾을 수 있으며 그 숫자는 조금씩 늘고 있다.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2014년 8월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코치 베키 해먼(40)은 최초의 여성 유급코치로 역사를 썼다. 해먼은 2014~2015시즌 샌안토니오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다. 2016년 1월에는 NBA 올스타전 코치까지 맡으며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현재도 여전히 코치로 활동 중이다.

해먼이 등장하자 또 다른 NBA팀인 새크라멘토 킹즈도 2015년 8월 낸시 리버먼(59)이라는 여성 코치를 두며 남자 농구계에서 여자 코치가 조금씩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추세다.

미국 프로야구(MLB)에서도 이미 여성 지도자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여성 코치인 저스틴 시걸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부터 가을리그 코치진 합류를 제안 받고 실제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계는 있었다. 파트타임이었고 정식 마이너리그팀 등의 코치로 임명되지는 못한 것. 그래도 첫 메이저리그 최초의 유급 여성 코치의 타이틀은 그의 것이었다.

시걸은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준비하던 이스라엘 대표팀의 코치로 임명돼 오합지졸인줄 알았던 이스라엘 대표팀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이스라엘 대표팀을 코치로서 지도한 시걸은 예선전에서 이스라엘의 사상 첫 WBC 본선 진출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스라엘 대표팀의 제리 웨인스타인 감독은 “개인사정으로 시걸 코치가 한국에 오지 못했지만 많은 도움을 받아 WBC 본선에서도 함께 하고 싶었다”며 따로 아쉬움을 드러냈을 정도. 한국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안긴 이스라엘 대표팀의 놀라운 실력에는 MLB 첫 여성코치인 시걸의 덕이 적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여성 감독으로 첫 우승을 해낸 박미희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찬유엔팅, 여성감독의 사상 첫 우승 이끌어

미국도 쉽지 않은 여성 감독의 남성부 진출은 의외의 곳에서 이미 성공을 거뒀다. 바로 홍콩이다. 찬유엔팅(29)는 홍콩 프리미어리그 이스턴SC의 감독으로서 2015~2016시즌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세계 축구 사상 남성 1부 리그에서 여성 감독이 우승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놀라운 것은 1988년생으로 아직 만 30세도 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프로 경력이 없이 대표팀까지 선수로 뛰었고 스스로 독학을 해내 D급 자격증부터 시작해 지금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나서는 이스턴SC의 수장으로까지 단기간에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김판곤 홍콩 축구대표팀 감독도 “대단한 사람이다. 홍콩이 아무리 차별이 없고 평등한 사회라고 해도 여성으로서 정상을 지키는 게 쉬운 일이었겠는가”라며 극찬을 보내는 찬유엔팅은 BBC가 선정한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여성 100인’에 앨리샤 키스(미국 가수) 등과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여자 지도자는 안돼’라는 편견과 주목 받는 것을 이겨내야

기본적으로 스포츠계에서, 특히 남성부 종목에서 ‘여성 지도자는 안 된다’는 편견이 알게 모르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도자 A씨는 “아무래도 여자가 감독이면 기본적인 실력에서 보여준 것이 없다는 편견 때문에 선수들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여성지도자가 지휘봉을 잡으면 팀관리와 함께 남성적인 라커룸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선이 있기에 이같은 편견은 더 고착화되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차별을 뜻하는 `유리천장'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여성 감독의 능력이 객관적으로 남성 감독에 비해 떨어지는 경우나 많은 팀원들을 다스리고 카리스마를 보여야하는 상황에서 여성 감독의 행동이 남자 선수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의 문제는 다른 영역이다. 압도적인 지도력으로 선수들을 설득시켜야하는데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홍콩의 찬유엔팅도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주목을 받고 마케팅에도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남자 감독들 속에서 여성 감독이라는 희소성 측면에서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단순한 마케팅 요소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져야만 롱런을 할 수 있다.

이미 박미희 감독으로 인해 여성 감독의 역사를 새롭게 쓰인 한국 프로스포츠. 과연 남자 종목에서 여성 감독이 팀을 지도하는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홍콩 이스턴SC의 찬유엔팅.ⓒ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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