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야구 선수가 꿈인 어린 아이가 있었다. 프로야구 선수가 아닌 그저 야구를 할 수 있는 선수가 꿈이었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를 보며 OB 박철순을 동경했던 이 어린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공 던지기 대표로 나간 것을 계기로 야구를 시작했고, 그로부터 31년 뒤 ‘한국야구의 전설’이자 ‘국민 타자’가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삼성 이승엽(41)이다.

이승엽의 야구 인생 31년은 이미 시합에서 한 팀에게 주어지는 27개의 아웃카운트보다도 숫자가 높다. 때문에 그의 야구 인생을 경기에 비유하면 2017년은 9회말 투아웃 마지막 타석에 서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있다. 이미 이승엽은 불혹을 훌쩍 지난 나이에도 변함없는 클래스를 선보였고, 마지막 시즌에도 변함없이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이승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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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이 걸어온 험난한 길

지난달 13일 대전 인터시티 호텔에서 열린 2017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에서 이승엽이 방망이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강사로 변신해 약 1시간 동안 털어놓은 진솔한 이야기 속에서 그가 걸어온 야구 인생을 그려볼 수 있었다. 동시에 이승엽이 최고의 국민타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승엽의 야구 인생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야구를 처음 시작한 당시부터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한 달 이상 실랑이를 했고, 선수로서 도태돼 사회에서조차 적응을 하지 못했을 때 부모를 원망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힘겹게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야구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마추어 시절 투수로 두각을 나타냈던 이승엽은 삼성 입단 당시 왼쪽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타자로 진로를 바꿨다.

신인 시절에는 적응조차 쉽지 않았다. 평소 동경했던 대선배 이만수와 함께 뛸 수 있다는 자체가 영광이었지만 여성적인 성격 탓에 말을 붙이기는커녕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다녔다. 프로가 아닌 대학을 선택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후회도 많았다.

스타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높은 산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상대팀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고, 반대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에는 높은 기대감을 안고 있었던 삼성 팬들에게까지 질타를 받았다.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에는 그 부담감이 더욱 컸으며, 일본 무대에 야심차게 도전장을 던졌을 때에는 본인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극복해야만 했다.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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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욕심 ‘그 다음 목표’

이승엽은 신인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나는 욕심이 많았다”고 과거를 돌아봤다. 야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야구 선수가 꿈이었지만 야구 선수가 됐을 땐 국가대표, 국가대표에서는 프로 선수, 프로 선수가 됐을 땐 삼성 주전, 주전이 됐을 땐 타이틀 획득이 이승엽의 그 다음 목표였다.

심지어 50홈런을 쳤을 때에도 더 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고, 최고가 됐을 때조차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설정했다. 목표를 지속적으로 상향 수정하며 현재에 절대 안주하지 않았다.

이승엽에게도 게을렀던 시절은 물론 있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젊었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다. 몸이 건강했으며 기량까지 뛰어났기 때문에 안일한 마음으로도 충분히 통했다.

그러나 30대에 들어서면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특히 일본 무대에서 쓴잔을 마시며 운동량을 본격적으로 늘렸다. 선배보다 한 발 더 뛰고 두 배 더 스윙하면서 스타가 되기 전 가졌던 절박함을 되찾았다. 말년에도 타격폼 수정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끊임없는 변화를 가져갔다.

이승엽은 후배들에게 슬럼프 탈출 비결에 대해 소개하면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며칠 간 개인 연습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분을 전환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반대로 미친 듯 연습을 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다.

그는 후자를 추천했다. 휴식은 당시에는 편하지만 연습한 선수보다 원상태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 방망이를 100번 휘둘러 안 되면 200번, 200번으로도 부족하면 300번씩 연습을 해 머리가 아닌 몸의 기억으로 슬럼프에서 벗어났다는 게 이승엽의 설명이다. 일찌감치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뿐 아니라 40세가 넘은 시점까지 뛰어난 기량을 유지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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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은 여전히 배고프다

이승엽은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삼성의 1차 전지훈련지인 괌으로 출국했다. 본인의 프로 통산 23번째이자 마지막 스프링캠프가 시작됐다.

이에 대해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과 달리 당사자인 이승엽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저 평소와 똑같을 뿐”이란 그의 말 속에는 유니폼을 벗기 직전까지 평소와 같은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 내포돼 있다.

이승엽은 올시즌 KBO 역사상 최초의 ‘40대 30홈런’을 마지막 목표로 잡았다. 홈런 타자로서 명성을 떨친 만큼 이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보다도 크다.

또한 계약이 임박했던 외국인 타자 고메즈가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면서 염원했던 1루수 복귀에 대한 가능성도 열렸다. 올시즌 친정팀 롯데로 복귀한 이대호와의 최고 1루수 경쟁에도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 만약 이승엽이 1루수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이 왼다면 이는 야구 선수로서 받게 될 마지막 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승엽이 개인적인 목표만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KBO와 10개 구단이 순회 은퇴 투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이승엽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마지막 순간에 박수를 받고 싶은 생각은 있다. 인사 정도만 꼭 팬들에게 드렸으면 좋겠다”며 본인으로 인해 팀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을 염려했다.

특히 삼성이 페넌트레이스 5연패의 영광을 뒤로한 채 지난해 65승78패1무로 9위까지 추락했기 때문에 명가의 자존심을 세워준 뒤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승엽이 ‘국민 타자’ ‘홈런왕’, ‘최고의 1루수’보다 더욱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표현이 바로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이다.

본인의 야구 인생 9회말 투아웃 마지막 타석을 앞두고 있는 이승엽에게 물었다. 22년 전 프로에 막 들어선 ‘풋내기’ 이승엽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정신 차리고 야구만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야구를 잘하면 너무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때려서라도 강하게 말해주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최고의 선수가 됐지만 젊은 시절 좀 더 노력했다면 더욱 위대한 선수가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그의 답변에서 내심 느껴졌다. 그러나 2017년 그에게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하나 더 남아있다. 9회말 투아웃 역전 만루 홈런을 쏘아 올릴 전설의 마지막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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