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지난해가 되어버린 2016년 12월 23일을 기억합니다. 그날 저 역시 TV앞에서 역사의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바로 남자농구(KBL) 서울 삼성의 주희정 선수가 통산 1000경기 출전을 달성한 바로 그 순간을 말이죠.

늘 농구를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주희정 선수와는 인터뷰로 연결고리가 되어 가끔 씩 소식을 팬들께 알려 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주희정 선수가 1000경기 때 선발로 나서고 감사패를 받는 모습을 볼 때 솔직히 그 누구보다 더 울컥했고, 주희정 선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706경기를 뛰고 은퇴를 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오래, 많이 뛰며 주희정 선수처럼 700경기 때 특별한 이벤트도 가지고 감사패를 받기도 했습니다. 주희정 선수의 1000경기를 바라보는 제 마음은 더욱 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K리그 최다 출전자(706경기) 김병지(왼쪽)와 KBL 최다 출전자(1004경기 진행중) 주희정. 스포츠코리아, KBL 제공
언론 보도를 통해 주희정 선수가 힘든 가정환경 때문에 군대도 가지 못하고 대학교도 중퇴해 연습생으로 프로 무대에 겨우 발을 디뎠다고 들었습니다.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물론 전 그 정돈 아니었지만 저 역시 고등학교 졸업 후 불러주는 대학, 프로팀이 없어 공장을 다니며 직장을 다니며 축구했던 세월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제가 그랬듯 주희정 선수도 그런 고난의 시간을 극복하면서 더 단단해졌을 것입니다. 그런 환경들은 성공에 대한 목표의식을 더 뚜렷하게 만들어줬을 것이고 결국 힘든 프로생활을 20년간 지속하게 만든 정신적 바탕이 됐을 겁니다.

저희와 같이 오래, 많이 뛴 선수들 덕분에 후배들은 향후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겁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목표로, 혹은 오래 뛰는 것을 목표로 다음 세대가 더 성장할 길을 닦았죠.

제가 최인영 선배 최강희 감독 등 다른 K리그 전설들을 보고, 주희정 선수도 허재 선배와 같은 전설을 바라보며 그랬듯 말이죠. 기억하겠지만 저희 어릴 때만해도 30대 초반이면 은퇴하는 게 당연시 됐습니다. 하지만 몇몇 선배들이 오래, 많이 뛰며 목표를 잡아주자 저희가 그 길 속에서 해답을 찾고 오히려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이죠.

떠올려보면 어린 시절 저보다 잘하는 선수, 더 미래가 촉망되는 선수도 많았습니다. 부러워하고 질투도 느꼈던 기회를 많이 가진 선수도 많았죠.

하지만 그 기회를 운명으로 바꾸는게 중요했습니다. 바람처럼 사라져간 선수도 많았고 자의든 타의든, 부상이든 떠난 비운의 선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정말 운 좋게 그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속에서 살아남았고 누구보다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도 30대 중반부터는 ‘삼촌’이란 얘기를 들으면서 기분이 싱숭생숭했습니다. FC서울 시절 (기)성용이, (이)청용이, (고)요한이가 아들뻘 나이에(당시 고등학생) 매번 '삼촌'이라 부르면 어색함도 느꼈습니다.

그 시간이 익숙해지고 운동을 하면서는 그런 어색함은 사라졌죠. 훈련장에 들어가고, 경기를 하면 나이는 없죠. 나이 많다고 훈련을 적게하지도 않고 경기장에선 똑같이 경쟁하잖아요?

1000경기 달성을 서울 삼성 선수단과 기념하는 주희정(가운데). KBL 제공
저 같은 경우는 38세 때 400경기를 뛰고 서서히 기록에 대한 인식을 했던 것 같네요. 젊을 때야 100경기 뛰는거야 실력과 컨디션만 좋으면 되는 거였죠.

하지만 나이 들고 500경기쯤 넘어가니 경기력은 물론 부상도, 나이도, 은퇴시기도 생각하니 ‘과연 600, 700경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주희정 선수도 아마 이제 1000경기를 뛰었으니 1100경기에 대한 목표를 두고서 어려운 도전을 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주희정 선수도 그렇겠지만 저 역시 90년대 초반에 운동을 시작하면서 요즘 친구들의 운동 환경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당시만 해도 프로팀인데도 인조잔디도 아닌 맨땅에서 하는 팀이 있었습니다.

‘우리 때는 말이야’라는 고리타분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좋아져도 어려운건 어려운거고 힘든 건 힘든 거죠. 요즘 친구들이 더 힘들어 보이는 건?축구가 인기가 있고 매력이 있다보니 축구선수의 꿈을 가지고 운동하는 아이들의 숫자가 어마어마 합니다.그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워낙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아 경쟁이 더 치열하다는 점이죠. 우리 때는 솔직히 그 정도로 체계적 훈련을 받은 선수들이 없었는데 말이죠.

주희정 선수의 1000경기 기록이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20년간 KBL 1012경기 중 12경기만 빼고 모두 나왔다는 점(출전율 98.8%)이더군요. 솔직히 저도 그 정도 출전율을 가져간 적은 없습니다.

아마 출전율이 얼마나 주희정 선수가 관리를 잘했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요. 몸살이나 감기, 배탈 같은건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고 안 생기는게 아닙니다. 아마 자신이 그럴 때도 참고 뛰는 의지력이 있고 코칭스태프가 무한신뢰를 줄 정도로 실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죠.

저 역시 한창때는 정말 어깨가 너무 아파서 팔이 안 올라가는데도 감독님께서 ‘그냥 서있기만 해라’면서 선발투입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감독님이 보내주는 신뢰, 그리고 팀의 핵심선수로서의 책임감이 더해지다 보니 706경기를 뛰게 된 것입니다.

들어보니 주희정 선수는 선수생활 내내 절대 야간훈련을 빠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아마 자신만의 루틴이고 성실함때문이겠죠. 저 역시 선수생활 내내 78kg의 몸무게를 유지했고 저녁 8시 이후엔 약속을 만들지 않았죠.

나이 들면서는 젊은 선수 보다 한 가지 더 해낼 수 있는 저만의 경쟁력과 장점을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요. 경기흐름을 읽어내는 눈과 상대 심리를 잡아내는 저만의 노하우로 젊은 선수와 경쟁 속에 버틸 수 있었죠. 그 덕분에 45세의 나이까지 뛸 수 있었다고 봅니다.

아마 주희정 선수도 제가 그랬듯 자신의 경쟁력을 유지한 노력으로 압도적 출전 1위(KBL 1위 주희정 1004경기(진행중), 2위 추승균 738경기, K리그 1위 김병지 706경기, 2위 김기동 501경기)를 달성했으리라 봅니다.

아마 주희정 선수는 지금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는 감동이 그 어떤 찬사보다 값질 거라고 생각합니다.그 기록을 위해, 그 공놀이 하나를 위해 절제하고, 희생하고 수없이 버리고, 젊은 시간을 바치면서 얻은 기록이기에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이 가장 클거라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무한한 박수를 보냅니다.

1000경기도 하셨으니 이제 1100경기도 하셔야죠. 2월이면 만 40세가 되던데, 그 정도면 한창때 아닌가요?

프로축구연맹 제공
-김병지 칼럼 : K리그 최다출전자(706경기)이자 한국 축구의 전설인 김병지 前선수는 매주말 스포츠한국을 통해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병지 칼럼니스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이나 스포츠한국 SNS를 통해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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